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실무경험 있어도 차별”…국가공인자격증 60% 고졸에게 ‘벽’

대학 학위 없으면 응시불가 6.5%
시험·교육·실습 등 면제도 54.6%
“실무 경험 있는데도 못 따” 토로

“현장에 대한 이해 없이 ‘대졸 자격’만 무턱대고 요구하는 것 같아요”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서울 성북구 한 장애인복지센터에서 일한 주연(24)씨는 시설에서 오래 거주한 발달 장애인들의 단기 자립 체험을 도왔다. 센터 밖에서는 청소년 인권 활동을 하며 가정 폭력, 경제적 파산 등으로 원가정(혈연 가족)과의 단절을 택한 ‘탈가정 청소년’ 문제에도 관심이 생겼다. 이 같은 실무 경험 속에서 주연씨는 사회복지가 만들어 내는 변화를 체감하면서 ‘사회복지사’라는 꿈을 꾸게 됐다.

 

하지만 국가 공인 ‘사회복지사 자격증’을 따기 위해 응시 조건을 알아본 주연씨는 이내 좌절했다. 사회복지사 자격증의 경우 ‘대졸’에 한해 시험을 볼 수 있어서였다. 그는 “실무 경험도 있는데, 취업도 아니고 자격증 따는 것부터 막혔다”며 “사회복지 현장에서는 학력보다 ‘소통’을 중요하게 보는데, 학력 때문에 자격증 시험조차 못 보는 게 이상하다”고 토로했다.

 

국가공인자격증 710종을 전수조사한 결과 대학 학위가 없으면 응시하지 못 하거나, 학위를 소지하는 것만으로 우대받을 수 있는 자격증이 절반 이상으로 나타났다. 취업과 직결되는 국가공인자격증의 문턱에서 해당 분야의 전문 지식을 얼마나 습득했는지가 ‘대학 졸업’에 집중돼 특성화고 졸업생, 대학 비진학자 및 중퇴자 등 ‘고졸’ 인력들이 노동 시장에서 소외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세계일보는 7일 교육사회운동단체 ‘투명가방끈’이 한국산업인력공단에서 운영하는 국가자격증 정보 제공사이트(큐넷)를 기반으로 국가공인자격증 710종(지난 10월 기준 국가기술자격 544종, 국가전문자격 166종)을 전수조사한 결과를 확보했다. 분석 결과에 따르면 ‘대학졸업장’이 없으면 응시조차 불가능한 자격증은 45종(6.5%), 응시조건에 제한은 없지만 학위가 있을 경우 시험·교육·실습 등을 면제받는 우대혜택이 주어지는 자격증은 388종(54.6%)으로 나타났다. 그 외 약 40%는 학력과 무관하게 직무 관련 양성 교육 과정을 밟아 취득할 수 있었다. 국가기술자격은 산업과 관련된 기술·기능 및 서비스 분야의 자격들로 고용노동부가 총괄하고, 국가전문자격은 사회복지사법, 공인중개사법, 세무사법 등 개별법을 근거로 교육부에서 자격정책심의회를 운영하고 있다.

 

고교 졸업생 10명 중 3명은 대학에 가지 않는 현실 속에서 전공과 무관하게 대학졸업장만 있으면 바로 실습 면제 등의 혜택을 주는 자격증은 대학에 진학하지 않은 이들에게 차별로 작동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지난 3월 한국산업인력공단에서 발표한 ‘2022 국가기술자격 시험응시 청년층 수요 Top 5’에서 1위를 차지한 ‘정보처리기사’ 자격증은 고졸의 경우 동일직무 분야의 실무 경력이 1~4년 이상이어야만 응시할 수 있지만, 학사 졸업생은 관련 학과가 아니더라도 응시 가능했다. 또 대졸 학력을 우대할 때 ‘관련 학과’를 조건으로 두는 경우가 많은데, 학과와 직무 사이 관련성이 모호하다는 비판도 제기된다.

 

투명가방끈 무름 활동가는 “‘생산관리’와 연관된 경영·회계·사무 학과들이 금형기술사, 원자력기술사 등 수십 개의 기술자격증에 우대 조건이 된다”며 “만약 관련 지식을 배웠을지라도 시험에서 유리한 요소일 뿐, 이를 사유로 시험·하위자격증 등을 면제하는 것은 학력에 따른 부당한 특혜”라고 지적했다. 이어 “대학 교육과정 외에도 특성화고, 직업훈련과정 등 관련된 배움의 이력을 반영하는 제도를 고려해야 한다”고 촉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