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국 ‘워크아웃’ 신청한 태영건설… 시장 불안감 차단 나선 정부 [한강로 경제브리핑]

국내 시공순위 16위 건설사이자 방송사 SBS를 핵심 계열사로 두고 있는 태영건설이 28일 기업구조개선작업, ‘워크아웃’을 채권단에 신청했다.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 유동성 위기를 결국 극복하지 못했다. 시공순위 20위권 내 건설사가 워크아웃을 신청한 건 2013년 쌍용건설(16위) 후 10년 만이다. 주채권은행인 산업은행은 내년 1월11일 채권자협의회를 소집해 워크아웃 개시 여부를 결정할 예정이다.

 

시장의 관심은 다른 건설사로까지 불똥이 튀느냐에 쏠린다. 정부가 예정보다 일찍 브리핑을 진행한 것도, “금융시장 및 건설업 전반으로의 전이 가능성은 제한적이다”고 강조한 것도 시장 불안감을 차단하려는 선제 움직임이다.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으로 유동성 위기를 겪고 있는 태영건설이 워크아웃을 신청한 가운데 28일 서울 여의도에 위치한 태영건설 본사 모습. 연합뉴스

◆금융권, ‘태영건설 워크아웃 신청’ 후폭풍에 촉각…김주현 “지금 가장 중요한 단어는 ‘연착륙’”

 

산업은행은 이날 “과도한 개발사업 관련 PF 연대채무로 인한 유동성 위기에 직면해 태영건설이 워크아웃을 신청했다”고 밝혔다. 산업은행은 오전 워크아웃 개시 여부를 결정하기 위한 제1차 금융채권자협의회 소집을 통지했다. 채권단은 내년 1월11일 1차 협의회를 열고 워크아웃 개시를 위한 결의 절차를 진행할 예정이다. 이에 앞서 다음 달 3일에는 채권자 설명회를 개최한다. 이 자리에서는 태영건설의 경영 상황, 자구계획, 협의회의 안건 등에 대한 설명과 논의가 이뤄진다.

 

태영건설 측은 이날 산업은행에 계열사 매각과 자산·지분담보 제공 등 추가 자구계획을 제출했다.

 

태영건설의 워크아웃 신청은 예견된 일이었다. 태영건설은 이날 서울 성동구 성수동 오피스 빌딩의 PF 대출 480억원을 시작으로 내년 초까지 계속 PF 상환의 만기가 도래할 예정이었다. 이달 만기가 돌아오는 PF 보증채무만 4000억원에 가까웠다. 

 

태영건설에 대출을 준 금융기관들은 워크아웃 사태 후폭풍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은행별로는 주채권은행인 산업은행이 PF 대출 2002억원으로 가장 많은 채권을 보유했다. 이어 KB국민은행, IBK기업은행, 우리은행, 신한은행, 하나은행 순이다. 이들 채권단 중 75% 이상이 동의해야 워크아웃이 개시된다. 워크아웃에 들어가면 채권단 관리하에 대출 만기 조정, 신규 자금 지원 등을 받는다.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으로 유동성 위기를 겪고 있는 태영건설이 워크아웃을 신청한 가운데 28일 서울 성동구에 위치한 태영건설의 성수동 개발사업 부지 모습. 연합뉴스

정부는 오전 김주현 금융위원장 주재로 기획재정부, 국토교통부, 금융감독원, 산업은행 등이 참석한 가운데 워크아웃 관련 논의를 열고 부동산PF·금융시장 안정화 방안을 논의했다. 워크아웃 신청이 이뤄지자마자 관련 회의를 연 것이다. 시장에 불안감이 확산하지 않도록 발 빠르게 움직였다. 정부는 “(태영건설은) 여타 건설사의 상황과 다르다. 과도한 불안 심리 확산만 없다면 건설산업 전반이나 금융시장 시스템 리스크로 연결될 가능성은 없다”고 강조했다. 

 

정부는 태영건설 관련 PF 사업장 60곳을 유형과 사업 진행 상황에 따라 추진 또는 정리 여부를 결정하겠다고 밝혔다. 분양이 진행돼 분양계약자가 있는 사업장은 총 22곳으로 태영건설이 계속 시공한다. 필요하면 주택도시보증공사(HUG)가 분양보증을 통해 시공사 교체 및 분양대금 환급 등 보호조치에 나서기로 했다. 협력업체 581개사가 체결한 계약은 1096건인데 이 중 1057건(96%)이 건설공제조합의 하도급 대금 지급보증 가입 또는 발주자 직불합의가 돼 있어 보증기관 등을 통해 하도급 대금을 받을 수 있다. 태영건설에 대한 매출액 의존도가 높은 하도급사는 먼저 금융기관 채무를 일정 기간 상환유예 또는 금리감면 등이 이루어질 수 있도록 지원하기로 했다. 건설사 발행 회사채·기업어음(CP)과 건설사 보증 PF-자산유동화기업어음(ABCP)에 대한 차환 지원 프로그램을 확대 시행하는 등 타 건설업계로의 영향을 최소화하는 데 주력하기로 했다. 김 위원장은 “지금 가장 중요한 단어는 ‘연착륙’”이라고 말했다. 

