공연예술계 거장이자 50년 지기인 작곡가 겸 지휘자 박범훈(75), 연출가 손진책(76), 안무가 국수호(75)가 오랜만에 뭉쳤다. 세종대왕의 ‘월인천강지곡(천 개의 강에 비친 달의 노래)’을 기반으로 동서양 음악이 결합한 대규모 종합예술공연을 선보이기 위해서다. 국립극장이 서울 중구 남산으로 이전한 지 50돌을 기념해 오는 29∼31일 해오름극장에 올리는 ‘세종의 노래 : 월인천강지곡’이다. 국립극장 전속 예술단체인 국립창극단·국립무용단·국립국악관현악단을 비롯해 서양 오케스트라와 합창단 등 출연진만 313명에 달하며 동서양 관현악과 판소리, 합창, 무용 등이 어우러진 대작이다.
‘월인천강지곡’은 567년 전 세종대왕이 먼저 세상을 떠난 소헌왕후의 명복을 빌고 한글을 널리 보급하려는 의도에서 한글로 부처(세존)의 생애를 담은 노래다. ‘세종의 노래’는 불교적인 색채를 최대한 배제하고, ‘사랑’과 ‘화합’에 방점을 찍었다.
작품의 중심은 박범훈이 2년에 걸쳐 작곡한 ‘월인천강지곡’이다. 동서양 기악과 독창·중창·합창이 결합한 칸타타 형식인데, 서곡과 8개 악장으로 구성된다. 작가 박해진이 작사를 맡아 원문의 ‘도솔래의’를 ‘흰 코끼리 타고 오신 세존’으로 풀어쓰는 등 관객이 공감할 수 있는 쉬운 노랫말로 만들었다.
이번 초연 무대 지휘도 맡은 박범훈은 최근 기자간담회에서 “제가 쓴 곡 중 가장 오랜 기간 고민해 탄생한 작품”이라며 “‘월인천강지곡’이 백성을 위해 쓰인 것이란 역사성도 생각해서 쉽게 이해되고 쉽게 부를 수 있도록 했다”고 설명했다.
박범훈은 곡을 완성한 뒤 종합적인 예술공연 작품으로 만들기 위해 50년 된 친구인 손진책과 국수호에게 도움을 요청했다. 세 사람은 국립극장 남산 시대의 시작을 함께했던 각별한 사이다. 국립국악관현악단 초대 단장을 역임한 박범훈은 26살에 국립극장 남산 개관기념 작품 중 하나인 ‘별의 전설’을 작곡했고, 이 작품의 주역이 국립무용단 ‘제1호 남자무용수’였던 국수호다. 손진책은 국립극장 남산 개관작인 ‘성웅 이순신’의 조연출이었다.
국수호는 “저를 키워준 어머니 같은 국립극장에서 이런 대작 안무를 맡게 돼 감개무량하다”며 “(월인천강지곡에는) 세종이 인내천 정신으로 백성에게 다가가려는 사랑이 담겨 있다. 사랑으로 부딪치고 화합하는 인간의 모습을 표현하고자 한다”고 말했다.
연출로 참여한 손진책은 극 공연 못지 않은 무대·영상·조명·의상 등을 조화롭게 펼쳐 보일 예정이다. 그는 “조선 최고의 커플 세종과 소헌왕후, 애민정신을 중심으로 소리와 음악을 시각화했다”며 “600년 전 노래가 (오늘날) 관객에게 와 닿게 하고, 칸타타이지만 총체성을 띤 무대로 지금껏 보지 못한 신선한 작품을 완성하는 것이 목표”라고 했다.
세존과 소헌왕후는 국립창극단의 간판인 김준수와 이소연이 각각 맡았다. 세종 역의 김수인을 비롯해 민은경·유태평양 등 창극단 주역 배우들이 무대에 올라 다양한 인물을 노래한다. 30여 명의 국립무용단원은 우아하면서도 역동적인 몸짓으로 관객의 몰입을 높인다.
1950년 서울 태평로 부민관(현 서울특별시의회 의사당) 자리에 창립된 국립극장은 대구·명동을 거쳐 1973년 10월17일 남산 장충동으로 터를 옮겼다. 남산 이전은 안정적 공연장과 연습 공간을 마련하는 계기가 됐고, 분야별 국립예술단체의 태동과 완성도 높은 공연예술 작품의 탄생까지 이끌었다.
박인건 국립극장 극장장은 “올해는 국립극장이 창작예술 거점으로 탄생한 지 50년이 되는 해여서 그동안 쌓아온 창작역량을 모두 보여드릴 만한 공연을 준비했다”며 “이 작품이 (국립극장을 대표하는) 하나의 명작으로 자리잡도록 최선을 다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