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변화로 계절이 ‘오락가락’ 여름은 늘고 겨울 갈수록 줄어 인간은 사시사철 풍족해졌지만 동물들은 뒤척이는 겨울 보내
“내게 기대어 조각잠을 자던 / 그 모습 그대로 잠들었구나 / 무슨 꿈을 꾸니 / 깨어나면 이야기해 줄 거지 / 언제나의 아침처럼.” 아이유의 노래 ‘겨울잠’의 한 대목이다. 아이유는 말했다. “이 노래를 부르면 이제는 정말로 무너지지 않는다”고 말이다. 겨울잠은 아이유를 버티게 하는 힘이다.
여수 바닷가에 살던 나는 겨울잠이란 말을 집이 아니라 학교에서 처음 배웠다. 초등학교 2학년 초겨울 선생님이 말씀하셨다. “개구리는 겨울잠을 자요.” 난 아니라고 했다가 야단 맞았다. 내가 살던 정유공장 사택 옆으로는 공장에서 데워진 냉각수 덕분에 겨울에도 김이 모락모락 나는 개천이 흘렀다. 개천에서 개구리를 잡아 선생님께 보여드렸다. 이번엔 매를 맞았다.
겨울잠의 대표 선수는 곰과 개구리다. 항온동물인 곰이 겨울잠을 자는 이유는 그 큰 덩치의 체온을 유지할 정도로 충분한 먹이를 확보할 수 없는 겨울에 에너지 소비를 줄이기 위해서다. 가끔 깨어 활동하기도 하니까 곰의 겨울잠은 긴 잠이라고 할 수 있다. 이에 반해 변온동물인 개구리의 겨울잠은 심장박동과 호흡마저 거의 하지 않는 반죽음 상태다. 겨울잠을 자는 땅속이 영하로 떨어져도 개구리 몸은 얼지 않는다. 개구리 세포에는 부동액이 있기 때문이다.
(선생님이 때려도 되는 건 아니지만) 좋다! 보통의 경우 개구리는 겨울에는 겨울잠을 잔다. 그런데 도대체 겨울은 언제 오는 것인가? 24절기에 따르면 입동은 11월 7~8일이다. 태양 황경이 225도가 될 때다. 그런데 11월 상순에 겨울이라고 느낀 적은 없다. 교실에서 석탄을 때던 시절에도 11월 마지막 주 월요일부터 석탄 배급을 했다. 기상학적으로는 평균 기온, 그러니까 최고 기온과 최저 기온의 중간값이 5도 밑으로 내려가서 다시 올라가지 않는 때를 겨울의 시작점이라고 한다. 2000년대에 들어서는 12월 4일 이후에 시작되고 있다. 아마도 올해는 훨씬 뒤에 시작했을 듯싶다.
정말로 기후가 변하고 있는 것일까? 숫자로 확인해 보면 된다. 더운 여름은 98일에서 118일로 20일이나 늘었고 추운 겨울은 109일에서 87일로 22일이나 줄었다. 지구 자전축이 움직인 것도 아니고 태양이 더 가까워진 것도 아닌데 말이다. 오로지 이산화탄소 때문이다. 앞으로 차차 화석연료에서 태양광과 풍력 같은 재생에너지로 바꾸면 온도가 더 이상 오르지는 않고 조절될 것이라고 믿는다. 인간은 문제를 일으키기도 하지만 해결하는 능력도 있으니 말이다. 그렇다고 해서 온도가 예전으로 돌아가지는 않을 것이다. 그래서 걱정이 남는다.
겨울은 누구에게나 혹독한 계절이다. 미리 대비해야 한다. 이걸 생명들은 자연스럽게 터득하고 적응했다. 나무들도 수분 손실을 막고 잎을 유지하는 데 사용하는 에너지를 절약하기 위해, 또 눈 무게에 나뭇가지가 부러지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이파리를 미리 떨궈둔다. 조경수는 사람들이 짚으로 나무를 감싸주고 때로는 마대로 나무 전체를 감싸서 동해를 방지하기도 한다.
그런데 계절이 오락가락하고 있다. 그나마 우리 인간에게는 그래도 달력이라도 있다. 그래서 온도와 상관없이 계절이 변했다고 느끼고 대비한다. 그런데 달력조차 없는 동식물들은 어떻게 겨울을 대비할까? 며칠 전 한 친구가 자신의 페이스북 담벼락에 한국지질자원연구원에 도롱뇽이 나타난 사진을 올렸다. 달력이 바뀌어도 겨울이 온지 모르는 거다. 그 도롱뇽은 최근 며칠 찾아온 깜짝(?) 추위에 살아남았을까?
사람도 개구리처럼 반죽음 상태를 유지하거나 곰처럼 긴 잠을 자는 것은 아니지만 생활을 최소화했다. 마침 가을걷이로 먹을 것은 일단 확보됐고 밖에 다니자니 춥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이젠 그런 일은 없다. 먹을 것은 사시사철 풍족하고 따뜻한 옷과 화석연료에서 나오는 강력한 에너지는 겨울을 잊게 했다. 덕분에 동물들은 제대로 겨울잠을 잘 수 없다. 겨울잠에서 깨어나 긴 하품을 하면서 신선한 공기를 삼키는 곰의 얼굴을 떠올려 보자. 아이유가 노래했다.
“때 이른 봄 몇 송이 꺾어다 / 너의 방 문 앞에 두었어 / 긴 잠 실컷 자고 나오면 / 그때쯤엔 예쁘게 피어 있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