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월 25일로 날짜 바꿨지만… 우크라, 한동안 '1월7일 성탄절'도 기릴 듯

러시아 정교회의 유산에서 벗어난다며
성탄절 날짜 '1월7일 → 12월25일' 변경
BBC "당분간 두 개의 성탄절 기념할 듯"

“우리는 모두 함께 크리스마스를 기념합니다. 같은 날, 한 가족으로서, 단일한 국가로서, 하나로 결합된 나라로서.”

 

성탄절을 하루 앞둔 24일(현지시간)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이 국민들을 향해 내놓은 축하 메시지의 일부다. 다른 나라 같으면 통상적인 일이겠으나, 우크라이나에선 처음 보는 낯선 풍경이다. 그간 우크라이나는 12월25일 대신 1월7일을 성탄절로 기념해왔기 때문이다.

성탄절을 하루 앞둔 24일(현지시간) 우크라이나 수도 키이우의 어느 가정집에서 어른과 아이들이 우크라이나 전통음식 등을 차려놓은 채 성탄절을 축하하고 러시아와의 전쟁 종식을 기원하는 기도를 올리고 있다. AP연합뉴스

영국 BBC 방송에 따르면 우크라이나가 1월7일을 성탄절로 삼아온 것은 러시아 정교회의 영향이다. 우크라이나는 과거 수백년 동안 제정 러시아의 지배를 받았으며 종교적으로 러시아 정교회가 깊이 뿌리를 내렸다. 1917년 혁명으로 제정 러시아가 무너지고 공산주의 소련이 등장한 뒤에도 마찬가지였다. 소련 해체 이후인 1991년 우크라이나는 독립국이 되었으나 국민 대다수는 여전히 러시아 정교회를 신봉했다.

 

이에 우크라이나는 러시아 정교회를 믿지 않는 가톨릭 등 타 종교 신도들은 매년 12월25일을, 러시아 정교회 신앙을 지닌 이들은 매년 1월7일을 각각 성탄절로 기리는 모습이 계속 이어져왔다.

 

2014년 러시아가 우크라이나 영토의 일부인 크름반도를 무력으로 강탈하며 분위기가 달라졌다. 국민들 사이에 “과거 러시아 통치 시절의 잔재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졌다. 종교 분야도 마찬가지여서 러시아 종교회에서 분리·독립한 우크라이나 정교회가 탄생했다. 우크라이나 정교회는 러시아와의 결별을 상징하는 뜻에서 성탄절을 12월25일로 변경했다.

성탄절을 하루 앞둔 24일(현지시간) 우크라이나 수도 키이우의 한 교회에서 정교회 성직자들이 성탄절을 축하하고 러시아와의 전쟁 종식을 기원하는 예배를 진행하고 있다. AFP연합뉴스

물론 오랫동안 지켜 온 전통을 한 순간에 버라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많은 이들은 1월7일 성탄절의 향수를 잊지 못하고 12월25일은 물론 1월7일까지 1년에 두 번의 성탄절을 기념했다. 과거 한국에 신정(양력 1월1일)과 구정(음력 1월1일) 두 개의 설날이 존재했던 상황과 비슷하다.

 

2022년 2월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략은 우크라이나 사회 전반의 탈(脫)러시아화를 더욱 가속화했다. 젤렌스키 대통령은 러시아와의 전쟁 2년째인 올해 7월 법률을 고쳐 성탄절을 12월25일로 통일시켰다. 당시 그는 “이를 통해 더 많은 우크라이나인들이 러시아의 유산을 내던지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리고 올해 12월25일은 법 개정 후 처음 맞는 우크라이나의 ‘공식적이고 하나뿐인’ 성탄절에 해당한다. 성탄절을 하루 앞둔 24일 우크라이나 전역은 예전에는 볼 수 없었던 경건한 분위기 속에 예배와 기도가 이어졌다.

 

러시아 정교회에서 독립은 했으나 여전히 러시아 정교회의 색채가 짙은 우크라이나 정교회 신도들이 당장 1월7일 성탄절을 포기하긴 어려울 전망이다. BBC는 “많은 이들이 앞으로도 1월7일 성탄절을 기릴 것”이라며 “1년에 두 번 12월25일과 1월7일 성탄절을 축하하는 우크라이나 국민이 상당수에 이를 것으로 예상된다”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