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 후배 혜경의 큰아이가 다섯 살, 작은아이가 세 살 때 한 대형 백화점에서 이벤트를 했다. 상품을 10만원 이상 구입하면 산타 할아버지를 집으로 보내 준다는 이벤트였다. 혜경은 백화점에서 선물 두 개를 사서 아이들 이름을 쓰고 안내 데스크에 집 주소와 함께 맡겼다. 드디어 크리스마스날 혜경은 슬쩍 아이들한테 바람을 잡으며 분위기를 띄웠다. “산타 할아버지가 오시려나? 안 오시려나? 착한 일 많이 하고 엄마 아빠 말 잘 들었으면 우리 집에도 오실 텐데.” 두 아이는 그날따라 장난감 정리도 잘하고 서로 갖겠다고 툭하면 다투는 자동차 장난감도 ‘형이 먼저’, ‘아우가 먼저’ 양보하느라 바빴다.
오후 1시가 넘어서 막 점심 준비를 하고 있는데 ‘딩동 딩동’ 요란하게 현관 벨이 울렸다. 나가 보니 산타 할아버지가 커다란 선물 보따리를 등에 짊어지고 서 있었다. 아이들이 ‘어? 이상하다. 산타 할아버지는 한밤중에 굴뚝 타고 오시는데. 빨간 코 루돌프는 어디 있나?’하는 표정으로 고개를 갸웃갸웃하며 밖을 내다봤다. 루돌프 사슴 대신 소형 자동차가 서 있었다. 그보다 더 난감한 건 아무리 봐도 산타 할아버지가 아니라 산타 청년이었다. 하얀 수염은 달았지만 피곤한지 비딱하게 한쪽이 내려와 있었다. 아마 백화점에서 아르바이트하는 청년인 듯했다. 거기다 두 아이 줄 선물을 제대로 찾지 못해서 한참 선물 주머니를 뒤져 가까스로 꺼냈다. “착한 일 많이 해서 주는 거다” 하는데 목소리도 영락없는 애였다.
혜경은 백화점 상술에 생각 없이 동참한 스스로를 탓하며 대문을 막 닫으려는데 산타 청년이 간절한 표정으로 혜경을 붙잡고 말했다. “저어, 화장실이 급한데 좀 쓸 수 있을까요?” 뭔가 아슬아슬한 기분이었지만 거절할 수 없는 노릇이었다. 산타 청년이 안으로 들어와 화장실을 쓰고 나오는데 큰아이랑 딱 마주쳤다. “어? 엄마, 산타 할아버지도 오줌 싸?”하고 큰소리로 물었다. 동화책에 나오는 산타 할아버지는 밥도 안 먹고 화장실도 안 가고 언제나 빙그레 미소만 짓는 너무 멋진 존재라고 생각했는데…. 잠시 당황하던 산타 청년이 이렇게 말했다. “자주는 아니고 가끔 일 년에 한 번씩. 크리스마스 때만….” 자기 딴에는 아이들 꿈을 깨고 싶지 않아서 둘러댄 모양이다. 큰아이는 고개를 끄덕이며 “으응, 일 년에 한 번씩.” 그러더니 갑자기 “그럼 밥도 일 년에 한 번씩 크리스마스 때만 먹어요?”하고 물었다. 산타 청년은 얼떨결에 고개를 끄떡였는데 그다음 더 난감한 상황이 벌어졌다. 두 아이가 밥 먹고 가라고 산타 청년을 붙잡았다. 마침 점심시간이 지났고 아침부터 이 집 저 집 다녔을 산타 청년이 제대로 된 식사를 할 리가 없었을 테고 그래서 혜경도 먹고 가라고 붙잡았다. 산타 청년은 잠시 머뭇거리더니 식탁의자에 앉았다. 차마 수염을 떼지 못해서 된장찌개 국물이 수염에 묻을까 봐 조심하느라 애쓰며 식사를 다 마친 산타 청년이 허리 굽혀 감사 인사를 했다. 그리고 주머니에서 초콜릿 두 개를 꺼내 내밀면서 수줍게 말했다. “이거 제 선물이에요. 크리스마스 선물….” 혜경은 산타 할아버지한테 진짜 크리스마스 선물을 받은 것처럼 가슴이 뛰었다. 가장 큰 선물은 지금 우리가 함께 있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