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시계를 추천해주세요”... 그래서 골라봤습니다 [김범수의 소비만상]

“첫 시계를 사고 싶은데 어떤게 좋나요?”

 

시계를 취미로 하다보면 어느 순간부터 종종 받는 질문이다. 생애 첫 차나 다름 없을법한 첫 시계 추천이라니, 요청을 받는 사람 입장에선 은근하게 부담이 커진다. 

 

보통 첫 시계를 중고로 사는 경우는 흔치 않다. 대부분 반짝이는 새 시계를 원한다. 하지만 문제는 ‘어떤 것’이 좋을지다. 한 두푼으로 구매하는 것도 아닌데 잘못 추천하다간 평생의 원한(?)을 사기 마련이다. 

 

첫 시계를 추천해달라는 요청을 처음 들었을땐, 자못 진지하게 학부시절 배웠던 마케팅 이론까지 붙여가며 추천했었다. 하지만 어느순간 깨닫게 된다. 이 모든 복잡한 과정이 정말 부질없다는 것을. 내 추천 시계를 썩 마음에 들어하는 사람은 많지 않았다. 그들은 그냥 적당하고 좋은 시계를 원했던 것이지, 미학이나 역사가 어쩌고 하는 의미는 크게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았다. 

 

그래서 이번 기사를 준비했다. 복잡하고 의미있는 시계가 아닌, 쉽고 간결하게 첫 시계를 구하는 방법이다. 어차피 손목시계 상당수는 ‘사치재’다. 필수품으로서 시계를 구한다면 누군가에게 묻지도 않는다. 이같은 생각과 약간의 알고리즘을 동원해 가격대별로 접근해보고자 한다.  

 

◆100만원 이하로 첫 시계를 산다면

 

100만원 이하의 예산에서 시계를 구하는 건 사실 추천하는 편은 아니다. 오늘날 손목시계는 ‘가성비’(가격대비 성능)라는 개념이 통용되기 어려운 사치재의 영역이 많다. 100만원에 명품 시계를 구입하겠다는 심리는, 5000원으로 버거킹 와퍼세트를 먹고 2000원을 남기는 것보다 어렵다.

 

따라서 이 예산으로 시계를 구하고자 조언을 구한다면, 항상 애플스토어나 삼성스토어에 갈 것을 권유한다. 전자제품 매장에서 애플워치나 갤럭시워치를 사는게 현명하다. 사실 정확성이나 다양한 기능 측면에서 아날로그 시계는 스마트워치를 따라갈 수가 없다. 

 

스위스 공식 크로노미터 검증 기관인 C.O.S.C에서 내세운 ‘명품시계’의 정확성은 10일 간 -5초~8초 오차범위다. 이 수준을 만족해야 롤렉스(Rolex)나 오메가(Omega), 쇼파드(Chopard) 등 명품시계의 정확성을 만족하는 것이다. 

100만원 이하로 추천하는 티쏘(Tissot)의 PRX 모델과 세이코(Seiko)의 세이코5 모델.

하지만 스마트워치는 10일이 아니라 10년이 지나도 오차가 나지 않는다. C.O.S.C 기준을 통과한 브랜드의 시계가 최소 1000만원에서 시작하는 걸 비교하면 스마트워치야 말로 최고의 가성비 시계라고 할 수 있다.

 

그래도 스마트워치는 싫다, 곧 죽어도 아날로그 시계를 가져야한다. 이렇게 주장한다면 그나마 추천하는 시계 브랜드는 남자의 경우 ‘티쏘’(Tissot)와 ‘세이코’(Seiko)를 꼽을 수 있다. 티쏘의 경우 스위스 시계의 입문 브랜드 역할을 할 정도로 100만원 이내에 구입할 수 있다. 특히 티쏘의 경우 최근 PRX 모델의 흥행으로 인지도도 커진 편이다.

 

세이코는 스위스 시계는 아니지만, 일본 브랜드답게 꼼꼼한 마감과 합리적인 가격을 자랑한다. 세이코 역시 이를 통해 스마트워치와 경쟁한다. 보통 세이코 시계는 ‘세이코5’ 모델로 입문하는 경우가 많다. 왜 세이코 5냐면 기계식, 충격 방지, 방수, 요일, 날짜의 5가지 요소를 갖추고 있기 때문이다. 

 

다만 자신이 여성이고 100만원 이하의 시계를 원한다면 선택지가 없다. 애플워치가 싫다면 그냥 자신의 취향으로 디자인 된 패션시계를 구입하는 방법 밖에 없다. 패션시계는 시계 브랜드가 아닌 대표적으로 다니엘웰링턴이나 로즈몽 같은 시계 전부를 뜻한다.

첫 시계를 구하는 알고리즘. 기자의 주관적인 생각이 많이 들어갔다.

◆가장 애매한(?) 100만∼1000만원 대

 

100만원 이상, 1000만원의 이하의 예산이 있다면 어떨까. 생각보다 선택지가 많지 않다. 두 번째 시계라면 다양한 선택지가 있지만, 첫 시계라면 경우가 다르다. 딱 한개의 시계로 만족해야하며, 어느정도 브랜드 인지도를 갖추고 있어야 하며, 디자인적으로도 예쁘면서도 무난한 ‘오래가는 시계’여야 한다.

