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계청이 최근 발표한 장래인구추계에서 합계출산율 저점(2025년 0.65명·중위 추계)이 또다시 늦춰지면서 출산 대책을 원점에서 재검토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질 전망이다. 현재 시행 중인 4차 저출산고령사회 기본계획이 ‘개인의 삶의 질 제고’와 같은 모호한 목표를 제시해 효과를 거두지 못하고 있는 만큼 이제라도 구체적이고 실효성 있는 대응 방안을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다.
17일 국회입법조사처 등이 최근 발표한 ‘초저출산 장기지속 시대의 인구위기 대응 방향’에 따르면 지난 2006년부터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가 5년 단위로 시행 중인 저출산고령사회 기본계획은 최근 들어 출산율 하락 흐름을 전혀 제어하지 못하고 있다. 1차(2006~2010년)와 2차(2011~2015년) 기본계획에서는 합계출산율 평균이 각각 1.19명, 1.23명으로 회복세를 보였다. 하지만 제3차 계획이 시행된 2016년 합계출산율이 1.17명으로 하락한 이후 2020년 0.84명으로 떨어졌다.
보고서는 특히 지난 2021년부터 5년간 적용되는 제4차 기본계획의 경우 ‘삶의 질, 성평등 공정, 인구변화 대응’ 같이 간접적이고 추상적인 목표를 설정하고 있어 외양만 확대됐을 뿐 내실은 부족해지고 있다고 지적했다. 실제 1~3차 기본계획의 세부과제는 100개 미만이었지만 4차 계획에서는 236개로 확대돼 사실상 저출산과 관련 있는 각 부처의 모든 계획이 망라됐다. 보고서는 “4차 계획은 세부과제들을 원칙없이 모두 포괄하는 양상을 더욱 심화해 기본계획 필요성 자체를 잠식하고 있다”고 진단했다.
보고서는 이에 정책 목표를 구체적으로 설정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정책 대상을 ‘모든 청년’이 아니라 ‘결혼 및 출산 선택 의사가 있는 청년’으로 설정해야 한다는 것이다. 국내총생산(GDP) 대비 가족지원 공공지출 비중이 한국이 1.56%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 2.29%에 비해 현저히 낮은 만큼 수요자가 체감할 수 있는 과제를 집중 제시해야 한다고 보고서는 제안했다.
체감 가능한 정책 방안으로 보고서는 우선 보편적 육아휴직 도입을 꼽았다. 현행 육아휴직 제도는 2001년 고용보험 기금을 재원으로 시행됐는데 ‘일하는 부모’의 육아휴직 이용률 제고에만 초점이 맞춰졌다. 자연히 미취업자가 많은 취약계층 부모들은 지원 대상에서 배제될 수밖에 출생 시점부터 영아의 기본권 보장에 있어 ‘빈익빈 부익부’ 현상이 심화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보고서는 또 아동수당을 대폭 확대할 필요성이 있다고 강조했다. 아동수당은 프랑스가 20세 미만까지 132유로를, 독일은 18세 미만 대상 250유로를 지급하고 있는 등 실효성을 검증 받은 저출산 대책이지만 현재 우리나라는 0~7세 아동 10만원, 부모급여(0~1세 대상 50~100만원) 지급 등에 머물고 있다. 보고서는 “양육가구 소득 보장이라는 취지를 구현하기보다는 출생아수 급감에 따른 예산 소요 감소분을 출산장려형 인센티브 정책으로 활용하는 방식을 지속하고 있다”고 꼬집었다.
장시간 근로 관행이 개선되기는커녕 역행하고 있는 점도 문제로 지적된다. 보고서에 따르면 2021년 현재 한국의 근로시간은 전체 취업자 1910시간, 의존적 취업자(임금근로자 등) 1928시간으로 스웨덴과 프랑스 대비 400~500시간 길었고, 저출산 국가에 속하는 일본과 스페인보다 약 300여 시간 길었다. 보고서는 “최근의 주 69시간제 논란도 그간의 저출산에 대한 범정부적 대응의 취지를 거스르는 정책 후퇴에 해당한다”면서 “현행 장시간 근로 해소 정책들은 한국 사회의 과도한 일 생활 불균형을 해소하고 자녀의 양육과 돌봄에 필수적인 핵심 자원인 가족시간을 확대하는 것과 거리가 있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