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 불황 속 자기계발서·여행서 인기=교보문고, 예스24 등 주요 온·오프라인 서점에서 집계한 2023 연간 종합 베스트셀러 1위 도서는 ‘세이노의 가르침’이다.
맨주먹으로 1000억원대 재산을 일군 세이노(필명)가 제시하는 성공 방정식, 일에 대한 태도, 부자가 되는 법, 학벌에 관한 이야기 등을 직설적 화법으로 그린 책으로, 3월 출간 이후 교보문고 등에서 17주 연속 베스트셀러 1위를 지키며 다른 경쟁작들을 압도적으로 따돌렸다. 교보문고 관계자는 “예전에는 교수, 종교인 등 저명인사가 인생 멘토로서 조언을 해 주는 도서가 베스트셀러에 오르고 인기를 끌었다면, 최근에는 얼굴 없는 작가의 활약이 두드러졌다”면서 “세이노, 메르 등 온라인 필명으로 블로그를 통해 독자들과 소통하는 저자가 영향력이 더 높아졌다”고 설명했다.
◆만화 인기 이끈 슬램덩크=만화의 약진도 빼놓을 수 없다. 지난해 예스24의 연간 베스트셀러 100위 안에 만화는 한 권도 오르지 못했는데, 올해는 무려 21권이나 진입했다.
연초 극장가를 강타한 일본 애니메이션 ‘더 퍼스트 슬램덩크’의 폭발적인 인기로 원작 만화인 ‘슬램덩크 신장재편판’ 시리즈 전권 20권 모두 연간 종합 베스트셀러 100위권에 든 것이다.
기존 남성 독자들 외에 새롭게 ‘농놀(농구 놀이)’ 콘텐츠에 빠진 2030 젊은 여성 독자들까지 유입된 덕분이다. 또 우리나라 웹툰이 해외에서 성공하는 사례가 늘면서 어엿한 주류 분야로 자리매김하고 침체된 단행본 시장의 단비가 됐다는 평가다.
◆정부와 출판계 갈등=지난 6월14일 열린 ‘2023 서울국제도서전’에서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에 관여한 오정희 소설가의 홍보대사 위촉으로 작가 단체들이 반발하는 등 논란이 일었다. 결국 오 작가가 홍보대사를 자진 사퇴했지만, 출판계와 문화체육관광부의 앙금은 사라지지 않았다.
문체부는 8월 초 서울국제도서전 보조금 관련 탈선 의혹이 있다며 출판계 최대 단체인 대한출판문화협회의 윤철호 회장과 주일우 서울국제도서전 대표를 경찰에 수사 의뢰했다.
출판계는 강력 반발했다. 출판인들은 용산구 문체부 서울사무소 앞에서 궐기대회를 열고 “출판계 길들이기”라며 박보균 당시 문체부 장관 해임을 촉구했다. 출판계는 또 문체부가 각종 도서 지원사업 예산을 삭감한다고 반발했지만, 문체부는 “사실이 아니다”라며 부인했다.
◆알라딘 전자책 유출 사고=지난 5월 국내 3대 대형서점 가운데 하나인 알라딘에서 전자책 72만권이 유출되는 사건이 발생했다. 유출된 72만권 가운데 5000권이 텔레그램에 유포됐다. 대형서점이 해킹당해 전자책이 유출된 것은 처음이었다.
사건 4개월 만인 9월 중순 해킹범을 잡고 보니 16세 고교생이었다. ‘시대인재’ 등 유명 입시학원 2곳을 상대로도 해킹 공격을 벌인 해킹범들은 전자책의 ‘디지털 저작권 관리기술(DRM)’을 해제할 수 있는 일명 ‘복호화’(암호화의 반대말) 키를 무단 취득한 것으로 조사됐다.
대한출판문화협회와 한국출판인회의 등 출판 단체는 알라딘의 허술한 보안 정책을 비판하며 피해 출판사에 대한 보상과 보안 시스템 강화 등을 촉구했다.
알라딘은 피해 출판사가 자사의 전자책 기업 간 거래(B2B) 사업, 오디오북 사업에 참여할 경우 보상 혜택을 주겠다는 답변을 내놨다. 그러나 출판인 단체는 “생색내기”라고 비판하며 정당한 보상이 없을 경우에는 신간 전자책 공급을 중단하겠다고 압박했다. 결국 알라딘은 피해 출판사에 내년 1분기 중에 보상금을 지급하고, 디지털출판콘텐츠 관련 정책 개발 및 연구 등에서도 출판사들과 협업하기로 했다.
◆해외 진출 시동 건 한국 출판=소설가 한강의 프랑스 메디치상 수상, 정보라의 전미도서상 본선 진출 등 국내 작가들의 낭보가 잇따른 가운데 한국 출판계도 해외 진출에 속도를 냈다.
대한출판문화협회, 한국문학번역원 등 출판 단체와 국내 작가, 출판사는 지난 11월 열린 아랍 최대 도서전인 42회 샤르자국제도서전에 주빈국으로 참여했다. K콘텐츠 열기가 뜨거운 중동에서 한국 책을 소개한 건 이번이 처음이었다.
김승희·정호승·김애란·김언수·배명훈·황선미 등 국내 작가들이 해외 독자들을 만났고, 한국 웹툰산업 관계자, 출판인 등 다양한 분야 관계자들이 현지인들을 만나 K북 세일즈에 나섰다. 또 샤르자 현지에 설립하기로 한 한국어 교육기관 ‘세종학당’은 K출판의 중동 진출을 위한 전초기지가 될 전망이다. 이 밖에도 세계 최대 도서전인 프랑크푸르트를 비롯해 타이베이, 인도네시아 등에서 열린 국제도서전에 한국 출판인들이 적극적으로 참여하며 국내 책들을 홍보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