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류세 인하? 그거는 잘 모르겠고 요새 버스고 전기세고 다 올라서 힘들어요.”
거의 일평생을 서울 상계동에서 나고 자랐다는 A(64)씨는 논현역 인근에서 빌딩 청소를 한다. 과거 고(故) 노회찬 의원이 이야기했던 ‘6411번 투명인간’ 중 하나다. 한 달에 200만원 남짓한 월급을 쪼개서 생활하니 백원 단위 변화일지라도 체감도는 엄청나다.
이와는 달리 60조원에 달하는 ‘세수결손’에도 최근 정부는 2021년부터 줄곧 유지되던 ‘유류세 인하’를 내년 2월까지 또 연장하겠다고 밝혔다. 지난해 유류세 인하로 인한 세수 감소는 5조5000억원 규모다. 윤석열정부 출범 직후 교통에너지환경세(교환세)를 법정 최대 한도인 37%까지 인하 폭을 넓혔다가 올해부터 휘발유 유류세 인하율을 25%로 축소했고, 경유에 대해선 37%의 인하율을 유지 중이다.
정부는 ‘민생(生)’을 위한 조치라고 말한다. 하지만 엄밀히 말하면 투명인간이 아닌 시민, ‘가진 자의 생(生)’을 위해서다.
유류세의 구성을 살펴보면 이러한 의심은 더욱 짙어진다. 유류세는 교환세, 교육세, 지방세로 등 세 가지의 목적세로 구성된다. 교환세는 이름대로 도로, 공항 등 교통인프라 및 에너지와 환경 개선, 기후 대응 등 공공을 위한 목적으로 사용된다. 나머지 교육세와 지방세의 경우 국가균형발전 등을 위해 쓰인다. 가진 자와 못 가진 자 구분 없이 모두가 수혜자다.
이러한 유류세 인하의 수혜자는 고소득층이다. 고소득층일수록 유류 소비량이 많기 때문이다. 국회예산정책처의 ‘에너지세제 현황과 쟁점별 효과 분석’에 따르면 에너지세제 혜택으로 최저 소득계층인 1분위의 세 부담 변동은 1만5000원에 불과했으나, 최고 소득계층인 10분위의 세 부담 변동은 15만8000원이었다. 무려 10배 이상의 차이다.
물가부담 완화도 정부의 유류세 인하 연장 이유 중 하나이지만 반대급부로 국부가 줄어든다. 유가가 오르면 수요가 줄며 가격이 다시 안정권으로 돌아오는 것이 시장의 원리다. 하지만 유류세를 내리면 비싼 가격에 수요는 꺾이지 않으니 유류 수입액은 이전보다 증가해 무역수지가 악화한다. 그리고 무역수지 악화는 성장률을 떨어뜨려 ‘경기 침체’를 장기화시킨다. 취약계층의 고통의 시간이 늘어나는 것이다.
게다가 유가는 최근 9주 연속 하락세다. 물가를 이유로 유류세 인하를 연장하기에는 무리가 있다. 그럼에도 중동을 핑계로 유류세 인하를 또다시 추진하겠다는 정부의 판단은 소수의 취약계층을 희생시켜 나머지 다수의 비위를 맞추는 총선용 ‘표퓰리즘’이라는 비난을 피하기 어려워 보인다.
쇠사슬의 강도는 가장 약한 고리가 결정한다. 정부란 위기 시 모름지기 먼저 약자를 배려하고 근본적 위기 극복 방안에 집중해야만 한다. 하지만 유류세 인하 조치는 둘 중 어디에도 해당하지 않는다. 향후 백년을 살펴야 하는 정부가 눈앞의 이익에 매몰돼 그릇된 판단을 하는 우를 범해선 안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