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편함을 볼 때마다 여러 감정들이 인다. 설렘과 두려움, 그리고 호기심 같은. 대개 고지서나 홍보성 우편물들이지만 그래도 종종 누군가 갓 엮어낸 책이나 반가운 소식들을 보내올 때도 있다. 나온 지 얼마 안 된 따끈따끈한 신간을 받아들 때마다 부러움과 함께 나는 뭐하고 있나, 반성도 든다. 차분히 가라앉아 작품을 써야 하는데 그동안 나는 그러지 못했다. 배달돼온 우편물이 마냥 반가운 것만은 아니다. 때로는 알지 못하는 누군가로부터 원하지 않은 편지를 받을 때도 있는데, 얼굴도 모르는 익명의 사람으로부터 받는 편지는 당혹스럽고 두렵다. 하지만 그와는 반대로 정말 고마운 편지도 있다. 기도편지인데, 일일이 손편지로 나와 동생의 건강을 위해 올리는 그 기도문의 편지에 마음이 따듯해진다. 소셜네트워크서비스가 주된 통신수단으로 자리 잡으면서 우편을 통한 손편지는 많이 줄었지만 여전히 전통방식을 고수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러니 배달돼온 우편물들을 접할 때면 반가움과 함께 여러 가지 감정이 드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새해 벽두임에도 우편함에는 여러 가지 우편물들이 담겨 있었다. 그 가운데 눈길을 잡아 끄는 것이 있었다. 올해도 보냈구나. 반가웠고, 대견했고, 또 고마웠다. 잊지 않고 연하장을 보냈다는 고마움도 고마움이었지만 그보다는 아이들에게 관계와 전통과 예의범절을 가르쳐주는 그 마음과 모양이 더 애틋하고 고마웠다. 한 모임의 자질구레한 살림을 맡고 있는 당찬 후배가 보낸 연하장이었다.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그녀가 자신의 아들들에게 가르쳐 보낸 연하장이었다. 한 해쯤 거를 만한데도 그이는 언제나처럼 두 아들이 한 프레임 속에 들어 있는 사진을 동봉해 새해 인사가 담긴 연하장을 보내왔다.
새해 안부인사와 안녕을 기원하는 연하장은 우리나라뿐 아니라 세계 여러 나라에서도 신년맞이 인사용으로 요긴하게 쓰였다. 생각보다 오랜 역사를 가지고 있는 것이 연하장인데, 나라마다 그 풍속과 방법과 의미도 다르다. 연하장을 보내온 그녀는 평소에도 아이들에게 예의와 규범들을 가르쳤다. 밥을 먹을 때나 공중도덕을 지키는 일 같은. 어느 면에서는 좀 과하다 싶을 정도로 아이들의 행동을 바로잡고 지적했다. 그렇게 일찌감치 바른 인성과 예의범절과 공중도덕에 대해 가르침을 받은 아이들이 나중에 사회에 나왔을 때 타인들로부터 좋은 평가와 신뢰를 얻지 않겠는가. 자식의 성공을 원한다면 지식보다 먼저 함께 사는 법을 가르쳐줘야 할 것이다. 영어단어 하나 더 외우고, 수학문제 하나 더 잘 푸는 것보다 타인을 인정하고 배려하며 자신의 꿈을 견인해 나갈 수 있도록 이끌어주는 것이 더 중요하고 유익하지 않겠는가. 전통의 가치는 낡고 폐기처분해야 하는 것이 아니라 계승하고 발전시켜가야 하는 우리의 유산이다. 거르지 않고 올해도 아이들에게 연하장을 보내도록 만들어준 그이가 고맙고 마음이 따듯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