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왕설래] 주인 없는 포스코와 KT&G

2004년 40살에 2300달러(당시 약 250만원)로 식품회사를 인수해 5000억원대 자산가가 된 재미사업가 김승호 스노우폭스그룹 회장. 그가 펴낸 책 ‘돈의 속성’은 베스트셀러다. 그는 부자가 되는 길은 복권 당첨과 상속, 사업 성공뿐이라고 말한다. 복권과 상속은 선택받은 자에게만 주어지는 기회. 그러면 사업 성공만 남는다. 김 회장은 창업보다 남의 성공에 올라타기를 권한다. 좋은 경영자, 좋은 회사에 투자하라는 것이다. 다만 주인의식을 갖고 창업자 관점에서 회사와 경영자를 분석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KT와 포스코, KT&G의 공통점은? 공기업에서 출발해 민영화한 기업이다. 뚜렷한 주인이 없다. 누구나 주인이 될 수 있다는 건 누구도 진정한 주인이 아니라는 것과 다름없다. 계약직으로 살림을 맡은 머슴이 나서 주인 노릇 하면 몰아낼 도리가 없다. 책임이 모든 이에게 분산되면 어느 누구도 책임지지 않는 것과 같다고나 할까.

 

지난 3월 KT가 CEO 인사로 홍역을 앓더니 이번엔 포스코 회장 인사를 앞둔 광경이 가관이다. 정권 실세 개입설, 모인사 낙점설 등이 나돌더니 수사로까지 이어졌다. 최정우 회장의 내년 3월 3연임 도전이 기정사실로 받아들여지는 가운데 지라시에서 개입 당사자로 거론된 김대기 대통령실 비서실장이 유포자를 처벌해 달라고 수사의뢰한 것이다. 최 회장이 2000년 민영화 이후 처음으로 3연임에 성공하면 2027년까지 9년간 포스코를 이끌게 된다.

 

KT&G에서는 이미 ‘3연임, 9년 재임’ 기록을 달성했다. 백복인 사장은 내년 3월 4연임 도전에 나설 것으로 보인다. 한 행동주의펀드는 지난 9년간 주가 상승 등 뚜렷한 실적이 없었다면서 외부인재 영입을 촉구하고 있다. 하지만 지금까지 자격요건조차 공개되지 않고 있다. 현직에는 든든한 우호세력인 6개 사내 기관의 주식 지분은 국민연금이나 기업은행, 외국 투자자보다 많다. 이러니 누가 아성에 쉽게 도전할 수 있겠는가.

 

윤석열 대통령이 주인 없는 은행을 겨냥해 “자영업자·소상공인이 은행의 종 노릇을 하는 것 같다더라”고 한 지적은 계약직 머슴이 주인 노릇 하는 회사들에도 유효하다. 이런 회사에 주인의식을 갖고 투자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