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복현 금융감독원장은 태영건설이 전날 내놓은 워크아웃(기업구조개선작업) 자구계획에 대해 작심 비판했다. 이 원장은 “오너(대주주) 일가는 자회사 매각으로 수천억원의 현금 유동자산이 있음에도 자구계획에는 단돈 1원도 포함돼 있지 않았다”며 “뼈를 깎는 자구노력에 대해 언급했는데, 채권단 입장에서는 남의 뼈를 깎는 노력이다”고 질타하면서 태영건설이 채권단을 설득할 만한 자구안을 이번 주말까지는 내놔야 한다고 최후통첩을 날렸다.
◆당국, 태영건설에 “새 자구안 내놔라” 최후통첩
이 원장은 서울 영등포구 금융감독원에서 가진 ‘출입기자단 신년인사회’에서 “채권단은 태영건설 측의 진실성에 의구심을 표하고 있다”며 “태영건설이 협력업체나 수분양자, 채권단 손실을 위해 지원하기로 한 제일 최소한의 약속부터 지키지 않아 당국 입장에서 우려와 경각심을 갖고 지켜보고 있다”고 말했다.
태영건설이 지난해 12월29일 만기였던 상거래채권 1485억원을 상환하겠다고 공언해 놓고 외상매출채권 담보대출(외담대) 451억원을 미납한 점을 지적한 것이다. 외담대는 태영건설로부터 받은 외상매출채권을 담보로 협력업체가 은행 등에서 받은 대출로, 상환이 이뤄지지 않아 협력사들은 유동성 확보에 어려움을 겪었다. 태영건설은 이를 채무 유예기간 상환대상에서 제외되는 금융채권이라고 주장하고 있지만 이 원장은 “약속을 안 지킨 얕은 핑계에 불과하다”고 꼬집었다.
이 원장은 “기본적인 요건이 지켜지지 않으면서 총수재산의 핵심인 (태영건설 지주사) 티와이홀딩스 지분을 지키는 데 (자금이) 쓰이고 있는 것이 현실이고 심하게 얘기하면 이것은 태영건설 자구계획이 아니라 ‘오너 일가 자구계획’이 아닌가 채권단은 의심하고 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러면서 “이익의 사유화, 손실의 사회화 관점에서 태영건설은 시공·시행을 한꺼번에 도맡아 하면서 1조원 넘는 이익을 벌었고 총수일가 재산에 기여한 바 있는데, 부동산 손실이 난 데 대해서는 대주주가 아닌 협력업체, 채권단이 떠안아야 한다”며 “견리망의(見利忘義·이로움을 보자 의로움을 잊는다)라는 사자성어가 떠오른다”고 직격했다.
이에 티와이홀딩스는 이날 보도자료를 통해 “태영인더스트리 매각대금을 약속대로 전액 태영건설에 지원했다”며 “이중 416억원은 윤석민 회장의 지분을 매각한 금액”이라고 해명했다. 윤 회장의 부친인 윤세영 창업회장도 태영건설과 자회사 채권 매입에 38억원을 투입해 사주 일가가 총 484억원의 사재를 출연했다고 덧붙였다.
향후 자구안에 그룹 지배구조 핵심인 티와이홀딩스 지분이 활용될 가능성도 점쳐진다. 이 원장은 “핑계든 명분이든 방송법을 이유로 SBS 매각이 어렵다면 티와이홀딩스는 상장법인이어서 가치평가도 쉽고, 오너 일가가 (지분을) 들고 있는 만큼 이를 활용할 방안이 있지 않냐는 게 채권단의 입장”이라고 전했다.
금융당국은 이번 주를 태영건설이 진정성 있는 자구안을 내놓을 수 있는 마지막 기한으로 설정했다. 제1차 채권단 협의회가 오는 11일 열리지만 그 이전에 주채권은행인 산업은행과 협의가 이뤄져야 하고, 이를 토대로 채권단에 대한 설득까지 이뤄져야 하기 때문이다. 이 원장은 “11일이 지나도 이 이슈를 끌고 갈 수 있다는 시각이 있다면 그건 아니다”라고 선을 그었다.
산업은행도 협의회 이전 주요 채권단을 대상으로 회의를 소집하고 태영건설에 실효성 있는 자구안을 요구할 방침이다. 태영건설 채권단은 609곳에 달한다. 채권단이 너무 많아 통일된 의견을 내기가 어렵다는 지적에 익스포저(위험노출액)가 큰 채권단을 별도로 소집해 워크아웃 개시 조건 등을 논의하려는 것으로 보인다. 주요 채권단에는 5대(KB국민·신한·하나·우리·NH농협) 시중은행과 IBK기업은행 및 주요 보험·증권사 등이 포함될 전망이다.
◆SOC·소비진작으로 경기 부양
정부가 올해 경기를 끌어올리기 위해 상반기 내 소비·건설·투자 분야에 대한 지원을 대폭 확대한다. 신용카드 소득공제를 최대 20%까지 늘리고, 노후차 교체 시 한시적으로 개별소비세를 최대 70% 인하한다.
또 중앙정부의 사회간접자본(SOC) 사업 등을 중심으로 역대 최고 수준의 상반기 재정 조기집행(65%)을 추진하고, 공공부문도 60조원대 규모의 투자를 상반기 내 집행한다. 미래 먹거리인 첨단산업 육성을 위해서는 향후 3년간 ‘150조원 플러스 알파(+α)’ 규모의 정책금융이 투입된다.
