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례 유지는 진보, 폐지는 보수?…학생인권·교권 놓고 '힘 대결'

학생인권조례가 제정된 배경은 2010년 '오장풍 사건'이다. 서울 동작구의 초등학교 교사 오모씨가 학생에게 욕설을 퍼붓고 뺨을 때려 바닥에 내동댕이치는 영상이 큰 논란으로 번졌다.

 

그해 6월 당선된 곽노현 당시 서울시교육감은 '체벌 금지'를 선언했다. 민주당이 다수를 차지한 서울시의회는 2012년 학생인권조례를 제정했다. 보수에서 받아들이기 어려운 교내 집회 허용, 성적 지향 등을 이유로 차별 받지 않는다는 조항을 담아 현재까지도 갈등이 이어지고 있다.

교육부도 체벌금지 조항 등 일부 내용이 상위 법령을 위배한다며 대법원에 학생인권조례 무효확인 소송을 제기했으나 2015년 전북 등을 시작으로 패소했다. 보수 시민단체로부터 위헌확인 소송도 제기됐으나 헌법재판소에서 2019년 합헌 결정을 내리면서 유지됐다.

 

학생인권도 교권도 모두 존중 받아야 할 가치이나 '학생인권조례'를 두고 찬반 양측은 극한 대립을 반복하고 있다. 교육계에선 조례가 진보와 보수 양측의 힘겨루기에 따른 결과물이기 때문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26일 교육계에 따르면 조희연 서울시교육감은 국민의힘이 주도하는 서울시의회가 학생인권조례를 끝내 폐지할 경우 시의회에 재의결을 요구한 뒤 대법원 권한쟁의 심판을 불사하겠다고 예고했다.

 

시의회는 주민발의 청구 형태로 서울 학생인권조례 폐지 조례안을 가결시킬 방침이었다. 전국교직원노동조합(전교조) 서울지부 등 261개 단체는 이에 대해 무효확인 소송을 제기하고 집행정지를 신청했다.

 

법원이 집행정지를 받아들여 소송 결과가 나올 때까지 표결이 어려워지자, 시의회 국민의힘은 지난 22일 다시 의원입법 방식으로 폐지 조례안 우회 상정을 시도했지만 논의 끝에 회의를 취소하기로 했다.

 

시도의회를 주도하는 세력이 바뀌자마자 10여년 전 학생인권조례가 만들어질 당시의 갈등 양상이 재연되는 셈이다.

 

학생인권조례가 교권을 추락시키는가, 아니면 상호 보완적인가. 교육계와 학계에서도 입장이 분분하다.

김현기 서울시의회 의장이 지난 22일 서울 중구 서울시의회에서 열린 제321회 정례회 제6차 본회의에서 서울특별시 학생인권 폐지조례안 심사에 대한 의결기관 연장의 건을 가결시키고 있다. 뉴시스

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교총)이 지난 7월25~26일 교원 3만2951명에게 조사한 결과 '학생인권조례가 교권 추락에 영향을 미쳤다'는 응답이 84.1%로 조사됐다.

 

한국교육개발원(KEDI)이 일반 성인과 학부모를 대상으로 매년 실시하는 교육여론조사 결과를 보면, 교권침해가 심각하다는 답변은 지난해 전체 4000명 중 54.7%로 최근 4년 간 응답률이 가장 높았다. 원인은 '학생 인권의 지나친 강조'가 42.8%로 가장 많았다.

 

반면 김종우 연세대 연구교수 등이 올해 6월 한국인권학회 '인권연구'에 발표한 '학생 인권과 교권 관계에 관한 학생의 인식' 논문은 정반대 결과를 말해준다.

 

경기 지역 초·중·고 700개교를 대상으로 온라인 조사를 실시한 결과, 학생 스스로가 인권을 존중 받는다고 느낄수록 교권을 존중하는 데 대해서도 긍정적으로 생각한다고 답하는 사례가 많아진 것으로 나타났다.

 

서울대 박사과정 정설미씨와 정동욱 서울대 교수가 2020년 한국교육행정학회 '교육행정학연구'에 실은 '학생인권조례 시행과 중학교 학교폭력의 관계 분석' 논문을 보면, 2010~2016년 7년 간 학생인권조례가 시행된 지역에서 학교폭력이 11.2% 감소하기도 했다.

 

보수 교육계도 학생인권이 존중해야 할 가치라고 말한다. 다만 '선을 넘은' 일방통행식 교육행정이 문제였다는 것이다.

 

조성철 교총 대변인은 "학생인권이 존중되고 보호돼야 한다는 부분에 대해 이견이 있지는 않을 것"이라며 "조례가 제정될 당시 충분한 합의를 갖지 못하고 강행된 데 기본적인 원인이 있다고 본다"고 전했다.

 

진보 성향 교육청의 그간의 행정에도 문제가 있다는 비판도 나온다. 조례를 유권 해석하는 과정에서 현실 속 교사의 교육할 권리보다 이상적인 학생의 권리와 책임만 과도하게 강조해 왔던 것은 아닌지 돌아봐야 한다는 이야기다.

지난 7월 21일 서울 서초구 교총회관에서 열린 교육부-한국교총 교권 확립을 위한 현장 간담회에서 참석한 교사들이 최근 극단적 선택으로 세상을 떠난 서이초등학교 담임교사를 추모하는 검은 리본을 달고 참석하고 있다.

박남기 광주교대 전 총장은 "수업 중 조는 아이를 교사가 꾸중을 했더니, 학부모 신고로 교육청에서 학생인권조례에 근거해 아동의 수면권을 보장하라고 결정한 사례가 있다"며 "교육청들이 조례를 바탕으로 교사의 교육활동을 어렵게 한 것도 사실"이라고 지적했다.

 

그렇다고 지금의 학생인권조례 폐지 시도 역시 너무 무리한 시도라는 지적도 나온다.

 

박 전 총장은 "진보 측이 다수당을 차지했을 때 반대 측 정당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제정을) 강행했듯 이번에도 똑같다"며 "'너희가 그렇게 했듯 이번에도 우리도 힘으로 밀어 붙인다'는 것이지 그 사람들의 머릿속에는 학생인권이나 교권은 강하게 들어있지 않다"고 했다.

 

공청회나 공론화나 합의, 숙의 절차를 거친 뒤 학생인권조례를 개정하는 방식이 필요해 보인다는 이야기다.

 

교육계에서는 정치 집단의 세 대결에 의해 교육 정책이 힘겨루기에 따라 요동치는 것을 막기 위해 국가교육위원회(국교위)가 마련됐다. 하지만 정부·여당 측이 위원 과반수를 점하고 있어 대립이 재연될 가능성이 크다는 우려도 많다.

 

박 전 총장은 "양측의 단체들이 적극적으로 모여서 지속적으로 협의하고 서로의 이해의 폭을 넓히는 방식으로 가는 게 가장 합리적"이라며 "성적 지향 조항 등 학생인권조례 속 논쟁적인 조항을 학교운영위원회 등을 통해 학생과 학부모, 교사들이 머리를 맞대고 논의하는 자리를 마련해 나갈 필요가 있다"고 제언했다.

<뉴시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