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의문(敦義門)은 조선 한양의 4대문 중 서(西)대문이다. 1396년(태조 5년) 지금의 사직터널 부근에 축조됐다가 1422년(세종 4년) 종로구 신문로2가 쪽으로 옮겨졌다. 유교의 기본 덕목인 ‘인의예지(仁義禮智)’ 가운데 의(義)의 뜻을 담은 돈의문은 문밖의 경사가 유난히 가팔라서 문을 새로 냈다고 한다. 지금의 돈의문박물관마을과 강북삼성병원 사이 정동사거리 일대가 돈의문이 있던 자리다. 이때 백성들은 새로 만들어진 문이라는 뜻으로 ‘새문(新門)’이라고 불렀다. ‘신문로’나 ‘새문안’이라는 명칭은 여기서 유래한 것이다.
돈의문은 외교사절이 오면 왕이 직접 마중을 나가고 조선 외교사절이 중국으로 갈 때 이용하는 나라의 중요한 문이었다. 많은 역사적 사건이 일어난 곳이기도 하다. 임진왜란 때 선조가 왜군을 피해 의주로 피란 갈 때 이 문을 이용했다. 1624년 반란을 일으킨 평안병사 이괄이 도성에 처음으로 발을 들여놓은 곳도, 반란이 사실상 막을 내린 곳도 여기다. 1895년 을미사변 때 일본공사 미우라 고로를 비롯한 자객들이 명성황후를 시해하기 위해 도성에 들어온 곳도 이 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