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은진의 ‘에스파냐 이야기’] (15) 스페인의 크리스마스

멀고도 가까운 나라 스페인

스페인은 우리나라와 수교한 지 올해 73주년을 맞은 유럽의 전통우호국이다. 과거에는 투우와 축구의 나라로만 알려졌으나 최근 들어 우리나라 사람들이 즐겨 찾는 주요한 유럽 관광지다. 관광뿐 아니라 양국의 경제· 문화 교류도 활발해지는 등 주요한 관심국으로 부상하고 있다.

 

이은진의 ‘에스파냐 이야기’ 연재를 통해 켈트, 로마, 이슬람 등이 융합된 스페인의 역사와 문화에 대해 소개한다.

 

크리스마스 연휴가 다가온다. 스페인 사람들은 크리스마스를 어떻게 보낼까? 가톨릭을 믿는 스페인에서는 크리스마스가 각별한 의미가 있다. 스페인사람들의 크리스마스 주간은 우리보다 더 길고 다채롭다.

 

엘 고르도 2023년 크리스마스 20유로짜리 복권 © El Gordo loteria

12월 22일에는 크리스마스 복권으로 알려진 국영 엘 고르도(El Gordo) 복권을 추첨한다. 크리스마스 복권은 여름 무렵부터 판매를 시작하고, 가장 성대하다. 크리스마스 복권은 스페인 내전 기간에도 중단된 적이 없었다고 하니 가히 국가적인 행사이다.

 

우리나라의 로또복권이 두 자리 숫자 6개 쌍으로 구성되는 반면 엘 고르도 복권은 여섯 자리로 된 단일 숫자가 들어있다. 보통 가족의 생일이나 자신에게 의미 있는 번호를 골라 산다. 올해 크리스마스 복권의 상금은 무려 25억9000만 유로(우리 돈 3조 6884억)로 추산된다. 크리스마스 복권 추첨은 당일 오전 내내 추첨 행사를 하고, 방송에서도 생중계한다. 사람들은 대박을 노리기보다는 그냥 축제로 즐긴다.

 

12월 24일 크리스마스 이브는 노체부에나(Nochebuena)라고 부른다. 레스토랑에서 는 크리스마스 특선 메뉴를 선보인다. 이베리코 하몽, 해산물, 치즈 등 전채요리에 이어서, 수프, 구운 고기, 생선 또는 속을 채운 칠면조 요리가 나온다. 투론(Turrón), 마지판(marzipan), 에피파니 케이크와 같은 디저트를 먹는다. 여기에 카바(cava) 와인을 곁들여 마신다. 카바는 와인보다 숙성기간이 짧아 저렴하지만 톡 쏘는 맛이 인상적이다. 가정집에서도 가족들이 모여 이런 메뉴를 먹으며 성탄 전야를 축하한다.

 

바르셀로나 파세오데그라시아 거리와 크리스마스 트리. 필자 제공

12월 28일은 성스러운 순진한 사람들의 날(Día de los Santos Inocentes)로 불린다. 모든 사람이 짓궂은 농담을 해도 용서받는 날이다. 우리나라의 만우절과 비슷하다. 언론에서도 터무니없고 조작된 가짜 뉴스 기사를 보도하기도 하는 재미있는 날이다. 이날에는 흰 종이로 오려낸 그림을 다른 사람의 등에 붙이는 장난을 하기도 하는데, 이노센타다(inocentada)라고 부른다. 이날 발렌시아지역에 있는 잘란세(Jalance)라는 조그만 마을에서는 미치광이 축제(fiesta de Los Locos)가 열린다. 미치광이 역할을 하는 시장이 하루 동안 시(市)를 다스리게 된다고 한다.

 

전 국민의 80% 이상이 가톨릭신자인 스페인은 확실히 우리나라보다 크리스마스를 즐기는 방식이 더 풍성하다. 이 분위기를 직접 느끼고 싶다면 스페인 현지로 가는 게 좋지만, 다만 호텔과 레스토랑, 다른 모든 것들이 평소에 비해서 비싸진다는 것을 고려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