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년 연말 전북에 따뜻한 마음을 전하는 전북 전주시 노송동 '얼굴없는 천사'가 올해도 어김없이 사랑을 전했다. 어느덧 24년째다. 이날 오전 10시 15분께 전주시 노송동주민센터에 한 통의 전화가 걸려왔다.
뉴시스에 따르면 신원미상의 그는 노송동 주민센터 한지은(32·여) 주무관에게 "이례교회 간판 아래에 (성금을) 놓았다. 어려운 가정을 위해 성금을 써달라"는 말을 남긴 뒤 전화를 끊었다.
한 주무관은 '천사가 왔다'고 직감했다.
이에 주민센터 직원들은 그가 남긴 목소리를 따라 이례교회 출입문 근처에서 종이상자를 찾았다. 상자 안에는 5만원권 돈다발 여러뭉치와 빨간 돼지저금통, 쪽지가 들어 있었다.
그가 남긴 쪽지에는 "올 한해도 고생많으셨다. 불우한 이웃을 위해 써달라"는 내용이 적혀있었다.
담겨진 돈은 천사가 평소 얼만큼 돈을 아끼고 모아왔는지 알 수 있었다. 빨간 저금통에는 10원짜리 동전은 물론 100원짜리 동전과 500원짜리 동전 등 다양했다. 지폐는 모두 5만원권으로 교환한 듯 보였다.
이렇게 올해 천사가 기부한 돈은 8006만 3980원에 달한다. 24년 간 누적 기부액은 9억6479만7670원이다.
지난해에도 '대학 등록금이 없어 꿈을 접어야 하는 전주 학생들과 소년소녀 가장에게 작은 도움이 되었으면 합니다. 힘내시고 이루고자 하는 모든 일들이 이루어졌으면 합니다'라는 쪽지와 함께 7600만5580원을 기부했다.
이름도, 직업도 알 수 없는 얼굴없는 천사의 선행은 2000년 4월 58만4000원이 든 돼지저금통으로 시작된 후 24년째 이어졌다.
특히 2019년에는 노송동주민센터 근처에 놓고 간 6000여만원의 성금이 도난당하는 사건이 벌어지기도 했으나 천사의 선행은 멈추지 않았다.
그의 메시지를 왜곡하지 않으려는 지역사회의 노력도 이어졌다. 성금으로 생활이 어려운 6578세대에게 현금과 연탄, 쌀 등을 구입해 전달했다. 노송동의 저소득가정 초·중·고교 자녀에게 장학금으로도 사용됐다.
천사의 고마움을 더 널리 알리기 위해 전주시는 2009년 얼굴 없는 천사의 뜻을 기리는 기념비를 세웠으며, 노송동 주민센터 일대를 천사의 길로 명명하고 기념공원도 조성했다. 지역주민들은 매년 10월4일을 '천사의 날'로 기념하여 불우이웃 나눔 행사를 하고 있다.
2011년 12월9일에는 전북지역 연극단체인 창작극회가 얼굴 없는 천사를 바탕으로 재구성한 연극 '노송동 엔젤'이 무대에 올랐으며, 2017년 4월에는 얼굴 없는 천사를 배경으로 한 영화 '천사는 바이러스'가 전주국제영화제에서 상영됐다.
송해인 노송동 주민센터 동장은 "천사의 선행이 24년째 이어졌다"며 "이번에 기부받은 금액은 천사의 메세지 대로 관내 불우이웃을 위해 사용될 예정"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