 

구입하고자 하는 사람이 남성일 경우 ‘태그호이어’(TAG Heuer), 좀 더 예산을 쓴다면 ‘오메가’다. 물론 이 가격대에 브라이틀링(Breitling), 미도(Mido), 해밀턴(Hamilton) 등 수 많은 시계 브랜드가 포진해 있다. 하지만 첫 시계라면 가장 대중적인 브랜드를 구입하는게 만족도가 높다고 볼 수 있다.

태그호이어(TAG Heuer)의 모나코(Monaco) 모델

인지도 측면에서 이 가격대에 태그호이어와 오메가를 따라올 수 있는 브랜드는 없다고 봐도 무방하다. 

 

태그호이어의 경우 보통 ‘까레라’(Carrera) 모델이 첫 시계로 많이 권장되는 편이다. 예산을 더 들여 개성있는 시계를 구한다면 ‘모나코’(Monaco)도 나쁘지 않다. 태그호이어 자체가 속도를 측정하는데 특화됐다고 마케팅하는 만큼, 시계 디자인이 스포츠와 어울리면서도 젊은 감각이다.

 

오메가의 경우 앞서 작성한 제임스 본드의 시계로 알려진 ‘씨마스터(Seamaster) 300’ 모델을 주로 선호되는 편이다. 한 때는 1000만원 이하의 시계 중 달에 다녀온 문워치(MoonWatch)로 알려진 스피드마스터(Speedmaster)가 최고의 선택지로 여겨졌지만, 최근 문워치 가격은 1000만원을 돌파했다. 가격이 올라도 너무나 올랐다.

까르띠에(Cartier)의 발롱블루(왼쪽) 모델과 산토스 모델

여성의 경우에는 ‘까르띠에‘(Cartier) 탱크(Tank) 모델, 산토스(Santos) 모델, 발롱블루(Ballon Bleu) 모델 외엔 선택지가 마땅치 않다. 까르띠에는 여성 외에도 남성도 선호할 만큼 상당한 인지도와 탁월한 디자인을 가진 시계 브랜드다. 탱크 모델의 경우 특유의 사각형 디자인으로 아르데코(Art Déco) 스타일로도 불린다. 이 독특한 디자인 덕분에 화가 앤디 워홀, 복싱선수 무하마드 알리, 다이애나 왕세자비, 영화배우 안젤리나 졸리 등 유명인사들이 애용하기도 했다.

 

특별한 이유없이 이외의 브랜드를 찾거나, 이 정도의 금액을 시계에 쓰기 망설여진다면, 어김없이 스마트워치 스토어에 갈 것을 권장한다. 애초에 시계를 합리적인 소비로 생각하는 전제가 잘못됐다고 볼 수 있다. 

 

추천대로 태그호이어나 오메가를 샀다면 어떨까. 구매했던 이들, 특히 남성의 경우 어김없이 두 번째 시계를 찾곤 한다. 그리고 두 번째, 세 번째, 그리고 글을 쓰는 기자처럼 마흔 네번째 시계를 사게되는 늪에 빠지게 된다. 물론 이 같은 악순환에 빠지라는 보장은 없다. 다만 시계의 매력에 빠져 태그호이어나 까르띠에를 사도 어디서 오는지 모를 허전함은 어쩔 수 없다.

까르띠에(Cartier) 탱크 모델. 까르띠에 제공

◆1000만원 이상이라면 별 고민없이...

 

1000만원 이상의 예산으로 시계를 사는 경우는 의외로 많다. 정말 평생을 함께 할 시계 딱 하나를 사거나, 결혼을 전후해서 예물로 사는 경우다. 오히려 이 경우는 간단한다. 1000만원 이상의 예산이 있다면 어김없이 롤렉스를 추천한다. 다른 브랜드는 추천하지 않는다.

 

보통 롤렉스를 사는 경우 두 번째 시계 구입으로 이어지는 경우가 드물었다. 한 번의 롤렉스 구입으로 만족으로 하고 바로 시계를 ‘졸업’하는 경우가 많았다. 시계 애호가들을 보면 여러 시계를 사고 팔고, 돌고 돌아 롤렉스로 가는 일이 허다하다. 그럴바엔 한 번에 롤렉스를 구입하고 다시는 시계를 구입하지 않는 방법이 현명할 수 있다.   

롤렉스(Rolex) 삼대장 데이트저스트(DateJust), 서브마리너(Submariner), 데이토나(Daytona)

첫 구매로 시계를 졸업할 수 있는 롤렉스 모델은 ‘데이트저스트’(DateJust), ‘서브마리너’(Submariner), ‘데이토나’(Daytona)가 있다. 

 

시계를 추천해달라고 하는 이들 중에 1000만원 넘게 돈을 들여 롤렉스를 사는게 맞냐고 물어보는 사람도 있었다. 그러면 더 이상 추천을 하지 않고, 자동차를 구매하는게 더 현명한 소비라고 조언을 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