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같이 상담 받고 일어나자”…불법 촬영 피해 학생들에게 손 내민 피해 교사

제주시 한 고등학교에서 지난 10월 불법 촬영 사건 발생
피해 교사, 심리적 충격 호소하며 병가…다른 피해 학생들에게 도움 주고 싶다는 메시지 남겨
범행 저지른 재학생은 지난 15일 검찰에 송치…경찰, 피해자 200여명으로 추정
제주시의 한 고등학교에서 발생한 불법 촬영 범죄의 피해 교사 A씨가 다른 피해 학생들에게 도움을 주고 싶다는 취지로 지난 20일 피해회복대책위원회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올린 글의 일부. 전국중등교사노동조합 제공

 

자신이 근무 중인 고등학교에서 벌어진 남학생의 불법 촬영 범죄에 피해를 당한 교사가 깊은 상처 속에서도 홀로 피해 사실을 숨기고 있을 다른 이들에게 도움 주고 싶다는 메시지를 냈다.

 

22일 전국중등교사노동조합에 따르면 앞서 교사 A씨는 지난 20일 피해회복대책위원회(대책위)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올린 글에서 “선생님은 여러분이 참 많이 보고 싶다”며 “아프지 말고 다들 상담 받고 일어나보자”고 말했다.

 

A씨는 이어 “사건 관련으로 많이 힘들어하는 제자들이 있다는 소식이 들려오지만, 상담을 받고 있는 학생은 극소수라는 이야기를 들었다”고 덧붙였다.

 

앞서 A씨는 지난 10월18일 제주시의 한 고등학교 체육관 여자화장실에서 휴대전화가 고정된 휴지 상자를 발견, 경찰에 신고했다.

 

경찰에 신고가 접수되는 등 사건이 커지자 자신이 휴지 상자를 놓았다며 이튿날 자수한 B군은 교사와 학생 50여명을 촬영한 혐의(성폭력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 위반)로 구속돼 지난 15일 검찰에 송치됐다. B군은 퇴학 처분을 받았다.

 

B군은 경찰 조사 과정에서 올해 9월과 10월에도 가족이 운영하는 식당 화장실과 주변 거리에서 도민과 관광객 등 불특정 다수를 대상으로 불법 촬영 범죄를 저지른 사실이 추가로 확인됐다.

 

경찰은 A씨와 이 학교 학생 등을 포함해 불법 촬영 피해자를 200여명으로 추정하고 있다.

 

대책위에는 사건 발생 학교의 학생, 학부모, 교사 등 240여명이 가입한 것으로 알려졌다.

 

A씨는 자신이 휴지 상자를 발견한 동시에 피해자이기도 하다면서, “제가 피해자라는 사실이 드러나는 게 처음에는 너무 두렵고 무서웠다”고 글에서 밝혔다. 상담으로 불법 촬영 피해의 아픔을 조금이나마 치유할 수 있었다면서, 상담을 받고자 하는 피해 학생이 있다면 함께 일정을 맞춰줄 수도 있다고 그는 말했다.

 

A씨는 심리적 충격과 2차 피해를 호소하며 병가를 낸 상태다. 특히 해당 학교는 피해 당사자일 수도 있는 A씨에게 B군 가정을 방문하도록 해 논란이 일기도 했다.

 

중등교사노조에 따르면 극심한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 진단으로 입원을 권유받기도 했던 A씨는 통원 치료와 상담을 병행하며 피해 사실을 드러내지 못하는 이들에게 도움의 손길을 내밀고자 한다.

 

원주현 중등교사노조 정책실장은 “청소년의 단순한 성적 호기심 정도로 치부해 사안을 축소·은폐한 학교 사회의 오랜 관행이 낳은 사건”이라고 강조했다.

 

원 정책실장은 “관리자와 교육 당국, 수사기관의 낮은 성인지감수성과 무사안일주의가 2차 피해를 확대했다”며, 도교육청 등의 가해자 형사 고발과 피해자 상담 치료와 변호사 지원 등 책임 있는 대응을 촉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