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렁다리 갈까 울렁다리 갈까 원주 천혜 절경 즐기는 소금산그랜드밸리 [최현태 기자의 여행홀릭]

가파른 계단 올라 출렁다리 건너면 ‘짜릿짜릿’/절벽에 위태롭게 매달린 소금잔도 ‘간담 서늘’/국내 최장 404m 울렁다리 서면 가슴이 ‘울렁울렁’/치악산둘레길 ‘싸리치옛길’에선 고즈넉한 힐링 즐겨

 

소금산 울렁다리.

“휘이익∼ 휘이익∼.” 구멍이 숭숭 뚫린 다리 발판 밑으로 마치 잡아먹을 듯이 굉음을 내며 사납게 달려드는 매서운 바람. 갑자기 하늘마저 컴컴해지더니 얼굴을 사정없이 때리는 눈보라. 더구나 이름처럼 울렁다리마저 엇박자로 요동치니 건장한 사내도 몸을 가누기 쉽지 않다. 날씨도 안 좋은데 괜히 왔나. 그렇게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다리를 반쯤 건너자 날씨는 요술을 부린다. 언제 그랬느냐는 듯, 먹구름 가시고 파란 하늘 열리며 따뜻한 햇살 쏟아지니 마치 천지창조 순간을 마주하는 듯 신비롭다. 그제야 발아래로 또렷하게 펼쳐지는 굽이굽이 흐르는 간현천. 그 위로 깎아지른 수직 절벽에 아슬아슬하게 걸친 잔도(棧道)가 어우러지는 경이로운 풍경. 아찔하고도 아름다운, 원주 소금산그랜드밸리를 걷는다.

 

오형제바위와 섬강.

◆출렁다리 갈까 울렁다리 걸을까

 

원주는 강원도이기에 멀게 느껴지지만 수도권에서 원주는 생각보다 가깝다. KTX 덕분이다. 주말에 승용차로 가면 2시간 정도 걸리지만 KTX를 이용하면 서원주역까지 서울역에서 1시간을 살짝 넘기고 청량리역에선 50분이 채 안 걸린다. 서원주역에서 택시를 이용하면 원주의 핫플레이스 간현관광지까지 불과 5분이라 대중교통을 이용해 주말 당일치기 나들이에 최적화된 여행지다.

 

섬강을 가로지르는 간현교 입구에서부터 감탄이 쏟아진다. 푸른 섬강과 삼산천이 만나는 지점에 40∼50m 높이로 솟아오른 오형제바위가 어우러지는 풍경은 한 폭의 산수화다. 과연 송강 정철이 ‘관동별곡’에서 노래한 것처럼 섬강의 수려한 절경은 흠뻑 빠지고도 남겠다. 가사문학의 대가 송강은 ‘흑수로 도라드니 섬강은 어듸메오 치악이 여긔로다’라며 섬강을 칭송했다.

 

소금산 출렁다리.

매표소에서 데크로드∼스카이워크∼소금산출렁다리∼소금잔도∼스카이타워∼소금산울렁다리를 거쳐 매표소로 돌아오는 길은 2시간 반 정도 걸린다. 허벅지의 강렬한 근육수축을 견디며 578개 계단을 헉헉대며 오른다. 이 정도에 숨이 차는 걸 보니 운동을 더 열심히 해야겠다. 부지런히 올라 계단 끝에 서면 스카이워크와 출렁다리 입구에 도착한다. 주차장에서 이곳까지 오르는 케이블카를 건설 중이며 2024년 개통예정이라 앞으로는 노약자도 좀 더 편하게 출렁다리 입구까지 오를 수 있을 전망이다. 출렁다리는 폭 1.5m, 길이 200m로 2018년 1월 개통 당시만 해도 국내에서 가장 긴 출렁다리였다. 다리 높이가 무려 100m라 마치 허공을 걷는 듯 간담이 서늘하다. 발아래 아찔하게 펼쳐진 삼산천은 심하게 심장을 요동치게 만든다. 하지만 놀라기는 아직 이르다. 소금잔도와 울렁다리 스카이타워에 비교하면 아무것도 아니기에.