 

정부가 불안감 차단에 주력했지만 시장에서는 건설 및 금융업계 파장을 예의주시하고 있다. 삼성증권은 최근 보고서에서 “단기 자금조달 시장이 불안해질 가능성이 높다”며 “그간 중소 건설사 중심으로 리스크가 제기됐지만 시공능력순위 30위권 내 대형 혹은 중견 건설사로 신용등급 하향이 이뤄지며 PF 리스크가 건설사로 전이되고 있음을 시사한다”고 밝혔다. 금융권은 중소 건설사 줄도산 사태가 확산할 수 있다고 보고 전체 PF 사업장별 분양과 공정 현황, 공사비 확보 현황 등을 모니터링하고 있다. 증권가에서는 추가로 코오롱글로벌, 신세계건설 등에서 PF 리스크를 우려하고 있다. 

김보경 통계청 경제동향통계심의관이 28일 세종시 정부세종청사에서 2023년 11월 산업활동동향을 발표하고 있다. 연합뉴스

◆11월 전산업 생산 ‘플러스’ 전환됐지만…산업 현장 체감 경기는 여전히 부진

 

반도체 생산 반등에 힘입어 산업생산이 증가세로 전환됐다. 소비도 9개월 만에 최대 폭 상승했지만, 설비투자와 건설기성은 감소했다. 지난달 생산·소비가 반등한 것과는 대조적으로 이달 산업 현장의 체감 경기는 여전히 부진을 면치 못하고 있다. 특히 최근 해광건설의 부도사태 및 태영건설의 워크아웃 절차 진행 등 부동산 PF(프로젝트파이낸싱) 리스크가 현실화하는 상황에서 시장의 불안 해소 및 질서 있는 부실 PF 사업장 정리가 필요하다는 주문이 나오고 있다.

 

이날 통계청이 발표한 산업활동동향에 따르면 11월 전(全)산업 생산(계절조정·농림어업 제외)지수는 111.6(2020년=100)으로 전월보다 0.5% 증가했다. 지난 10월 -1.8%에서 한 달 만에 ‘플러스’로 전환한 것이다.

 

반등은 제조업을 중심으로 이뤄졌다. 11월 제조업 생산은 전월보다 3.3% 증가했다. 지난 8월(5.3%) 이후 가장 큰 증가 폭이다. 특히 지난 10월 12.6% 감소했던 반도체 생산이 지난달에는 12.8%나 늘었다. D램과 플래시메모리 등 메모리 반도체 생산 증가가 주효했다. 웨이퍼 가공 장비와 반도체 조립 장비 등의 생산이 늘면서 기계 장비도 8.0% 증가했다. 제조업의 재고·출하 비율은 114.3%로 전월보다 8.9%포인트 하락했다. 김보경 통계청 경제동향통계심의관은 “기저효과와 함께 최근 인공지능(AI) 서버용 반도체 수요가 확대되면서 메모리 반도체 수출이 증가했다”고 설명했다.

 

소비를 나타내는 소매 판매는 1.0% 늘었다. 지난 2월 5.2% 증가한 이후 9개월 만에 가장 큰 증가 폭이다.

 

연말 세일 행사 등의 영향으로 승용차 등 내구재(2.6%)의 판매가 늘었으나, 신발·가방 등 준내구재(-0.4%) 등의 판매는 줄었다.

서울 송파구 롯데월드타워 서울스카이에서 바라본 강남구 아파트 단지. 뉴스1

설비투자는 항공기 등 운송장비(-5.7%)와 기계류(-1.5%)에서 모두 줄어 전월보다 2.6% 감소했다. 건설기성 역시 건축(-3.0%) 및 토목(-7.3%)에서 공사 실적이 모두 줄어 4.1% 감소했다.

 

현재 경기를 나타내는 동행지수 순환변동치는 98.9로 전월보다 0.1%포인트 하락했다. 향후 경기를 예측하는 선행지수 순환변동치는 99.9로 0.2포인트 올랐다.

 

하지만 이달 산업 현장 체감 경기는 전월과 비슷한 수준을 유지하면서 부진을 이어갔다. 한국은행이 이날 발표한 12월 기업경기실사지수(BSI) 조사 결과에 따르면 이달 전산업 업황 BSI는 전월과 같은 70을 기록했다. BSI는 현재 기업경영상황에 대한 기업가의 판단과 전망을 조사해 지수화한 것으로, 부정적 응답이 긍정적 응답보다 많으면 지수가 100을 밑돈다. 

 

세부적으로 제조업 업황 BSI는 70으로 전월과 동일했으며, 비제조업 업황 BSI(70)는 전월보다 1포인트 올랐다. 한은 관계자는 “비제조업 업황 실적이 연말 계절적 요인 등에 의해 소폭 회복됐으나 제조업의 업종별 업황이 상이한 흐름을 나타내면서 (전산업 업황 BSI가) 전월과 동일한 수준을 기록했다”고 설명했다. 

