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녀 온 날 이런 비극이”… 군포 아파트 화재로 50대男 숨져 [밀착취재]

화재 현장 있던 50대 아내와 손녀는 무사히 대피
주민들 "문틈으로 연기가 들어와… 살려달라고 해"
경찰 "방화 혐의점은 없어… 합동 감식 진행 예정"

“베란다 문을 열었더니 바로 옆에서 불기둥이 치솟고, 살려달라는 소리가 끝없이 들렸다“

 

새해부터 연이은 화재로 비극적인 사망 소식이 이어졌다. 이날 경기 군포시의 한 아파트에서도 50대 남성이 화마 속에서 세상을 등졌다.

2일 오전 한 명의 사망자와 13명의 부상자를 낸 화재가 발생한 경기 군포시 산본동의 한 아파트 앞. 황급히 대피하느라 겉옷만 겨우 챙겨 입은 잠옷 차림의 주민들이 화재가 발생한 9층을 올려다보며 서로의 안부를 물었다. 최초 화재가 발생한 913호는 새까맣게 전소돼 내부 형태를 알아보기 어려웠다. 같은 층 집들의 외벽도 모두 검게 그을렸고, 아파트 곳곳마다 잿가루가 빼곡했다. 멀리서도 코를 찌르는 매캐한 연기 냄새에 주민들은 인근 종합사회복지관으로 피신해 숨을 돌렸다. 흩날린 글씨체로 9층 위아래층 집들 대문마다 적힌 ‘대피 완료’ 표시는 긴급했던 대피 상황을 짐작게 했다.

이날 오전 7시15분쯤 경기 군포시 산본동의 한 아파트 9층에서 불이 났다는 119신고가 접수됐다. 소방당국은 신고 접수 후 5분 만에 현장에 도착해 1시간여 만인 오전 8시26분쯤 진화를 완료했지만, 불이 난 집에서 대피하던 남성 A(51)씨가 연기 흡입으로 숨졌다. 화재 당시 함께 있던 50대 아내 B씨와 손녀는 무사히 대피했지만, B씨 역시 연기를 많이 들이마셔 호흡 곤란을 호소해 고압산소가 있는 인천의 한 병원으로 이송돼 치료받고 있다.

 

경찰 조사 결과 불이 난 집 거주자는 A씨 부부와 아들이고, A씨 부부의 딸이 손녀와 함께 새해 인사를 하기 위해 부모님 집을 찾은 것으로 파악됐다. A씨의 아들은 출근 중 화재 소식을 듣고 급히 돌아왔지만, 아버지의 사망 소식을 마주해야 했다. 숨진 A씨는 최근 건강이 좋지 않아 거동이 불편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경찰은 숨진 50대가 거동이 불편해 미처 탈출하지 못한 것으로 보고 자세한 경위를 조사 중이다.

같은 층 이웃 주민들은 A씨 부부를 떠올리며 씁쓸해했다. 918호에 거주하는 조정선(68)씨는 “내가 글을 읽을 줄 몰라서 (A씨) 부부 집에 가서 문자를 쳐달라고 하면 보내주고 그랬다”며 “싸우는 소리가 가끔 들렸지만 화통한 양반들이었다”고 말했다. 혼비백산했던 오전을 떠올리며 불안감을 토로하는 이들도 있었다. 불이 난 913호 옆옆집에 사는 이모씨는 “아침 7시 조금 넘었는데 문틈으로 연기가 들어와서 베란다 쪽으로 뛰어내려야 하나 고민했다“며 “살려 달라고 20분쯤 아우성을 치니 소방대원들이 집 문을 두드려 함께 대피했다”고 긴박했던 상황을 전했다.

 

다만 해당 아파트는 층마다 양측에 엘리베이터를 두고 10세대씩 두 라인이 서로를 마주 보는 직사각형 구조로, 긴 복도를 따라 연기가 잘 배출돼 비교적 피해가 작은 것으로 파악됐다. 소방당국 관계자는 현장 브리핑에서 “이 아파트는 연기가 잘 배출되는 구조라 비교적 피해가 작았다”며 “화재로 인한 연기가 다른 세대로 들어가지 않고 상공으로 올라가 피해가 우려했던 것보다 크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해당 아파트는 준공된 지 30년 가까이 된 탓에 아파트 내 스프링클러 소방시설이 설치돼 있지 않았다. 11층 이상 아파트에 스프링클러 설치가 의무화된 건 2004년 이후로, 1993년에 승인 완료된 해당 아파트는 설치 의무가 없는 것으로 조사됐다.

 

경찰은 유족 및 목격자 진술 등을 토대로 방화 혐의점은 없으며, 사고로 인한 화재로 원인을 추정하고 있다. 다만 정확한 원인을 조사하기 위해 오늘 중 관계기관과 합동으로 현장 감식을 진행할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