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건강 예방·회복’ 국가가 책임진다

정부, 정신건강정책 혁신방안
조현병·조울증까지 검진 확대
2027년까지 100만명 심리상담
자살률 10년내 절반 감축 목표
尹 “국가 어젠다로 적극 해결”

주요 내용 살펴보니

위험군 선별 땐 전문의료기관 등 연계
한 명당 평균 8회 전문심리 상담 받아
자살시도자·유가족 우선 서비스 제공

병동 관리료 확대·방문진료 수가 지원
‘장기 지속형 주사제’ 본인 부담금 완화
24시간 합동대응센터 17개 시·도 확대
임의로 치료중단 못하게 관리 강화도

청년층의 정신건강 검진 주기가 10년에서 2년으로 줄어든다. 검사 항목도 현행 우울증에서 조현병, 조울증까지 확대한다. 정부는 2027년까지 100만명에게 심리상담을 제공한다는 계획이다.

정부는 윤석열 대통령 주재로 5일 청와대 영빈관에서 ‘정신건강정책 비전 선포대회’를 열고 이런 내용의 ‘정신건강정책 혁신방안’을 발표했다. 중증 질환자 치료·요양 중심의 정신건강 정책을 예방에서 회복에 이르기까지 전 단계를 관리하는 방식으로 전환하는 내용이다. 2022년 기준 인구 10만명당 25.2명인 자살률을 10년 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10.6명) 수준까지 감축하겠다는 게 정부 목표다.

조규홍 보건복지부 장관이 5일 오후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에서 정신 건강 혁신 방안 발표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정부는 우선 내년에 정신건강 중·고위험군 8만명을 대상으로 전문 심리상담을 지원한다. 매년 대상자를 단계적으로 늘려 2027년까지 100만명이 심리상담을 받을 수 있도록 지원할 방침이다. 또 내년 하반기부터는 학생·직장인 등을 대상으로 자살예방인식 개선 교육을 의무화한다.

20∼70세 성인을 대상으로 10년 주기로 실시해 온 정신건강검진의 경우 청년층(20∼34세)은 2년 주기로 받을 수 있도록 우선 확대한다. 아울러 자살예방상담전화(1393), 정신건강상담전화(1577-0199), 생명의전화(1588-9191) 등으로 나뉘어 있던 자살 예방을 위한 신고·상담 전화번호는 ‘109’로 통합·운영한다.

윤석열 대통령이 5일 청와대 영빈관에서 정신건강 정책 비전 선포대회를 주재하고 있다. 연합뉴스

정부는 대통령 직속 정신건강정책혁신위원회를 꾸려 세부 추진 계획을 마련할 계획이다. 윤 대통령은 이날 비전 선포대회에서 “정신건강 문제를 개인이 알아서 할 문제가 아니라 중요한 국가 어젠다로 삼고 적극 해결책을 강구해야 한다”며 “정부는 예방, 치료, 회복에 이르기까지 전 과정의 지원 체계를 재설계해서 정신건강 정책의 패러다임을 획기적으로 바꿔 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이어 “제 임기 내에 정신건강 정책의 틀을 완성해서 국민이 건강하고 행복한 사회를 만들어 가는 데 최선을 다하겠다”며 “(신설되는) 위원회를 중심으로 세부 정책을 가다듬어 내년 봄까지 국민들에게 제대로 보고드릴 수 있도록 잘 준비해 달라”고 지시했다.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내년도 정신건강정책 예산(정부안)은 올해보다 706억원 증액된 3866억원이 편성돼 있다.

 

◆조기 발견으로 중증·만성 악화 차단… 퇴원 후도 지속 관리

 

정부가 5일 발표한 ‘정신건강정책 혁신방안’은 정신질환을 조기에 발견해 치료하고, 치료가 끊기지 않게 지원해 정신질환자의 일상회복을 돕는 체계를 만드는 게 골자다. 중증정신질환자 치료와 요양에 집중했던 정신건강 관리 체계를 예방과 조기 발견, 치료, 일상회복으로까지 확대했다는 점에서 정책이 진일보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정부는 우선 2025년부터 20∼34세 청년을 대상으로 정신건강 검진주기를 현 10년에서 2년으로 단축하고 검진 항목도 우울증에서 조현병, 조울증으로 확대한다. 청년의 경우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팬데믹에 따른 사회적 거리두기로 대인관계 단절을 겪고 미디어 의존도가 높아진 탓에 정신건강 위험도가 높을 것으로 예상된다. 지난해 우울증 환자 100만744명 중 2030세대가 약 34만6000명(35%)으로 비중이 가장 컸다.