 

한은은 최근 우리나라 금융시스템이 비교적 안정된 모습을 보이나 내수 회복세 약화 및 부동산 경기의 불확실성 등이 금융 안정을 저해하는 리스크 요인이 될 수 있는 만큼 대비가 필요하다고 주문했다.

서울의 한 아파트 단지 건설현장에서 공사가 진행되고 있다. 뉴스1

한은은 이날 발표한 ‘금융안정보고서’에서 “부동산 경기가 다시 위축될 경우 부동산 PF 관련 금융기관들의 손실 위험이 높아질 수 있다”며 “부동산 PF 시장에 대한 불안을 해소하는 한편 시장 메커니즘에 따라 부실 PF 사업장의 질서 있는 정리를 유도해 나가야 한다”고 제언했다.

 

가계부채 증가 문제와 관련해선 “최근의 증가로 인해 금융시스템의 안정이 저해될 가능성은 크지 않다”면서도 “과도한 수준의 가계부채는 소비 여력을 축소해 성장을 저해하는 한편 금융시스템의 취약성도 높일 우려가 있는 만큼 DSR(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 규제 정착 등을 통해 가계대출 증가 폭을 적정 수준으로 관리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올해 3분기 말 명목 국내총생산(GDP) 대비 민간 신용(자금순환통계상 가계·기업 부채 합) 비율(추정치)은 227.0%로, 2분기 말(225.7%)보다 1.3%포인트 올랐다.

사진=연합뉴스

◆공정위, 카카오모빌 ‘동의의결’ 신청 기각…본안 심의 진행

 

경쟁사 가맹택시에 대한 ‘콜 차단’ 혐의를 받는 카카오모빌리티가 공정거래위원회의 심판을 받지 않는 조건으로 시정방안을 담은 동의의결을 신청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시정방안에는 100억원 규모의 상생안 등이 포함됐지만 공정위는 사안의 중대성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 본안 심의를 통해 위법성 여부를 가리기로 했다.

 

공정위는 지난 20일 전원회의를 개최한 결과 카카오모빌리티 측이 신청한 동의의결절차 개시신청에 대해 기각하기로 결정했다고 이날 밝혔다. 동의의결이란 조사 대상 사업자가 스스로 원상회복, 소비자 또는 거래상대방 피해구제 등 시정방안을 제시하면 제재 절차를 중단하고 사건을 신속히 종결하는 제도다.

 

공정위는 택시 앱 시장의 95%를 차지하는 카카오모빌리티가 독점적 지위를 이용해 우티 등 경쟁사 가맹택시에 승객 콜을 주지 않는 방식으로 경쟁사업자를 배제했다고 보고 있다. 카카오모빌리티는 또 경쟁 가맹본부들에 운행정보 등 영업비밀 제공을 요구하는 제휴계약 체결을 요구한 혐의도 받고 있다.

 

공정위는 이 같은 행위가 시장지배적지위 남용행위 등에 해당한다고 보고 심사보고서(검찰의 공소장격)를 발송, 제재에 착수했다. 이에 카카오모빌리티는 지난 10월19일 동의의결절차 개시를 신청하며 사건을 신속히 마무리지으려 했지만 공정위는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카카오모빌리티 측이 제시한 시정방안에는 택시기사 자녀 장학금 지급, 전체 기사 대상 단거리 호출 수행 시 인센티브 제공 등 100억원 규모의 경쟁촉진·상생재원 집행 방안과 우티 소속 택시기사들에게 일반호출 제공 등 거래질서 개선을 위한 방안도 포함됐다.

사진=연합뉴스

공정위는 카카오모빌리티 측의 콜 차단 혐의와 시정방안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봤을 때 동의의결을 개시하기에는 미흡하다고 판단했다. 동의의결이 개시되려면 사건이 부당공동행위 등 부적격 요건에 해당하지 않아야 하고, 시정방안의 내용이 경쟁·거래질서 회복 및 소비자·사업자 보호에 적절하다고 인정되는 등의 요건을 충족해야 하는데 이에 미치지 못했다는 것이다.

 

공정위 관계자는 “카카오모빌리티의 고발 여부는 본안에서 판단해야 할 부분”이라고 말했다. 공정위는 조만간 위원회 회의를 열어 카카오모빌리티 사건을 심의해 법 위반 여부와 제재 수준을 결정할 예정이다.

 

앞서 카카오모빌리티는 지난 2월 자사 가맹택시에 승객 호출을 몰아준 혐의 등으로 과징금 257억원과 시정명령 조치를 부과받은 바 있다.

 

공정위의 이번 결정에 카카오모빌리티 측은 “법적 판단을 다투기보다는 사건을 조기에 매듭짓고 가맹 택시 기사들의 혼란을 최소화하고자 동의의결안을 마련했으나 받아들여지지 못해 안타깝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