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속문해력] 우리말로 누리는 인공지능 세상

“이 해로운 기계는 사형을 선고받았으니 / 교만한 자들이 겸손한 자들을 억압하지 않게 하라.” 이 노래는 19세기 초 영국을 뒤흔들었던 러다이트 운동(Luddite Movement) 시기에 울려 퍼졌다. 러다이트 운동은 기계가 사람의 일자리를 뺏어 간다고 생각한 노동자들이 벌인 기계 파괴 운동이다. 지금 돌이켜 보면 실패할 수밖에 없는 운동이었는데, 그 이유는 한마디로 시대착오적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기계에 대한 당시의 공포는 충분히 이해할 만하다.

돌이켜 보면 챗지피티(ChatGPT)라는 대화형 인공지능 서비스가 등장했을 때도 사람들은 공포를 느꼈다. 그 전까지 우리가 아는 대화형 인공지능이라고 해봐야 휴대전화의 음성 비서 기능처럼 지극히 일상적인 말대답이나 날씨를 읽어 주는 게 고작이었다. 그런데 챗지피티는 논문도 쓰고 심지어 시도 쓴다. 당장 공포에 빠진 곳은 학교였다. 학생이 제출한 과제가 사람이 쓴 것인지 인공지능이 쓴 것인지 구분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번엔 200여 년 전처럼 진행되지는 않는 듯하다. 소란한 1년이 지난 지금, 우리는 챗지피티의 한계와 문제점을 잘 알고 있다. 챗지피티를 차단하기보다는 활용을 고민한다. 이런 변화는, 우리가 인공지능과 더불어 사는 시대로 나아가리라는 것을 느끼고 있기 때문이다.

기계가 노동자를 굶기리라는 예상과 달리, 그 높은 생산성은 노동자들이 좀 더 사람다운 삶을 누릴 길을 열었다. 인공지능 역시 당장은 사람을 위협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장기적으로 보면 사람의 가치를 높이는 길을 열어 줄 수도 있다. 그 전제는, 이 기술의 열매가 모두에게 고루 돌아가는 데 있다. 그러나 아직은 한국어 인공지능의 발달은 영어에 비해 매우 더디다. 챗지피티의 혜택도 사실은 영어에 익숙한 소수에게 해당한다.

국립국어원은 한국어를 잘하는 인공지능을 키우는 데 쓸 말뭉치를 꾸려 나가고 있다. 이미 올해 말 기준으로 한국어 특성 정보를 입력한 양질의 말뭉치 72종을 공개하고 있고, 앞으로도 계속 구축해 나갈 계획이다. 말뭉치는 인공지능을 키우는 먹이다. 나쁜 먹이를 알아차려서 피할 수 있도록 욕설이나 혐오 표현도 모은다. 인공지능이 인간에게 해로운 기계가 아니라 겸손한 기계가 되도록. 영어에 의존하지 않고도 우리말 잘하는 인공지능의 혜택을 우리 국민이 모두 누릴 수 있도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