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최초 여성 대법관 유족 "조화 대신 시민단체 기부를"

오코너 장례식, 19일 워싱턴 대성당에서 엄수
하루 전 대법원에 관 안치… 일반인 조문 가능

미국에서 여성으로는 처음 연방대법원 대법관을 지낸 샌드라 데이 오코너 전 대법관의 장례식이 오는 19일(현지시간) 수도 워싱턴에 있는 국립대성당에서 엄수된다. 오코너 전 대법관은 지난 1일 93세를 일기로 별세했다.

샌드라 데이 오코너(1930∼2023) 전 미국 연방대법원 대법관. AP연합뉴스

대법원은 5일 보도자료에서 장례 일정을 소개하며 이같이 밝혔다. 장례식 참석은 초청을 받은 이들로 제한된다. 장례식 전날인 18일 오코너 전 대법관의 관(棺)은 대법원 내 그레이트홀에 안치된다. 생전에 그를 존경했던 일반인들이 애도를 표하며 고인의 마지막 길을 배웅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다. 그레이트홀은 18일 오전 10시30분부터 8시까지 대중에게 공개된다고 CNN 방송은 전했다.

 

앞서 조 바이든 대통령은 오코너 전 대법관의 장례식 당일 미국 내 모든 공공기관과 재외공관, 해외 주둔 미군 부대 등에 고인을 추모하는 뜻에서 조기(弔旗)를 게양하라고 명령한 바 있다. 바이든 대통령은 직접 장례식에 참석하는 방안을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1930년 텍사스주(州) 엘패소에서 태어난 오코너 전 대법관은 서부의 명문 스탠퍼드대 로스쿨을 졸업하고 변호사 자격증을 취득한 뒤 어린 시절을 보낸 애리조나주에 정착해 주검찰청 검사, 주의회 상원의원, 주법원 판사 등으로 일했다. 51세 때인 1981년 당시 로널드 레이건 대통령에 의해 대법관으로 임명됐다. 미 대법원 창설 이래 처음 탄생한 여성 대법관이었다.

 

대법원에 재직하는 동안 고인은 1993년 빌 클린턴 행정부가 발탁한 ‘2호 여성 대법관’ 루스 베이더 긴즈버그(2020년 사망)와 곧잘 비교됐다. 뚜렷한 진보 성향인 긴즈버그와 달리 오코너 전 대법관은 보수에서 출발해 차츰 중도로 옮겨갔다. 스타 못지않은 대중적 인기를 누린 긴즈버그가 정작 대법원에선 ‘소수파’에 그친 반면 고인은 오랫동안 대법원의 ‘지배자’였다. 진보와 보수가 4 대 4로 팽팽히 맞선 핵심 사건마다 결정적 한 표, 이른바 ‘스윙보트’를 행사했기 때문이다.

미국 최초의 여성 연방대법관 샌드라 데이 오코너(왼쪽)가 1981년 9월 취임식 직후 워렌 버거 당시 대법원장과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AP연합뉴스

미국 법조전문기자 제프리 투빈은 대법원 뒷얘기를 다룬 책 ‘더 나인’(2010)에서 오코너 전 대법관을 가리켜 “미합중국 역사상 나라 전체에 그렇게 엄청난 영향을 미친 여성은 전혀 없었고, 그러한 영향을 미친 남성도 얼마 되지 않았다”고 했다.

 

고인은 2006년까지 25년간 대법관을 지내고 스스로 물러났다. 당시 76세로 아직 건강했지만 치매에 걸린 남편 간병을 위해 대법원을 떠나는 길을 택했다. 2009년 남편과 사별한 뒤 오코너 전 대법관은 ‘치매 치유 전도사’를 자처하고 미 전역을 돌며 왕성한 강연과 봉사활동을 했다. 또 아이시빅스(iCivics)라는 이름의 비영리단체를 세워 미국 청소년들을 상대로 시민 교육을 실시했다. 그러다가 5년 전인 2018년 본인도 치매 진단을 받으며 모든 활동을 중단하고 공개석상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고인은 먼저 사망한 남편과의 사이에 스콧 오코너, 브라이언 오코너, 제이 오코너 세 아들을 낳았다. 유족은 시민들을 향해 “고인의 뜻을 헤아려 추모의 꽃을 보내는 대신 그 돈을 아이시빅스에 기부해달라”고 요청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