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꼭 잡아서 본보기로 엄벌에 처해야 한다.”
경복궁 담벼락 낙서 보도에 달린 댓글이다. 또 다른 댓글엔 “숭례문 방화 사건 범인도 처벌이 너무 약했다”, “숭례문 생각난다” 등 2008년 숭례문 화재 사건을 떠올리는 내용도 있었다. 복구가 채 되기도 전에 또 일어난 경복궁 ‘낙서 테러’ 때문에 국민들이 분노하고 있다. 예전 문화재 훼손 사례까지 언급되며 경복궁 낙서 범인을 향한 비판 목소리가 커지고 있는 모양새다.
18일 경복궁 담벼락을 스프레이 낙서로 모방범행 용의자가 범행 하루 만에 자수했다. 새로운 낙서가 발견된 곳은 이미 낙서로 훼손돼 문화재청이 복구 작업 중인 영추문 좌측 담벼락으로 길이 3m·높이 1.8m에 걸쳐 훼손됐다. 새 낙서는 붉은색 스프레이로 특정 가수와 앨범 이름이 쓰인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 16일 ‘영화공짜’ 문구와 불법 영상 공유 사이트를 뜻하는 문구 등을 낙서한 용의자들은 아직 경찰이 행방을 추적 중이다.
문화재가 훼손된 사례는 비단 이번뿐만이 아니다. 훼손당한 문화재는 ‘서울 숭례문’, ‘서울 흥인지문’, ‘서울 삼전도비’. ‘울주 언양읍성’ 등이 있다. 방화부터 경복궁 담벼락처럼 스프레이로 낙서 당한 문화재가 대부분이다. 범행을 저지른 이들은 자신의 불만 해소를 위해서 혹은 그릇된 신념에서 비롯된 역사 청산을 목적으로 문화재를 범죄 표적으로 삼았다.
2008년 발생한 숭례문 화재가 대표 사례다. 숭례문은 방화 5시간 만에 재가 되었고, 온 국민은 충격과 상실감에 빠졌다. 당시 채모씨가 토지 보상 판결 등의 국가 처분에 불만을 품고 저지른 범행의 결과였다. 10년 뒤인 2018년 흥인지문에서도 방화 사건이 일어났다. 범인 장모씨는 교통사고 보험금을 제대로 받지 못한 억울함에 불을 지른 것으로 알려졌다. 사회에 대한 불만이 방화로 표출됐다고 짐작할 수 있다.
방화사건이 아닌 낙서테러도 있었다. 2017년 언양읍성 성벽 4곳에 붉은 스프레이 페인트가 낙서된 것이다. 낙서는 미국을 비하하는 내용, 욕설 등이었다. 범인 박모씨는 문화재보호법 위반과 공용물건 손상 등의 혐의로 기소됐고, 1심에서 징역 2년을 선고받았다. 당시 경찰은 “직업이 없는 박씨는 이전에도 비슷한 수법으로 낙서하다 처벌받은 전력이 있다”며 “우주신이 경찰을 가만두지 않을 것이라고 말하는 등 횡설수설하고 있다”고 전했다.
치욕의 역사를 청산하는 ‘투사’임을 자칭한 문화재 훼손범도 있다. 2007년 백모씨는 ‘조병갑 공적비’와 ‘삼전도비’에 페이트칠을 했다. 조병갑 공덕비는 동학혁명의 원인을 제공한 당시 고부군수 조병갑이 자신의 공덕을 기리기 위해 스스로 세운 것이다. 삼전도비는 병자호란 때 청나라 태종이 조선 인조의 항복을 받아내고 자신의 공덕을 내세우려고 지은 비석이다. 백씨는 문화재 훼손 이유로 “치욕의 역사를 되풀이해서는 안 된다는 걸 경고하려 했다”, “역사를 제대로 청산하기 위한 것이다”고 전했다.
전문가는 이번 범행 대상이 경복궁이라는 점에 주목했다. 이수정 경기대 범죄심리학과 교수는 “범행 대상인 경복궁은 외국인 여행객이 많은 곳이다”며 “첫 번째 범인은 과거 사례와 유사하게 반사회적인 의도를 가졌을 수도 있으나, 외국인이 많은 지역을 선정한 이유도 있을 것으로 보인다”고 전했다. 이어 그는 “사이버 공간은 국경이 없다”며 “담벼락에 적힌 내용이 불법 영상 공유 사이트인 점을 미루어 보아 범인은 외국인이거나 검거가 어려운 소속일 것 같다”고 추측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