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년부터 수술이 어려운 총상신경섬유종 치료를 위해 매년 2억원이 넘는 비용을 부담한 소아·청소년 환자와 그 가족의 부담이 최대 20분의 1 수준으로 줄어든다.
중증·희귀 질환 소아 환자의 삶 개선을 위해 치료제 급여화 절차를 줄이겠다는 정부 정책이 적용된 두 번째 사례다. 중증·희귀 질환자들은 병으로 인한 고통을 평생 견뎌야 하고 매년 치료를 위해 많게는 수억원의 비용을 낸다. 치료제 급여화를 바라는 환자들이 많은데 건강보험이 적용되기 쉽지 않고 되더라도 급여 대상 환자 기준을 충족하기 어려운 실정이다.
보건복지부는 20일 개최한 건강보험정책심의위원회(건정심)에서 내년부터 수술이 불가능한 3세 이상 18세 이하 소아·청소년의 총상신경섬유종과 국소 진행성 및 전이성 비소세포폐암 환자 1차 치료제를 건보로 지원한다고 밝혔다.
총상신경섬유종은 모든 신체 부위에 발생하는데 주로 피부나 척추 신경 근처에 발병해 외모를 변형시키는 희귀 난치성 유전 질환이다. 혈관이 많은 부위에 발생하면 수술이 불가능하다. 외형적 기형 문제가 큰 탓에 환자 대부분이 신체적, 정서적, 심리적으로 고통받는다.
총상신경섬유종 치료제는 ‘코셀루고캡슐’(성분명 셀루메티닙)이 유일하다. 환자 1인당 투약 비용이 연간 약 2억800만원에 달해 환자와 가족들은 건보 지원을 애타게 바랐다. 지난해 한 번 급여화에 실패하고, 지난 8월 약제급여평가위원회에서 ‘재심의’ 판결을 받아 환자 가족들은 지난 9월 국가인권위원회에 보험급여를 촉구하는 진정서를 내기도 했다.
이번 건정심에서 코셀루고 급여가 확정되면서 환자 가족들의 부담은 크게 줄 전망이다. 건보가 적용되면 본인부담률 10%로 투약 비용이 2080만원으로 감소한다. 여기에 소득 분위(1∼10분위)에 따라 환자 부담을 제한하는 본인부담금 상한제가 적용되면 연간 투약 비용은 1014만원까지 줄어든다. 비소세포폐암 환자 치료제도 급여가 적용된다. 특정 유전자 변이가 있는 국소 진행성과 전이성 비소세포폐암 1차 치료가 급여 대상이다. 암 본인부담금(5%)을 적용하면 연간 투약비는 6800만원에서 340만원으로 절감된다.
윤석열정부는 ‘약자복지’ 정책 중 하나로 중증·희귀 질환 치료제 환자 접근성 강화를 위한 신속 등재 제도를 내세웠다. 자기공명영상(MRI) 등 불필요한 건보 보장은 줄이고 중증·희귀 질환자 지원을 강화하자는 취지다. 희귀질환 소아 환자의 경우 생명을 위협하지 않아도 삶의 질 개선이 입증된다면 경제성 평가를 면제하겠다고도 했다. 지난 5월부터 건보가 적용된 소아 저인산혈증성 구루병 치료제 ‘크리스비타주사액’(성분명 부로수맙)이 해당 제도를 통한 첫 급여 사례였다.
희귀질환 치료제는 개발이 어렵고 환자 수도 적어 전체 7000여종 희귀질환의 5% 정도만 치료제가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국내에 들어온 치료제는 너무 비싸 환자 가족들은 치료제 급여를 동아줄로 여긴다. 그러나 치료제 급여를 승인하는 사전승인 제도의 경우 승인 기준이 엄격하고 승인율도 낮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원용균 순천향대 천안병원 교수(방사선종양학)는 지난 11일 국회 토론회에서 “급여 조건에 따라 치료를 받지 못하는 환자들이 불가피하게 발생한다”며 “상급종합병원 의료진이 신청함에도 승인율이 20% 정도면 (병원에서) 그 약을 쓰기 어려운 게 사실”이라고 말했다. 원 교수는 “희귀질환 특성상 급여기준 개선을 위한 근거자료가 부족하기 때문에 전문가 집단이 의견을 모아 유연하게 반영하는 게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한편, 이날 건정심에서는 기존 첩약 건강보험 적용 시범사업을 2026년까지 연장하고, 대상 질환도 확대하기로 결정했다. 내년 4월부터 기존 시범사업 대상(안면 신경마비, 뇌혈관질환 후유증, 월경통 질환)에 요추추간판탈출증(허리 디스크), 알레르기비염, 기능성 소화불량 등 세 가지를 추가하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