정부는 이 같은 내용을 골자로 하는 ‘2024년 경제정책방향’을 발표했다. 정부는 우선 올해 상반기 카드 사용액이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5% 이상 증가하는 경우 해당 증액분에 대해 20% 소득공제를 적용하는 법안을 추진한다. 연간 공제 한도는 100만원이다.
지역 경기를 끌어올리기 위해 건설투자에도 주력한다. 중앙정부의 SOC사업 예산 26조4000억원의 65%를 상반기에 조기집행한다는 방침이다. 이를 위해 선제적 집행계획을 수립하고 사전절차를 이행한다. 민자사업 보상금을 선투입하고 국가계약 한시특례는 오는 6월까지로 연장하는 등 신속집행을 지원한다. 공공투자의 경우도 올해 60조원대 투자를 상반기 역대 최고 수준 집행률(55%) 달성을 목표로 관리한다.
미래 첨단산업에 대한 투자도 강화한다. 반도체(디스플레이 포함), 이차전지, 바이오, 미래 모빌리티, 수소 등 5대 첨단산업에 향후 3년간 150조원 이상의 정책금융이 투입된다.
이 같은 대책을 바탕으로 정부는 올해 우리 경제가 전년 대비 2.2% 성장할 것으로 내다봤다. 이는 지난해 7월 하반기 경제정책방향 발표 당시 전망치(2.4%)보다 0.2%포인트 낮은 수치다. 반면 물가는 당초 2.3% 오른 것이란 전망에서 0.3%포인트 상향 조정해 2.6% 상승할 것으로 내다봤다.
정부는 상반기 중 2%대 물가 상승률을 달성하기 위해 총력 대응에 나선다. 지난해 12월 물가상승률 3.2% 중 0.4%포인트가 과일의 영향이었던 점을 감안, 올해 상반기 중 관세 면제·인하를 통해 과일 30만t을 신속 도입한다. 이는 역대 최고 수준(21종)으로 관세 1351억원이 지원된다. 대상은 바나나 15만t, 파인애플 4만t, 딸기 6000t(냉동) 등이다.
다세대·다가구의 임차인 보호 강화를 위한 지원 ‘3종 세트’도 마련됐다. 전세 가격 하락에 따른 역전세·전세사기 위험을 미리 방지하겠다는 취지다. 임차인이 거주 중인 소형·저가주택(아파트 제외) 매입 시 올해 한시적으로 취득세(최대 200만원)를 감면해주고, 추후 청약 시 무주택자 지위가 유지된다. 등록임대사업자의 경우 올해에 한정해 한국토지주택공사(LH)·지역주택도시공사에 소형·저가주택(아파트 제외)을 양도할 수 있게 된다. 또 LH는 올해 중 구축 다세대·다가구 주택 1만호 이상을 매입하기로 했다.
취업 후 상환 학자금 대출 연체 가산 이자율이 월 1.2%에서 0.5%로 인하되고, 건강보험료 체납 시 급여제한을 면제해주는 소득과 재산기준이 각각 연 336만원 미만, 450만원 미만으로 완화된다.
정부는 청년의 자산 형성 지원을 위해 청년도약계좌를 3년 이상 가입한 경우 중도 해지해도 비과세 혜택을 주기로 했다. 현재는 만기 5년을 채워야 혜택을 받을 수 있다. 또 중도 해지해도 비과세 혜택을 주는 사유에 혼인·출산도 포함된다.
◆저축 양극화 심화됐다
하나금융경영연구소가 발간한 ‘대한민국 금융소비자 보고서 2024’에 따르면 지난해 월평균 총 가구소득은 511만원으로, 전년(489만원)보다 22만원 늘었다. 연구소는 20∼64세 5000명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를 통해 가구소득 및 지출 현황 등을 분석했다.
응답자 가운데 월 고정·변동 지출과 보험료, 대출 상환액을 제외한 금액이 가구소득의 50% 이상으로 저축 여력이 높은 금융소비자는 28.1%였다. 전년(25.1%) 대비 3.0%포인트 증가했다.
같은 기간 저축 여력이 낮은(0% 초과∼30% 미만) 금융소비자도 32.3%에서 34.9%로 2.6%포인트 늘었다. 반면 저축 여력이 중간 수준(30∼50% 미만)인 소비자 비중은 29.9%에서 24.4%로 5.5%포인트 줄었다. 저축 여력이 0% 이하인 경우는 12.6%로 전년과 같았다.
연구소 관계자는 “저축 여력이 높은 소비자가 전년보다 소폭 증가해 가계 재정의 청신호를 나타낸 듯했지만 소득의 3분의 1이 채 남지 않아 저축 여력이 낮은 소비자 또한 전년 대비 같은 비중으로 증가해 가계 재정의 양극화를 보였다”고 짚었다.
금융소비자들의 월 소비·지출액은 지난해 평균 243만원으로 2022년(241만원)보다 2만원 늘어나는 데 그쳤다. 지난해 3분기 가계의 여윳돈은 주택 매매 증가세 등의 영향으로 직전 분기보다 2조원 넘게 줄어든 것으로 나타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