 

소금산 출렁다리.

 

소금잔도.

다리를 다 건너면 다시 오른쪽 하늘바람길을 거쳐 하산할지 아니면 직진해서 소금잔도로 갈지 결정해야 한다. 3년 전 이곳에 왔을 때는 출렁다리밖에 없어서 다시 돌아내려 가야만 했다. 하지만 지난해 소금잔도와 울렁다리가 더해지면서 소금산의 스릴을 더욱 완벽하게 즐길 수 있게 됐다. 다만 다리와 잔도는 일방통행이라 한번 들어서면 오던 길로 돌아갈 수 없다. 그래 인생은 직진이지. 다시 계단을 힘겹게 오른다. 소금산의 풍경을 온몸으로 느끼며 편안한 산책을 즐길 수 있는 700m 길이 데크산책로를 통과하면 드디어 소금잔도가 시작된다.

 

소금잔도.

 

소금잔도

◆벼랑 따라 걷는 잔도의 짜릿함

 

잔도는 전 세계적으로 외진 산악지대를 통과하는 유일한 수단이다. 길을 뚫을 수 없으니 험한 벼랑에 선반을 매달 듯, 위태롭게 보행할 수 있는 구조물을 설치해 인도로 활용한다. 국내에는 2021년 11월 개통된 강원 철원 한탄강 주상절리길 잔도가 대표적이다. 높이 30∼40m 절벽에 설치한 잔도는 3.6㎞로 국내 최장 길이를 자랑한다.

 

소금잔도는 총길이 360m로 한탄강 주상절리길 잔도보다 짧지만 공포감은 남다르다. 훨씬 높은 200m에 달하기 때문이다. 소금산 정상 바로 아래 절벽을 끼고 도는 소금잔도를 따라 조심스럽게 한발 한발 내디딘다. 찬바람이 얼굴을 때리니 짜릿한 스릴에 작아진 실눈은 더욱 감긴다. 하지만 공포감도 잠시, 감탄이 쏟아진다. ‘작은 금강산’ 소금산을 휘감아 도는 삼산천의 아름다운 절경이 가슴을 시원하게 열어주고 저 멀리 백운산과 치악산 자락도 아스라이 펼쳐진다. 잔도를 걸어야만 만날 수 있으니 무섭지만 오길 잘했다.

 

스카이타워와 울렁다리.

 

스카이타워 전망대.

 

소금산 울렁다리.

 

스카이타워.

잔도는 이곳의 랜드마크 스카이타워로 연결된다. 지상 150m 높이로 가파른 절벽에 3개 층으로 만든 거대한 철제구조물 맨 꼭대기에 서니 강한 바람에 몸이 날아갈 것 같다. 입을 크게 열고 온힘을 다해 고함을 지르면 몸속에 켜켜이 쌓인 고민, 슬픔, 걱정 등 쓸데없는 감정 찌꺼기들은 바람 따라 공기 중으로 사라져 버린다. 평일이고 쌀쌀한 날씨인데도 많은 여행자들이 이곳을 찾는 이유다. 눈앞에 펼쳐지는 소금산의 기암절벽과 아름다운 자연은 보너스.

 

스카이타워와 울렁다리.

 

울렁다리 유리발판.

 

울렁다리.

 

삼산천에서 본 출렁다리.

이제 소금산그랜드밸리의 절정을 즐길 시간. 높이 100m에 출렁다리보다 두 배나 더 긴 404m 울렁다리를 걷는다. 진짜 울렁거린다. 위아래가 아니라 좌우로 흔들리는 것 같다. 규칙적이지 않고 좌우로 비틀거리며 흔들리니 살짝 속이 메스꺼울 정도로 울렁거린다. 바닥은 격자무늬로 숭숭 뚫렸고 아찔한 삼산천이 훤히 내려다보이는 유리바닥 구간이 계속 등장해 건너기 쉽지 않다. 더구나 눈보라까지 쏟아져 얼굴을 때리니 정신이 혼미하다. 그래도 절경은 놓칠 수 없다. 아까 지나온 반대편 출렁다리는 이곳에서 보니 건널 때보다 훨씬 아찔하다. 중간 전망대에서 서면 피톤치드 글램핑장, 10월까지 밤마다 미디어 파사드 ‘나오라쇼’가 펼쳐지던 깎아지른 절벽과 삼산천이 어우러지는 풍경이 한눈에 보인다. 현재 에스컬레이터가 건설 중이라 내년에는 울렁다리에서 글램핑장 아래까지 편하게 하산할 수 있게 된다.

