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은행이 기준금리를 현행 연 3.50%로 동결했다. 8회 연속 동결 결정이다. 그간 언급했던 금리 인상 필요성에 대한 문구도 삭제했다. 시장의 눈은 금리 인하 시점으로 쏠리고 있지만, 이창용 한은 총재는 “향후 6개월간 금리 인하는 어렵다”고 말했다.
한은 금융통화위원회(금통위)는 11일 새해 첫 통화정책방향(통방) 회의에서 금통위원 만장일치로 현재 기준금리(연 3.50%)를 동결한다고 밝혔다. 이로써 기준금리는 지난해 2·4·5·7·8·10·11월에 이어 이날까지 8연속 동결됐다.
이번 결정은 국내 경기가 저성장 국면이 지속될 것으로 예상되고,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 부실 위험 등 불확실성이 가중되는 상황을 고려한 것으로 보인다. 여전히 목표치(2%)를 웃도는 물가상승률도 동결을 결정하게 만든 요인이다. 지난해 12월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3.2%였다.
대외 요인도 한은의 금리 동결에 힘을 실었다.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가 올해 기준금리 인하 가능성을 제시하면서 향후 한·미 간 금리차가 좁혀질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이다. 이스라엘-하마스 사태 등 외부 불안 요인이 완화된 점도 영향을 줬다.
이 총재는 이날 통방 회의 후 기자간담회에서 “물가상승률이 둔화 추세를 지속하고 있지만 여전히 높은 수준이고 전망의 불확실성도 큰 상황”이라며 “현재의 긴축 기조를 유지하면서 대내외 정책 여건을 점검해 나가는 것이 적절하다고 판단했다”고 설명했다.
한은이 기준금리를 인상할 필요성이 낮아졌다고 언급하면서 금리 인상기가 공식적으로 끝났다는 평가가 나온다. 한은 금통위는 직전 회의까지 1년 가까이 의결문 끝에 ‘국내외 여건을 면밀히 점검하면서 추가 인상 필요성을 판단해 나갈 것’이란 문구를 덧붙여 왔으나, 이번에는 삭제됐다. 이 총재는 “물가 둔화 추세가 지속되고, 국제유가, 중동사태 등의 해외 리스크가 완화됨에 따라 기준금리 추가 인상 필요성은 이전보다 낮아진 것으로 판단한다”고 말했다.
이제 시장의 눈은 기준금리 인하 시점으로 쏠리지만, 한은은 시기상조라는 입장이다. 섣불리 금리 인하에 나설 경우 인플레이션 기대심리를 자극하면서 물가상승률이 다시 높아질 수 있고, 부동산 가격 상승 기대를 키우는 부작용이 더 클 수 있다는 판단이다. 금통위에서는 이 총재를 제외한 금통위원 5명 모두 향후 3개월간 금리를 3.50% 수준에서 동결할 필요가 있다는 의견을 제시했다. 이 총재는 사견임을 전제로 “향후 6개월간은 금리 인하가 쉽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