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서민 등 200만명 ‘신용사면’, 표퓰리즘 官治 비판받을라

연체기록 삭제로 대출 걸림돌 해소
도덕적 해이에 역차별 논란 불가피
총선 앞두고 정치적 행보 신중해야

다음달 설 명절을 앞두고 서민과 소상공인 등의 금융권 대출 연체기록을 삭제하는 이른바 ‘신용사면’이 추진되고 있다고 한다. 코로나19 대유행(팬데믹) 속에서 불가피하게 대출을 갚지 못한 200만명 정도의 연체기록을 없애 준다는 것이다. 연체기록이 남아 대출이 막힌 이들의 딱한 사정을 감안한 취지를 이해하지 못할 바는 아니다. 다만 엊그제 윤석열 대통령이 경기 용인에서 주재한 민생토론회에서 얘기가 나오고 바로 금융권 설득으로 이어진 모양새라서 관치금융 논란까지 피해 갈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통상 돈을 빌렸다가 제때 갚지 않아 연체기록이 생기면 신용점수가 내려가고 차후 대출에 걸림돌이 된다. 금융권에서는 30만원·1개월 이상 연체를 단기 연체, 100만원·3개월 이상 연체를 장기 연체로 본다. 3개월 이상 연체하면 신용정보원이 연체기록을 최장 1년간 보존하면서 금융기관 및 신용평가사와 공유한다. 뒤늦게 돈을 갚더라도 연체기록이 남아 신용카드 거래나 대출 등 금융 거래에 제한이 생긴다. 신용을 근간으로 하는 금융 거래에서 아주 중요한 연체기록을 삭제하는 데에는 신중을 기할 필요가 있다.



전임 문재인정부에서도 비슷한 규모로 신용사면을 단행한 적은 있다. 2021년 10월 문재인 대통령의 당부로 금융권이 나서 230여만명의 연체기록을 삭제한 것이다. 이런 조치로 서민들이 사금융으로 내몰리는 걸 막고 재기의 발판을 제공한다는 긍정적 효과를 무시하는 건 아니다. 하지만 빚을 제때 갚는 사람이 더 높은 신용등급을 받아야 하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금융 상식이다. 신용사면이 자칫 빚은 갚지 않아도 되는 것이라는 도덕적 해이를 부르지 않을까 우려스럽다. 성실하게 이자를 갚으면서 신용등급을 올려 온 이들에 대한 역차별이라는 비판도 피할 수 없다. 공정과 상식을 강조하는 윤석열정부는 전임 정부와 달라야 하지 않겠는가.

총선을 100일도 채 남기지 않은 미묘한 시점이라는 점도 무시할 수 없다. 대주주 주식 양도세 대폭 완화, 금융투자소득세 폐지 등에 이어 총선용 표퓰리즘이라는 지적이 나올 법하다. 가뜩이나 올해에는 각 부처 업무보고를 민생 주제별로 전국 현장을 찾는 민생토론회 형식으로 하는 걸 놓고 총선용이 아니냐는 말들이 나오는 실정이지 않은가. 대통령실부터 모든 정치적 행보와 정책 발표에 신중에 신중을 기해야 할 시점이다. 참외밭에서는 신발 끈 고쳐 매지 말고 배나무 아래에선 갓끈 고쳐 매는 것도 삼가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