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세월호 참사, 지난해 서울 용산구 이태원 참사, 지난 7월 충북 청주시 오송지하차도 참사 등 생명을 위협하는 크고 작은 사회적 재난이 계속되면서 응급처치법이나 생존수영, 대피방법 등 ‘내 목숨은 내가 지킨다’는 교육에 대한 수요가 늘고 있다. 어린아이부터 청소년, 성인, 노인까지 남녀노소 가릴 것 없이 실제 소방당국, 지방자치단체 등이 운영하는 시설에서 안전교육을 받는 사람들도 적지 않다. 문제는 안전교육에 대한 시민의 높아진 관심에도 “안전교육 인프라가 여전히 부족하다”는 지적이 끊이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이태원 쇼크’로 생존교육 수요 급증
13일 전국 지자체에 따르면 지난해 수도 서울 한복판에서 발생한 이태원 참사를 계기로 안전교육을 원하는 시민이 부쩍 늘면서 각 지자체와 산하 공공기관들, 소방당국 등이 앞다퉈 교육 프로그램을 편성하고 있다. 서울의 한 구청 관계자는 “구청장과의 대화나 민원 등으로 안전교육을 받을 기회를 늘려 달라는 요구가 많아진 것 같다”며 “예산 편성 단계부터 이를 반영해 안전교육에 대한 투자를 늘리고 기획에 신경을 쓰는 중”이라고 했다.
특히 이론에 그치지 않고 실제 상황을 가정한 체험형 안전교육에 대한 수요가 많다. 서울 송파구 안전체험교육관에서 만난 어린이집 교사 오세희(30)씨는 “이론으로는 여러 번 익혔지만 배운 내용을 10분 이상 실습까지 한 적은 처음”이라고 했다. 신림중 2학년 오채민(15)양은 보라매안전체험관에서 완강기를 이용해 탈출하는 체험을 마친 뒤 “실전 같은 상황에서 연습한 덕분에 자신감이 생긴 것 같다”고 했다.
교육부는 현재 학교안전법(학교안전사고 예방 및 보상에 관한 법률)에 따라 매년 학생 안전교육을 51차시 이상 진행하고 있다. 안전교육 7대 분야는 △표준 생활안전 △교통안전 △폭력·신변안전 △약물·인터넷 중독 △재난안전 △직업안전 △응급처치다. 지난해 학생 평균 교육 시간은 54.9차시다.
어릴 때부터 재난·재해 상황 시 대처법 등을 몸에 익히기 위해선 안전교육이 필수이지만 학생 만족도는 교직원에 비해 낮은 편이다. 초등학교에서 중학교로, 다시 고등학교로 고학년이 될수록 만족도가 떨어지는 경향도 보인다. 학교안전공제중앙회가 지난해 6∼7월 전국 1349개교 교직원 2만1890명, 학생 5만2418명을 조사한 결과 학교에서 안전교육이 충분히 이뤄진다고 생각한다는 만족도(5점 만점)는 학생이 4.26점, 교직원은 4.73점이었다. 학교에서 안전교육을 받은 후 안전의 중요성을 더 잘 알게 됐다는 응답을 5점 만점으로 수치화한 결과 초등학생 4.26점, 중학생 4.01점, 고등학생 3.94점으로 학교급이 올라갈수록 낮아졌다.
경기의 한 고등학교 교사는 “안전교육을 해도 실습이나 체험보다는 교재나 영상 위주로 진행할 때가 많다 보니 학생들의 관심도가 떨어지는 면이 있다. 매년 비슷한 내용이어서 학년이 올라갈수록 흥미가 더 떨어진다”며 “학교의 예산이나 관심도에 따라 교육 질 차이도 있는 편”이라고 말했다
◆체험형 교육장 태부족…퇴직 소방관 등 활용을
체험 중심 안전교육을 하려고 해도 안전체험관이 턱없이 부족하다. 교육부에 따르면 지진 등 다양한 상황에 대해 체험교육을 할 수 있는 안전종합체험관은 현재 전국 11곳으로, 전체 학생 수의 약 10%만 이용할 수 있는 수준이다.
서울소방재난본부가 운영하는 안전체험관의 경우 서울에 보라매와 광나루 두 곳이다. 신림중 학생들을 인솔한 담임교사 권순애씨는 “경쟁률이 치열한 프로그램이라 예약이 쉽지 않은 것으로 안다”며 “시설 확충과 유연한 운영이 필요해 보인다”고 했다. 보라매 안전체험관 관계자는 “체험관을 오전부터 오후까지 최대치로 가동하고는 있지만 시민 수요를 감당하기엔 벅찬 형편”이라고 귀띔했다.
정부는 전국 17개 시·도에 1개 이상 안전종합체험관을 만들어 모든 중·고교생이 1번 이상, 초등생은 학년군(1∼2학년, 3∼4학년, 5∼6학년)별로 1번 이상 교육을 받을 수 있도록 한다는 방침이다. 체험관 신설과 별개로 교육부는 화재·지진 등의 체험시설을 갖춘 차량을 각급 학교로 보내는 ‘찾아가는 안전체험교육’을 올해 600여개 학교에서 실시했고, 내년에는 소방청 등과 협의해 체험학교 수를 늘리겠다고 밝혔다.
채진 목원대 소방안전학부 교수는 “체험교육이 필요한 재난 대비와 안전교육은 학교 안보다는 (체험관 등) 전문기관에서 실시하고 소정의 이수증명서를 제출할 경우 교육시간을 인정해 주는 제도를 도입할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 채 교수는 “시설 투자도 중요하지만 인력에 대한 투자가 선행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해외에선 퇴직한 소방관이나 경찰관 등 전문인력을 활용한다”며 “안전교육 전문가 양성을 위한 국가 차원의 플랜을 마련해야 하고, 안전교육 강사들의 근무환경 보장도 이뤄져야 한다”고 말했다.
강태선 세명대 보건안전학과 교수는 안전의 개념부터 명확히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강 교수는 “우리나라는 국가안전관리 체계 내에서 어떤 교육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에 대한 개념 정립이 부족하다”며 “20여개 부처가 조금씩 분담할 정도로 안전의 개념도 너무 광범위하다”고 했다. 그는 “재난관리 측면에서 시민교육이 어떤 역할을 해야 하는지를 먼저 정리하고 교육시설을 늘릴 필요가 있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