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바는 ‘일본의 에디슨’이라 불리는 다나카 히사시게가 1875년 설립한 다나카 제작소가 뿌리다. 다나카는 일본 최초의 증기기관차와 증기선 모형을 만들었고 대포제조 등에도 기여한 인물이다. 이 제작소의 사명은 시바우라로 바뀌고 일본 최초의 백열전구를 만든 도쿄전기와 합치면서 두 기업의 앞글자를 따 도시바가 됐다. 도시바는 창업자의 정신이 투영돼 ‘혁신의 아이콘’으로 고속성장을 질주했다. 전후 일본제철, 도요타자동차와 함께 일본 재계의 ‘삼두마차’라 불릴 정도였다.
도시바의 명성은 최초 기록들만 봐도 가늠할 수 있다. 일본 1호 제품은 냉장고와 세탁기(1930년)부터 디지털컴퓨터(1954년), 자동전기밥솥(1955년), 컬러TV(1960년), 워드프로세스(1978년) 등까지 즐비하다. 1980년대에도 노트북 등을 세계 최초로 양산하며 승승장구했다. 호사다마라 했던가. 도시바는 전원이 꺼져도 데이터를 저장하는 낸드플래시를 처음 개발·상용화하고도 그 성장 가능성을 반신반의하며 투자를 주저했다. 그 사이 기술을 전수받은 삼성전자가 과감한 투자로 세계 반도체 시장을 석권했다.
이후 도시바는 급격히 쇠락의 길을 걷게 된다. 2006년 빚보증만 8조원에 달한 미국 원전기업 웨스팅하우스를 시가보다 3배나 비싼 값에 사들인 게 화근이었다. 경쟁사들이 미래가 불투명하다며 인수를 포기한 것과 달리 도시바 경영진은 원전 수요가 늘어날 것으로 오판했다. 결국 동일본 대지진 여파로 약 7125억엔의 손실을 떠안고 2017년 인수 11년 만에 웨스팅하우스의 파산을 선언했다. 이 와중에 2015년에는 5년간 2200억엔의 실적을 부풀린 분식회계까지 들통났다. 그 여파로 그해 5500억엔의 적자 속에 1만명이 해고됐고 메모리·의료기기 등 알짜사업 매각이 잇따랐다.
148년의 역사를 자랑하던 도시바가 그제 도쿄증시에서 상장 폐지됐다. 2조엔을 들여 도시바를 인수한 현지 사모펀드는 “구조조정 후 5년 내 재상장할 것”이라고 했지만 실현 여부는 알 길이 없다. 도시바의 몰락 원인으로는 경영진 파벌주의, 관료화 및 상명하복의 조직문화, 폐쇄적 경영 등이 꼽힌다. 변화에 둔감하고 혁신의 속도에 뒤처지면 어떤 기업이라도 도시바의 비극을 피할 길이 없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