 

싸리치옛길 표지석.

 

싸리치옛길.

 

◆싸리치옛길에서 즐기는 고즈넉한 힐링

 

역동적인 소금산그랜드밸리와 달리 치악산둘레길은 만추에서 초겨울로 넘어가는 요즘 한 해를 돌아보면 고즈넉한 힐링을 즐길 수 있는 곳이다. 모두 11개 코스로 구성된 거칠고 투박한 길로 사계절이 뚜렷한 팔색조 매력을 보여준다. 치악산 외곽을 시계방향으로 걷는 둘레길은 등산로, 샛길, 임도, 둑길, 옛길, 마을길 등 기존의 길들을 연결했다. 또 최대한 편하게 걸을 수 있도록 새로운 길을 내고 다듬었기에 어르신과 아이들도 쉽게 자연을 만끽할 수 있다. 11코스는 모두 139.2㎞에 달하며 걷기 여행자들의 편의를 위해 코스마다 코스안내표식, 길잡이 띠, 스탬프 인증대를 설치했다.

 

싸리치옛길 철철폭포.

 

무엇보다 치악산 자락의 아름다운 숲과 맑은 계곡을 만날 수 있다는 점이 매력이다. 중부지방 내륙산간에 있는 치악산은 주봉인 비로봉(1288m)을 중심으로 동쪽은 횡성군, 서쪽은 원주시와 접한다. 또 남쪽의 남대봉과 북쪽의 매화산 등 1000m가 넘는 고봉들 사이에 가파른 계곡들이 있어 예로부터 산세가 뛰어나고 험난하기로 이름이 높다. 덕분에 깊은 숲 속에서 오로지 나 자신을 마주하는 시간을 만들 수 있다.

 

둘레길 곳곳에서 천년고찰 구룡사, 운곡선생과 태종 이야기 등 소박한 삶의 체취와 역사의 숨결도 느낄 수 있다. 그중 단종과 김삿갓이 넘은 길이 7코스 싸리치옛길이다. 유배지인 영월로 향하던 16살 단종은 군졸 50명의 삼엄한 경비 속에서 눈물을 훔치며 이 길을 걸었다고 한다. 중간쯤에서 만나는 싸리치옛길 표지석 뒤에는 단종의 사연이 빼곡하게 적혔다. 서민들에겐 삶의 애환이 깃든 길이다. 과거 소금, 생선, 생필품을 팔러 다니던 통로로 서울과 영월을 이어주는 역할을 했다.

 

싸리치옛길 낙엽.

 

싸리치옛길은 석기동∼신림중∼용암교∼용소막성당으로 이어지며 9.8㎞로 3시간 정도 걸린다. 신림면 신림리에서 황둔리로 넘어가는 옛길로 산굽이를 돌 때마다 싸리나무가 지천으로 널려 있어 싸리치(싸리재)라는 이름이 붙었다. 버스가 다니던 싸리치는 1988년 황둔리로 가는 88번 국도가 새로 개통되면서 명칭도 싸리치옛길이 되었다. 빛바랜 낙엽과 솔잎이 쌓이고 쌓여 어머니 품처럼 푹신한 싸리치옛길을 걷는다. 고요하게 울려 퍼지는 이름 모를 새소리는 가슴에 고요한 평온을 안긴다.

 

뮤지엄산.

지정면 월송리 뮤지엄산은 사계절 시시각각 변화하는 자연의 품에서 문화와 예술의 선율을 느낄 수 있는 전원형 뮤지엄으로 인기가 높다. 미니멀한 노출 콘크리트 건축물의 대가 안도 다다오가 설계했으며 대지의 평온함, 돌, 바람, 햇빛을 만끽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