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이상의 캔디 걸은 없다”…BBC, 韓 드라마 여주인공 변화 조명

'사랑의 불시착' 스틸컷. tvN 드라마 공식 SNS 캡처

 

영국 매체 BBC가 시대와 함께 변화한 한국 드라마 속 여주인공에 대해 주목했다. 

 

10일(현지시간) BBC는 ‘K드라마, TV 속 한계를 뛰어넘는 여성들’이라는 제목의 기사를 통해 한국 드라마의 여주인공의 변화에 대해 논했다.

 

BBC는 “많은 한국 드라마, 즉 K-드라마에서는 이제 남성만큼 많은 여성 주인공들이 등장한다. 올해 최고 히트작 중 하나인 넷플릭스 시리즈 ‘더 글로리’는 괴롭힘을 당한 여성이 복수를 하는 이야기를 담았다.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도 자폐증 여성 변호사를 주인공으로 내세웠다”고 언급했다. 

 

그러면서 ‘한국 드라마에서 여성의 역할이 항상 이렇게 흥미로웠던 것은 아니다. 최근엔 성관계 장면, 양성애 관계, 나이가 든 사람들의 연애 등 전통 사회에서 금기시됐던 것들이 깨지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 스틸컷. ENA 드라마 공식 인스타그램 캡처

 

한국 시나리오 작가협회 부회장 홍은미는 BBC에 “1990년대 한국 드라마는 주로 재벌, 부자 상속자가 가난한 여자를 사랑하는 이야기였다”라고 말했다. 버릇이 없는 상속자들이 서민 여성에게 빠져드는 ‘꽃보다 남자’와 같은 드라마들이 대표적 예시다.

 

이러한 드라마들은 소위 ‘캔디 걸’이라는 장르로 알려져있다. 이 장르는 쾌활하고 열심히 일하는 고아 소녀가 왕자의 마음을 사로잡는 일본 애니메이션 ‘캔디 캔디’에서 따온 것이다. 

 

홍 부회장은 “그러나 지금은 그렇지 않다. 여자 주인공들이 바뀌었다. 그들은 매우 독립적이고 전문직을 가지고 있으며 결혼에 큰 신경을 쓰지 않는다”고 말했다. 

 

BBC는 “한국 드라마에서 여전히 부자 혹은 강인한 주인공이 선호되지만, 이제는 그 주인공이 여성일 수도 있다”며 대표적 예로 드라마 ‘사랑의 불시착’을 꼽았다. 배우 손예진은 극 중 남한의 재벌 2세 ‘윤세리’ 역을 맡았다. 

 

배우 엄정화. 세계일보 자료사진

 

JTBC 드라마 ‘닥터 차정숙’으로 큰 사랑을 받았던 엄정화는 “완벽한 남자를 찾는 것이 삶의 궁극적 목표였던 90년대에는 스포트라이트가 여성을 거의 비추지 않았다. 이제는 강인한 여성 캐릭터들이 각자 자신의 방식대로 삶을 과감히 받아들이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제 나이 여성들의 이야기를 들려줄 수 있어 다행이고 행복하다”고 밝혔다. 

 

엄정화는 데뷔할 때만 해도 중년 여성이 드라마의 주연을 맡는다는 것은 상상할 수 없는 일이었다고 언급했다. 그는 “서른이 넘으면 주연을 맡을 수 없었다. 35세가 넘으면 한 가정의 어머니 역할로 캐스팅 되는 경우가 많았다. 정말 재능 있고 아름다운 여성임에도 나이 때문에 스크린에서 모습을 감추곤 했다”고 털어놨다. 

 

BBC는 한국 사회의 젠더 갈등 및 저출산 문제에 대해서도 언급했다. “한국은 현재 세계에서 가장 낮은 출산율을 기록하고 있으며, 여성평등 지표에서도 매우 낮은 점수를 받았다. 한국 여성은 남성보다 평균 3분의 1 적은 급여를 받지만, 적어도 드라마에서는 여성들이 주도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JTBC 드라마 ‘힘쎈여자 강남순’ 스틸컷. JTBC 홈페이지 캡처

 

최근 종영한 JTBC 드라마 ‘힘쎈여자 강남순’을 비롯해 ‘힘쎈여자 도봉순’, ‘마인’, ‘품위있는 그녀’ 등 주로 여성을 주인공으로 한 작품을 선보여온 백미경 작가는 “‘품위있는 그녀’는 중년 여성에 대한 이야기로 여러 방송사로부터 거듭 거절당했다. ‘힘쎈여자 도봉순’이 성공하자 ‘품위있는 그녀’를 방송했다”고 전했다. 

 

백 작가는 “여성 캐릭터들이 보다 적극적이고, 힘이 넘치며 독립적인 모습을 보여주는 거 같다”면서도 “하지만 만족스럽지 않다. 판도를 바꾸고 싶다”며 강인한 포부를 드러냈다. 

 

경제지 포브스의 한국 드라마 평론가 조앤 맥도날드는 케이블 채널과 OTT의 실험적인 투자가 신데렐라 스토리에서 벗어나 한국 드라마의 다변화에 도움을 줬다고 봤다. 

 

맥도날드는 “직업을 가진 여성이 늘어나고 남성과 관련 없는 문제를 해결하는 여성이 많아지기 시작했다. 올해 리뷰한 한국 드라마 절반에서 강인한 여성 캐릭터가 등장했다”고 강조했다.

 

이어 “한국 사회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을 완전히 반영하는지 확신할 수는 없지만, 드라마가 확실히 그 길을 선도하고 있다”고 평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