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약 만료라지만… 관계 악화에 줄어드는 판다
‘판다 외교’는 중국이 국제 관계 개선을 위해 판다를 활용하는 것을 일컫는 용어다. 그 기원은 7세기 당나라 측천무후가 두 마리의 판다를 일본에 선물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현대에 들어서는 1972년 리처드 닉슨 미국 대통령이 중국을 방문한 몇 달 뒤 마오쩌둥 중국 주석이 선물한 판다 한 쌍이 미국에 도착한 게 시작이다. 미국은 답례로 사향소 두 마리를 중국에 보냈다.
결국 지난달 8일 워싱턴 국립동물원의 메이샹과 톈톈, 새끼 샤오치지가 중국으로 반환되면서 미국 내 판다는 애틀랜타 동물원에만 남게 됐다. 이곳의 판다들도 내년 중 임대계약이 만료되면 중국으로 돌아가야 할 처지라 50여년 만에 미국 내에서 판다가 사라질 수 있는 상황이 됐다.
미국을 포함해 해외에 살다 중국으로 돌아간 판다는 올 들어서만 총 15마리에 달한다. 지난 2월 일본에선 아기 판다 샹샹 등 총 4마리가 반환됐다. 이어 4월에 미국에 거주하던 판다 야야가 지난 2월 돌연사한 파트너 수컷 판다인 러러의 사체와 함께 중국으로 돌아갔다. 7월에는 프랑스 아기 판다 위안멍이 중국 청두에 도착했고, 8월과 9월에는 말레이시아·네덜란드의 판다들이 각각 청두의 신수펑기지와 비펑샤기지로 향했다. 이달에도 싱가포르에서 태어난 러러가 중국으로 반환될 것으로 예상된다. 러러까지 중국으로 돌아간다면 올해 귀향한 판다는 16마리가 된다.
중국은 외국에 보통 10년 단위로 판다를 임대한다. ‘멸종 위기에 처한 야생 동식물의 국제거래에 관한 협약(CITES) 발효로 판다를 다른 나라에 팔거나 기증할 수 없게 되자 장기간 임대 형식을 취하는 것이다. 해외에서 태어나는 새끼들은 4년 차가 되면 중국으로 돌아가야 한다. 올해 판다의 중국행이 몰린 것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 확산으로 인해 반환 시점이 연기된 탓이 큰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최근의 판다 소환은 중국과 서방의 관계가 점점 더 긴장되고, 귀여운 판다를 빌려준다고 해서 긴장 관계가 쉽게 풀리지 않는 상황에서 이뤄졌다고 영국 가디언은 짚었다.
중국은 다른 입장이다. 관영 글로벌타임스는 판다 반환과 관련해 “미국 일부 언론들은 이번 상황을 정치적인 요인으로 돌리고 있는데, 이는 잘못된 이야기를 조장하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영국 판다의 귀향에 대해서는 “일부 언론 매체에서 외교 관계에 대응해 판다를 이용하고 있다며 중국의 명예를 훼손하고 있는데, 왜 영국이 연장을 요청하지 않았을 수도 있다는 점은 고려하지 않나”라고 반문하기도 했다.
◆“판다는 우호 상징” 판다 외교 계속되나
중국은 판다가 여전히 우호와 협력의 상징이며, 이는 변한 적이 없고 앞으로도 변하지 않을 것이라고 강조하고 있다. 특히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지난달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 열린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에이펙) 정상회의 계기 방미에서 기업인들을 만나 “판다 보전을 위해 미국과 계속 협력할 준비가 돼 있다”고 발언한 것이 주목받았다. 시 주석은 “얼마 전 워싱턴 국립동물원의 판다 3마리가 중국으로 돌아와 많은 미국인이 배웅하기 위해 동물원에 갔다고 들었고, 판다가 다시 미국에 오기를 바란다는 것을 알게 됐다”며 이같이 언급했다.
대니얼 애시 미 동물원·수족관 협회 대표는 이에 대해 “꽤 강한 언급으로 보인다”며 “매우 고무적이고 다음 단계를 고대한다”고 말했다.
데니스 와일더 조지타운대 선임연구원은 “시 주석의 발언은 동물보호단체를 상대로 판다 교환에 대해 청신호를 준 것”이라고 말했다.
