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퀴즈로 이 글을 시작하고 싶다. 다음 질문을 읽고 ‘이것’이 무엇인지 떠올려주시기를. 이것은 매우 비밀스러우며 은행 대출이나 생활비로 쓸 수는 없으나 온전히 자신만의 것이다. 이것은 누구나 다 갖고 있는데 누군가 뺏어갈 수도 있고 자칫하다가는 빼앗기는 줄도 모르게 되는 것이다. 이것은 발설하기도 어렵고 온수기를 고치거나 옷을 살 수도 없고 전리품처럼 자랑해 보일 수도 없다. 만약 누군가 “그럼 어디에 쓰는 건데?”라도 묻는다면 쉽게 대답하기 어렵다. 그러나 이것은 고유한 자신만의 것이며 이것 없이는 타인과 사물을 다른 지점에서 바라볼 수도, 자신과 미래에 대한 확신을 갖지도 못하며 다른 사람과의 차이를 느끼지도 못한다. 이것은 무엇일까?
실직 노동자인 그는 어느 날 치과에서 차례를 기다리다가 잡지에 실린 기사를 흥미롭게 읽게 되었다. 어느 심리학자가 쓴 글이었는데 모든 사람은 비밀, 즉 ‘자기 정체성’의 비밀을 가졌다는 내용이었다. “그것은 스스로 원한다 해도 결코 완전히 드러낼 수 없고 본질적으로 밖으로 표현할 수 없는 무엇”이어서 어떻게 그 비밀의 힘을 사용하느냐를 생각해야 한다는. 그 글을 읽고 그는 아연한 활기를 느꼈다. 평생 살아오며 거의 모든 것을 조금씩 잃어온 자신이었다. 그런데 자기 같은 사람에게도 고유한 정체성이라는 게 있다니! 거리로 나온 그는 조금 전과는 다른 자신을 느끼며 생각했다. 그래, 나도 이젠 누구도 앗아갈 수 없는 무언가를 소유할 때도 되었다고.
기분이 좋아진 그는 거리에서 우연히 만난 옛 직장 동료와 술 한잔을 나눈다. 뭔가를 가져봤다는 느낌이 어색하고 흥분돼 그는 동료에게 “나는 보물이 있어”라고 털어놓는다. 복권이라도 당첨되었나? 아니면 엄청나게 귀한 우표 같은 거라도 생겼나? 의심하다가 동료는 일축한다. 그럴 리 없다고, 보물을 가진 사람이 직장을 잃을 리가 없다고. 그는 자신이 가진 비밀스러운 것에 내심 만족감을 느끼며 동료에게 양해를 구하듯 그 보물이 무엇인지는 비밀이라고 말했다. 주의 깊게 그를 바라보던 동료가 그에게 이런 소릴 했다. “그들이 너한테서 그걸 뺏어 갈 거야.” 동료는 확신했다. 우리 같은 사람들은 뭔가를 가져도 빼앗기기 마련이라 지금 당신이 보물을 갖고 있다손 치더라도 그것 역시 그들이 빼앗아갈 거라고. 그러니 그게 뭐든 잘 간수하는 게 좋을 거라고.
그는 어쩐지 자신에게 마지막으로 남은 것 같은 그 소중한 비밀을 갖고 집으로 돌아왔다. 아내에게도 오늘 자신이 발견한 양도할 수 없는 귀중한 보물에 대해 말하자 아내는 그럼 온수기부터 고치자고 제안했다. 그건 그런 데 쓰는 게 아니라고 그는 힘없이 고개를 젓곤 생각에 잠겼다. 당장 필요한 데 쓸 수 없다면 그것은 무슨 소용이 있을까. 동료의 말대로 그들이 나에게서 이걸 빼앗아갈 때만 소용이 있는 건 아닐까! 오후 내내 만족감을 주었던 그 보물이 자신에게서 서서히 빠져나가는 것을 그는 눈치채지 못했다. 그는 생활을 꾸리느라, 가정을 지키느라 빼앗기고 잃어버리는 데 너무 익숙해진, “비밀이라곤 갖지 못한 자”였으니까.
라틴 아메리카의 대표적인 작가 크리스티나 페리로시는 자본주의 체제에서 억압과 기만이 만연한 현실을 살아가는 소외되고 침묵이 내면화된 사람들의 꿈을 그려내는 데 탁월한 작가다. 이 단편이 수록된 소설집 제목 ‘금지된 정열’에서의 정열은 자기 찾기, 혹은 그것에 대해 말하기로 보인다. 누구나 할 수 있으나 그것을 금지하는 사회에서 나 자신으로 어떻게 살아갈 수 있을까.
그렇다, 퀴즈의 정답은 ‘자기 정체성’. 모든 사람에게 있지만 간혹 잃어버릴 수도 있으므로 주의해서 돌봐야 하는 것. 생각하는 나, 결심하는 나, 스스로 행동하는 나로 만들어줄 수 있는 비밀의 보물. 새해가 시작되면서 올해 더 지키고 싶은 것들에 대해 떠올려 보았다. 첫 번째가 자기 정체성. 이것 없이는 삶에 그저 끌려다니기만 할지 몰라서. 그리고 이것마저 잃어버릴 수는 없다. 오늘을 제대로 살아내고 싶은 평범한 한 사람으로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