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의힘 김기현 대표의 13일 대표직 사의 표명은 장제원 의원의 전날 총선 불출마 선언 후 약 31시간 만에 나왔다. 윤석열 정권 탄생의 일등공신인 장 의원과 ‘윤심’(尹心, 윤석열 대통령의 의중)으로 당권을 잡은 김 대표가 이틀 새 잇달아 용퇴 결단을 내린 것이다.
김 대표는 전날부터 공식 일정을 취소하고 국회 사무실에 출근하지 않은 채 숙고를 이어갔다. 자택에도 귀가하지 않고 서울 모처에서 일부 측근과 극비리에 접촉하며 거취 문제에 대한 의견을 수렴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날 사퇴 입장 발표 직전 김 대표가 신당 창당 작업 중인 이준석 전 대표와 회동한 사실이 알려지기도 했다. 두 사람은 예정돼있던 일정이라고 했지만 김 대표의 신당 참여 가능성, 이 전 대표의 국민의힘 잔류설 등 다양한 해석이 나왔다.
김기현 지도부는 지난주만 해도 공천관리위원회 조기 출범 계획을 밝히며 당 주도권을 거머쥐겠다는 의지를 보여왔다. 그러나 김 대표가 사퇴 입장을 전격적으로 발표하자 여권에선 윤심이 작용한 것 아니냐는 해석이 나왔다.
윤석열 대통령이 네덜란드 순방을 떠나기 전 김 대표와 장 의원에게 희생을 주문하는 메시지를 전했다는 이야기도 흘러나왔다. 이 같은 상황에서 장 의원이 먼저 불출마 선언을 하자 김 대표의 거취 압박이 커졌다는 것이다.
인지도가 부족하다는 약점이 있었던 김 대표는 친윤(친윤석열) 핵심인 장 의원의 지원 속에 ‘윤심 후보’로 알려지며 지난 3월 전당대회에서 당대표로 선출됐다. 이 때문에 수직적 당정관계를 벗어나기 어렵다는 점이 태생적인 한계로 지적됐다. 10·11 서울 강서구청장 보궐선거 후보로 보선 발생의 귀책사유가 있는 김태우 전 강서구청장을 공천한 결정에서 이 같은 한계가 극단적으로 드러났다는 평가가 나왔다.
보선 패배 후 쇄신책으로 띄운 혁신위원회가 당 지도부와의 대립 끝에 활동을 조기 종료한 상황에서 내년 총선 판세가 열세라는 지표가 잇따라 나오자 ‘김기현 책임론’이 일기 시작했다. 장 의원의 불출마 이후에는 대표직 사퇴 요구가 거세지며 리더십을 회복하기 어려워졌다는 점도 김 대표의 거취 결정 요인으로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