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이 새로운 대남 적대노선을 헌법에 반영해 개정하겠다고 밝히면서 남북관계가 중대 위기에 봉착했다.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15일 최고인민회의 시정연설은 1974년 7·4 남북공동성명과 1991년 남북기본합의서 등 북한에서 절대 권위를 지닌 선대 최고지도자들인 김일성, 김정일의 업적과 약속까지 깡그리 폐기하는 움직임이다. 민족 분열과 분단의 역사적 교훈에 따라 수십년간 남북의 정권과 최고지도자가 교체돼도 지켜왔던 약속을 무시하는 ‘폭주’로 평가된다.
◆한반도의 ‘북·미 간 문제화’ 노린 듯
북한의 남북 동족관계 폐기 법제화는 아예 한반도 문제 당사자로서 남측을 배제하겠다는 의도라는 분석이 나온다. 16일 북한 매체 보도에 따르면 최고인민회의에서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조국평화통일위원회와 민족경제협력국, 금강산국제관광국을 페지함에 대하여’를 일치 가결했는데 이 또한 같은 맥락이다.
양무진 북한대학원대학교 교수는 이번 대남노선 법제화가 남북관계 문턱을 더욱 높이게 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김 위원장이 시정연설에서 ‘자주 평화통일 민족대단결’이라는 표현을 헌법에서 삭제해야 한다고 언급한 것을 지적하며 “통일 3원칙 표현 제거는 모든 남북합의서를 무효화하고 파기하겠다는 의미”라고 했다. 이어 “전반적 대남정책 법제화가 핵무력 헌법화와 유사한 과정으로 보인다”며 “비핵화의 문턱이 높아지듯이 평화통일의 문턱이 높아지는 영향을 가져올 것”이라고 했다.
임을출 경남대 극동문제연구소 교수는 시정연설에서 인민 생활 향상 등 민생경제 부분이 강조된 것에 주목하며 경제 목표 달성시까지 남측에 철저히 거리를 두겠다는 것으로 분석했다. 그는 “이번 전체 연설의 방점이 인민생활 개선에 방점이 찍혀 있는 것을 보면, 경제 목표를 달성하기까지 대한민국과 철저히 결별하겠다는 의미”라며 “미국의 대북제재 완화나 해제를 전혀 기대할 수 없는 상황에서 막연히 비현실적인 동족과의 교류협력에 의존한 경제발전과 인민생활 개선을 도모하지 않겠다는 것으로, 주민들 마음속에 남아 있는 통일에 대한 환상과 남한과의 교류협력에 대한 환상을 완전히 제거하려는 의도도 작용한다”고 봤다.
◆‘북한판’ 영토 조항 신설 어떻게?
김 위원장이 대한민국 헌법 3조의 영토 조항을 거론한 것도 의미심장하다. 현 북한 헌법에는 영토 조항이 없다. 홍 연구위원은 “김 위원장이 연설에서 ‘독립적인 국가로서 주권행사 영역을 합법적으로 정확히 규정짓기 위한 법률적 대책’이라고 한 것을 볼 때, 북한이 실효적으로 지배하고 있는 영역을 주권행사 영역으로 헌법에 명문화할 가능성이 있다”며 “한반도와 부속도서로 한다는 한국과는 차이가 있을 것으로 본다”고 내다봤다.
◆선대의 약속까지 깡그리 폐기?
시정연설에서 조국통일 3대헌장 기념탑을 철거하라고 콕 집어 지시한 것도 파격적이다. 김 위원장은 “수도 평양의 남쪽 관문에 꼴불견으로 서 있는 조국통일 3대헌장 기념탑을 철거”하라고 말했다. 이 기념탑은 김 위원장의 조부인 김일성의 업적으로 홍보돼온 것으로, 이런 업적물을 해체하거나 무효화한다는 언급이 나온 것은 처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