정부주도 마음건강 챙기기 5일 서울 종로구 서울시청년마음건강센터 모습. 윤석열 대통령은 이날 청와대 영빈관에서 ‘정신건강정책 비전선포대회’를 주재하고 정신건강 문제와 관련해 국가가 적극 대응하겠다고 강조했다. 최상수 기자

조현병이나 조울증 등 정신질환을 조기에 발견해 치료할수록 중증·만성으로 악화하는 걸 막을 수 있다. 조규홍 보건복지부 장관은 “주요 정신질환이 20~30대에 주로 발병하고 조기 발견 시 상담과 약물치료 등으로 회복이 가능하다고 알려져 있다”고 말했다. 전홍진 삼성서울병원 교수(정신건강의학)는 “조현병과 조울증 환자는 남들이 자신을 해칠 거란 피해망상이 있는데 시간이 지날수록 심해지게 된다”고 했다. 전 교수는 “상태가 나빠지면 해코지한다는 느낌이 강해져 남들의 도움을 거부하게 된다”며 “증상이 악화하기 전 조기 검진과 치료가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검진 후 위험군으로 선별되면 정신건강복지센터나 전문의료기관에 연계한다. 노인과 아동·청소년이 소외됐다는 지적에 대해 조 장관은 “(검진 대상자를) 단계별로 확대하겠다”고 밝혔다.

 

정신질환 중·고위험군에게 심리상담 서비스도 확대 제공한다. 내년에 정신건강 위험군 약 160만명의 5%인 8만명에게 관련 서비스를 제공하고 2027년 대상자를 50만명(고위험군 6만명·중위험군 18만명·일반국민 26만명)까지 늘려 누적 100만명에게 심리상담 서비스를 제공한다. 정신건강 검진을 받고 우울 등 위험도가 높은 사람과 자살시도자, 자살유가족 등이 먼저 대상자가 된다.

 

위험군에 따라 서비스 횟수가 다른데 한 명당 1회 1시간, 평균 8회 전문심리상담을 받게 된다. 정신건강복지센터와 상담센터, 의료기관 등에서 상담을 맡는다. 이를 통해 2021년 12.1%인 정신건강 서비스 이용률을 2030년 24.0%까지 2배로 늘릴 계획이다. 정부는 공공을 중심으로 정신건강 검진과 치료가 확대되면 회사 등 민간 부문에서도 관련 상담이 활성화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사진=게티이미지뱅크

정신질환자가 퇴원 후 지역사회에서 치료와 재활을 계속할 수 있는 체계도 구축한다. 6시간 이상 이용할 경우 수가(의료행위 대가)를 적용했던 낮 병동 관리료를 확대하고 병원 방문진료 수가를 지원한다. 조현병 증상 관리를 위한 ‘장기 지속형 주사제’ 본인 부담금도 완화할 방침이다. 의료급여 환자의 경우 외래 5%만 자부담하는데 이 비용이 부담돼 이용을 꺼리는 사례가 많다는 게 정부 설명이다. 전 교수는 “의료 이용은 비용 영향을 많이 받는다”며 “정신질환자와 보호자 치료비를 줄여주는 건 지속 치료에 큰 도움이 된다”고 설명했다.

정부는 급성기 정신질환자를 수용할 병상과 의사 부족 문제도 개선하기로 했다. 병원 측에선 수가가 낮아 관련 병상을 유지할 유인이 부족했다. 정부는 치료 수가를 새로 만들고 정신의료기관 실태조사를 통해 양질의 서비스를 제공하는 곳에 인센티브를 주는 등 유인책을 마련한다. 현재 139개인 정신응급병상을 250개 이상으로 확충할 계획이다. 정신건강전문요원과 경찰이 정신응급 상황에 24시간 대응하는 합동대응센터도 전국 17개 시·도로 확대한다. 지금은 서울(1곳)과 경기(2곳)에서만 운영 중이다.

 

정부는 자·타해 위험이 있는 정신질환자가 고립돼 임의로 치료를 중단하지 않게 사례관리를 강화하기로 했다. 이를 위해 시·군·구 기초단체장이 이들의 외래치료지원을 결정하고 환자가 따르지 않으면 정신의료기관 평가를 거쳐 입원토록 하는 외래치료지원제도를 활성화한다. 법적 근거는 있으나 ‘강제입원’됐던 환자에게만 명령을 내릴 수 있고, 치료명령을 강제할 수단도 없어 유명무실하다는 지적이 제기돼왔다. 정부는 정신질환자 정보 연계를 강화하고 치료지원제를 활용하는 의료기관에 보상을 주는 등의 방안을 추진한다. 법관이 결정해 중증 정신질환자를 강제 입원토록 하는 사법입원제도에 대한 사회적 논의도 시작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