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말 단골 발레 ‘호두까기 인형’ 골라 보는 재미… 국립·유니버설발레단의 색다른 맛

러시아 볼쇼이·마린스키발레단에 뿌리 둔 안무
주인공 소녀 이름도 ‘마리’와 ‘클라라’로 달라
안무 구성, 무대 연출 등 차이점 비교해 보는 맛
국립발레단 정은지, 유니버설발레단 이유림 데뷔 무대 관심

‘백조의 호수’, ‘잠자는 숲속의 미녀’, ‘호두까기 인형’은 차이콥스키(1840∼1893)가 음악을 작곡한 3대 명작 발레로 불린다. 이 중 연말 겨울에 가장 어울리는 건 단연 ‘호두까기 인형’이다. 소녀 클라라(마리)가 눈 내린 크리스마스 전날 밤 선물로 받은 호두까기 인형과 함께 꿈속에서 신비로운 체험을 하는 이야기가 동화처럼 펼쳐진다. 둘은 각각 아리따운 숙녀와 멋진 왕자로 변신해 연인이 되기도 한다. 이 작품은 E.T.A 호프만의 동화 ‘호두까기 인형과 생쥐왕’을 알렉상드르 뒤마가 각색한 내용에 기반해 전설적 안무가인 마리우스 프티파(1818∼1910)와 그의 조수인 레프 이바노프(1818∼1905)가 안무를 짰다.

 

하지만 1892년 12월 러시아 마린스키 극장에서의 초연은 엉성한 연출 등으로 혹평과 함께 처참한 실패로 끝났다. 이후 바실리 바이노넨(1901~1964)이 이야기의 일관성 등을 보완한 안무를 1932년 선보이면서부터 큰 인기를 끌었다. 바이노넨 판과 이를 바탕으로 다양하게 재안무된 ‘호두까기 인형’은 매년 겨울 전 세계 발레 공연에 단골로 등장하게 됐다. 국내 양대 발레단인 국립발레단과 유니버설발레단도 이맘때면 ‘호두까기 인형’을 내놓는데, 표를 팔자마자 매진되기 일쑤다. 같은 작품인데도 안무와 무대 연출 등이 달라 색다른 맛이 나 비교해서 보는 재미도 쏠쏠하다.

국립발레단의 ‘호두까기 인형’ 공연 모습. 국립발레단 제공

국립발레단과 유니버설발레단의 ‘호두까기 인형’ 안무의 뿌리는 각각 러시아를 대표하는 세계적 발레단인 볼쇼이발레단과 마린스키발레단이다. 국립발레단은 볼쇼이 수석안무가였던 유리 그리고로비치(96)가 1966년 개정한 ‘호두까기 인형’을 보여주고 있다. 마임을 최소화하고 동작의 역동성과 조화에 초점을 맞춘 안무가 돋보인다. 반면 유니버설발레단은 마린스키 바이노넨 판을 바탕으로 원작 이야기를 쉽게 풀어낸 마임과 정제된 안무가 특징이다.

 

유니버설발레단의 ‘호두까기 인형’ 주인공 소녀 이름은 차이콥스키와 프티파가 한 대로 ‘클라라’인데, 국립발레단 작품에선 뒤마 소설 속 이름처럼 ‘마리’다. 호두까기 인형도 어린 무용수(국립발레단)와 목각인형(유니버설발레단)으로 다르다. 국립발레단은 해마다 부설 발레아카데미 학생을 대상으로 선발심사를 거쳐 호두까기 인형 역할을 뽑는다고 한다.

 

1막 후반부에 왕자와 숙녀로 변한 호두까기 인형과 소녀가 환상의 나라로 갈 때 국립발레단에선 배를 타고 가지만, 유니버설발레단에선 사슴이 끄는 썰매를 타고 간다. 

유니버설발레단의 ‘호두까기 인형’ 공연 모습. 유니버설발레단 제공

무대에 등장하는 다양한 인형 중 일부 이름이 다르거나 해당 역할을 맡은 무용수 구성과 춤 양식에서 차이가 나기도 한다. 예컨대, 1막에서 국립발레단은 ‘악마인형’ 무용수(2명)가, 유니버설발레단은 ‘무어인형’ 무용수(1명)가 나와 춤을 춘다. 세계 각국의 무용수가 나라별 특성이 반영된 춤을 추는 2막에서 인도의 경우 국립발레단은 남녀 무용수 2명이, 유니버설발레단은 여성 무용수 5명이 맡는다. 

 

소녀의 대부인 ‘드로셀마이어’도 국립발레단 작품에선 극 중 화자로 설정돼 극의 짜임새와 개연성을 강화한다. 

 

마지막 장면도 확연히 차이가 난다. 유니버설발레단은 남녀 주인공의 그랑 파드되(2인무)와 눈꽃 요정들의 춤의 향연이 끝난 후, 잠에서 깨어나는 클라라의 침실에서 막이 내린다. 하지만 국립발레단은 남녀 주인공의 그랑 파드되에 이어 소녀 마리 역을 맡은 어린 무용수가 무대로 등장하며 끝난다. 관객들에 따라 공연의 여운과 평가가 엇갈릴 수 있는 대목이다. 

국내 ‘호두까기 인형’ 무대에 데뷔하는 국립발레단 정은지(왼쪽)와 유니버설발레단 이유림. 각 발레단 제공

두 발레단 모두 간판 수석무용수가 총출동하는 가운데 국립발레단 정은지(25)와 유니버설발레단 이유림(26)이 ‘마리’와 ‘클라라’로 데뷔한다. 

 

2021년 국립발레단에 정단원으로 입단해 군무부터 차곡차곡 실력을 쌓아온 정은지는 ‘주얼스’의 루비, ‘돈키호테’의 메르세데스 등 무대에서 홀로 무용수의 기량을 뽐내는 솔로 역을 맡았지만 주역은 이번이 처음이다. 그는 “한 번쯤은 꼭 해보고 싶었던 작품이었다. 큰 무대다 보니 떨리지만, 설레기도 한다”며 “(다른 무용수와 달리) 저는 이번이 처음이니 노련함보다는 좀 더 새로운 느낌으로 춤을 추고 싶다”고 말했다. 

발레 ‘주얼스’의 정은지 공연 장면. 국립발레단 제공

이어 “군무나 솔로일 때는 저 혼자만 잘하면 됐지만, 지금은 파트너와 호흡도 맞춰야 하고 군무들과도 어우러져야 해서 부담되기도 하다”며 “마리와 왕자가 춤추는 장면이 화려하고 웅장한데, 좀 더 부드럽고 우아한 느낌을 내려 신경 쓰고 있다”고 덧붙였다. 

 

지난 10월 유니버설발레단으로 이적한 이유림은 2016년부터 몸담은 헝가리 국립발레단에서 주인공 소녀 역을 맡은 적이 있지만 국내 무대는 처음이다. 열두 살이던 2009년 유니버설발레단의 ‘호두까기 인형’ 공연에 어린 클라라로 무대에 서기도 했다. 이유림은 “해외에서도 많은 사랑을 받는 ‘호두까기 인형’을 한국에서 다시 할 수 있어 좋다”며 “유니버설발레단 버전은 동작이 깔끔하고, 테크닉(기교)적으로 볼거리가 많다. 다른 발레단과 또다른 매력의 클라라를 보여주겠다”고 했다.

발레 ‘돈키호테’의 이유림 공연 장면. 유니버설발레단 제공

국립발레단은 오는 25일까지 서울 예술의전당, 유니버설발레단은 21일부터 31일까지 세종문화회관에서 공연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