에이펙이 열렸던 캘리포니아주의 대표적 동물원으로 2019년까지 판다가 있었던 샌디에이고 동물원도 희망감을 드러냈다. 폴 배리볼트 샌디에이고 동물원 야생동물 연합 대표는 “우리 팀은 다음 세대 판다를 우리 동물원에 맞이하고 야생동물을 보호하기 위해 파트너와 협력하는 한편 전 세계 수백만 명에게 지구 보호의 영감을 불어넣기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다”고 밝혔다.
지난 2월 미국 멤피스 동물원에서 수컷 판다 러러가 돌연사한 이후 악화한 중국 여론 역시 시 주석의 결단만 있으면 문제가 되지 않을 전망이다. 다만 실제로 언제쯤 중국에서 판다가 미국으로 올 수 있을지를 예상하기에는 아직 이르다. 전문가들은 시설의 지위와 명성, 판다 보호 경험 등을 고려할 때 민간이 아닌 국립동물원이 우선권을 갖게 될 것으로 보고 있지만 국립동물원 측은 협상 상황에 대한 언급이나 시 주석 발언에 대한 논평을 자제하고 있다고 AP통신은 전했다.
◆외교도 외교지만… 판다 경제효과 ‘상상초월’
판다는 중국 우호 외교의 상징이지만 희귀성과 애호도에 따른 보유국에서 발생하는 경제적 파급효과도 만만찮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판다를 통한 외교·경제 효과를 뜻하는 ‘판다노믹스’란 말까지 생겼을 정도다.
한국의 경우 경기 용인 에버랜드 아기 판다 푸바오 열풍이 식지 않고 있다. 푸바오로 시작된 판다 인기는 최근 태어난 푸바오의 쌍둥이 동생 루이바오와 후이바오로 이어지고 있다.
이들의 귀여움을 무기로 한 부가가치 창출 효과도 쏠쏠하다. 에버랜드에 따르면 푸바오가 인기를 끈 5월 이후 판다 관련 상품 판매량이 60% 이상 증가했으며, 에버랜드 유튜브 구독자 수도 120만명까지 늘어났다. 판다 관람을 위해서만 에버랜드를 찾는 사람을 집계할 수 없어 정확한 경제 효과를 추산하기 어렵지만 비슷한 일본의 예가 있다.
한국에 푸바오가 있다면 예전 일본에는 샹샹이 있었다. 2017년 일본 우에노 동물원에서 대중에 공개된 아기 판다 샹샹은 지금의 푸바오 못지않은 인기를 끌었고, NHK는 샹샹이 일본에 주는 경제효과를 267억엔(약 2380억원)으로 추산하기도 했다.
이밖에 2011년 영국 에든버러 동물원은 양광과 톈톈이 도착하고 난 뒤 2년간 방문객 수가 400만명 증가하기도 했다. 양광과 톈톈은 지난 4일(현지시간) 중국으로 돌아갔다.
판다를 돌보는 비용이 너무 많이 든다는 지적도 있다. 영국 BBC에 따르면 판다 한 마리당 매년 수억원이 사용된다. 판다는 동물원에서 사육하는 데 가장 비싼 동물로 코끼리 사육비의 약 5배가 든다. 판다가 먹는 대나무를 공수하는 데 드는 비용이 유지비의 대부분을 차지하는데, 중동이나 유럽에서는 항공이나 선박으로 대나무를 가져와야 하기 때문에 특히 돈이 많이 드는 것으로 알려졌다.
또 판다를 보유한 동물원은 한 쌍 기준 중국 정부에 연간 10억원가량을 보호기금으로 내고 있다. 해외에서 새끼 판다가 처음 태어나면 추가로 보호기금 50만달러(약 6억6000만원)를 내고, 두 번째부터는 30만달러(약 4억원)로 낮아진다. 중국은 임대 국가의 경제력에 따라 기금 액수를 책정해 국가별로 차이가 있다. 핀란드에서는 기금이 부담돼 임대 기간이 종료되기 전 판다를 조기 반환하는 방안을 검토한 바 있으며, 지난 4월 판다 린후이가 돌연사한 이후 추가 판다 대여 여부를 두고 찬반이 갈리는 태국에서도 반대 이유로 과도한 비용이 제기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