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조현병 비극… 맴도는 ‘사법입원제’

울산 ‘도청 망상 딸’ 부친 살해
2024년엔 광주·분당서 흉기 난동
국회선 논의만 하고 발의 안 돼
정부는 ‘치료중단 방지’ 적극적

“총선 정국 입법 쉽지 않을 듯”

‘조현병’ 환자인 20대 딸이 망상에 빠져 아버지를 흉기로 살해하는 참극이 빚어졌다.

 

15일 울산 동부경찰서 등에 따르면 사건은 주말을 앞둔 지난 12일 오후 9시45분쯤 울산의 한 가정집에서 발생했다. 동구 한 빌라에서 20대 여성 A씨가 그의 아버지(60대)와 말다툼을 벌이던 중 순간 화를 참지 못하고, 흉기로 아버지 목을 수차례 찔렀다. 집 안에 있던 A씨의 어머니가 놀라 119에 “딸이 아버지를 흉기로 찔렀다”고 신고했고, 아버지는 병원으로 급히 옮겨졌지만 숨졌다. A씨는 현행범으로 체포됐다.

사진=뉴시스

경찰 조사 결과 부녀의 다툼은 며칠 전부터 이어져 왔다. A씨가 “주방 식탁 의자에 몰래카메라 등 도청 장치가 설치돼 있다”며 아버지에게 이를 없애 달라고 요구하면서다. 아버지는 거듭된 딸의 요구에 “그런 건 없다니까. 입원을 해서 다시 치료를 받자”고 답했고, 옥신각신 이들의 말다툼이 이어진 것이다. A씨는 망상에 빠져 결국 방에 있던 흉기를 들고 나와 아버지를 살해했다.

 

세계일보가 경찰 등 주변을 취재한 결과, A씨는 10여년 전부터 조현병과 양극성장애로 치료를 받고 있었다. 며칠에 한 번씩 병원을 다니며 관련 약을 복용했다고 한다. 망상 등 정신적인 장애가 심해지면 A씨의 아버지 등 가족은 딸을 병원에 입원시켰고, 상태가 호전되면 퇴원시켜 집에 데려오기를 반복했다. 최근엔 약물 치료만 할 정도로 상태가 호전됐다고 A씨 가족을 아는 주변인들은 전했다. 경찰은 A씨에 대해 존속살해 혐의로 구속하고, 아버지의 사인 등을 규명키 위해 부검 등을 진행하기로 했다. 조현병 환자 등의 망상에 따른 강력 사건은 끊이지 않고 있다. 지난해 1월 광주에서도 발생했고, 지난해 8월 경기 분당 서현역 흉기 난동도 있었다.

 

정부는 사법입원제에 대한 공론화에 착수한 상태다. 보건복지부는 지난달 5일 발표한 ‘정신건강정책 혁신 방안’에서 사법입원제 관련 사회적 논의를 시작하고 자·타해 위험환자의 치료 중단 방지를 위한 ‘외래치료지원제’ 활성화에 나서겠다고 밝힌 바 있다. 복지부 관계자는 “지난해 8월부터 법무부 등의 범정부 태스크포스(TF)가 가동돼 다양한 의견을 수렴하고 현황을 파악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정신질환자 사건은) 치료 중단 문제가 크다. 치료 중단으로 적절한 치료 시기를 놓치고 안 좋아지면서 좋지 않은 사건들이 나는 상황에 이르렀다”고 진단했다.

사진=뉴스1

정부에 따르면 사법입원제나 외래치료지원제와 같은 ‘비(非)자의 입원’의 경우 인신 구속에 따른 인권 쟁점이 상당하고, 이에 대한 전문가들 의견이 제각각이다. 정신의료기관이 청구하면 지방자치단체 산하 정신건강심사위원회가 심사해 환자에게 최장 1년간 외래치료를 명령하고 치료비를 지원하는 외래치료지원제는 정신건강복지법에 관련 조항이 있는 반면 법관이 정신질환자의 강제입원 등을 판단하는 사법입원제의 경우 먼저 법적 근거를 갖춰야 한다. 지난해 국회에서 관련 논의를 진행했지만 아직까지 관련 법안은 발의되지 않았다. 총선이 코앞에 다가온 탓에 이번 국회 임기 내 입법은 사실상 쉽지 않을 것이라는 관측이 지배적이다.

 

국내엔 50만명의 조현병 환자가 있을 것으로 추정된다. 국립정신건강센터가 매년 발간하는 국가정신건강현황 보고서에 따르면 조현병으로 입원한 사람은 2021년 기준 4만8049명, 요양시설 입소자는 7234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