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생이 경쟁력이다.’
재계에 ‘공존공영’(共存共榮)의 바람이 불고 있다. 대기업들이 기존엔 사회적 책임을 다하고자 협력사들의 성장을 도왔다면, 이제는 협력사의 기술 발전이 곧 자사의 성장으로 이어지는 ‘ESG(환경·사회·지배구조) 선순환’이 대세다.
◆“포스코, 내 일처럼 지원해줘”
“30m 높이 사일로(저장고) 꼭대기에 매일 서른 번은 올랐는데, 이젠 그럴 일 없어 좋습니다.”
경북 경주시 안강읍 두류공단에 자리한 스타머트리얼에서 일하는 전기병(62)씨는 스마트 사일로 재고측정시스템이 최근 구축된 데 대해 이렇게 호평했다. 레미콘 회사에서 원가 절감과 강도 증진을 위해 사용하는 시멘트용 혼화재를 제조하는 이 회사엔 아파트 10층 높이의 사일로 23기가 우뚝 서 있다. 전씨 등은 얼마큼의 원료가 남았는지 매시간 측정해야 했다. 하루 10번은 가파른 계단을 올라 사일로 꼭대기에서 추를 내려보내 빈 공간을 확인했는데, 바람이 불 때나 밤에는 추락 위험에 누구든 오금이 저렸다고 한다. 전씨는 “재고 파악을 위해 난간을 오르내릴 때마다 체력적으로 힘들었고 눈이나 비가 오거나 야간엔 미끄러져 떨어질까 봐 두려웠다”고 했다.
사일로를 원격으로 자동계측하는 시스템은 자동계량·포장시설과 함께 환경부 지원사업인 스마트생태공장 구축사업 일환으로 마련됐다. 이는 포스코 동반성장지원단의 컨설팅이 있어서 가능했다.
스타머트리얼은 철강공정에서 나오는 고로수재 슬래그 등 폐기물을 재활용해 여러 친환경적인 혼합시멘트 부재료를 만든다. 사실상 포스코의 고객사다. 이렇게 만든 부재료들은 레미콘업체에 제공되는데, 요즘 건설사들이 건물주 기호를 맞추기 위해 친환경 제품을 선호하다 보니 결국 포스코이앤씨 등 큰 건설사까지 흘러가게 된다. 포스코가 ESG 경영 측면에서 도운 중소업체의 제품이 결국 포스코의 ESG 경영에 일조하는 거대한 ESG 사이클을 형성한 셈이다.
스타머트리얼 김현태(50) 대표는 “2011년 창업한 직원 16명의 작은 회사이고 폐기물 활용이나 친환경 등 ESG 경영에 관심을 기울인 건 3, 4년 됐지만 걸음마 수준”이라며 “포스코 현업에서 20∼30년 된 전문가들의 도움을 받아 안전·보건 목표 등도 설정할 수 있었다”고 했다.
김 대표는 전체 제조비용의 30%가 에너지비용으로 과다하게 소요되자 지난해 1월 포스코에 도움을 요청했다. 포스코 동반성장지원단이 투입돼 1월 중순부터 회사 상황을 들여다본 결과 한 달 만에 환경부에 사업신청을 하게 됐다.
김 대표는 9대 1의 경쟁률을 뚫고 사업 대상에 선정된 데 대해 “관련 정보가 전혀 없었는데 우리가 필요한 것을 포스코 도움으로 빨리 파악해서 개선할 수 있었다”고 했다. 스마트 생태공장 구축사업은 협약(2023년 7월), 착공(9월)에 이어 최근 준공까지 했는데, 포스코 동반성장지원단 지원팀이 사일로 재고 확인 시 안전 문제, 자동포장·계량설비로 대기환경 개선, 수동제어의 인버터 방식 개선으로 에너지비용 절감 등 안전·환경·에너지 분야에서 15개 개선과제를 찾아 실행했다. 이 사업으로 스타머트리얼은 투자비 5억3000만원을 절감했고, 연간 1억1000만원의 에너지비용을 줄일 수 있었다. 특히 온실가스를 연간 410tCO₂eq(이산화탄소 환산톤) 저감하게 됐고, 추락에 의한 재해를 근원적으로 방지할 수 있게 됐다. 김 대표는 “아마 포스코가 도와준 컨설팅 비용만 따져도 수억원이 될 것”이라고 웃으며 말했다. 서일권 포스코 동반성장지원단장은 “2024년에도 지속적으로 탄소중립, ESG 등에 대한 중소기업의 애로사항을 발굴해 개선하는 작업을 확대해 나갈 예정”이라고 말했다.
◆“폐기물이 100% 친환경 소재로”
친환경 중화 석고 양산을 앞둔 한국순환소재도 SK에코플랜트와 협력 관계를 구축하고 있다.
한국순환소재는 2022년 SK에코플랜트가 개최한 중소기업 기술 공모전 ‘콘테크 미트업 데이’에서 친환경 분야 우수기업으로 선정됐다. 한국순환소재의 가능성을 알아본 SK에코플랜트는 공모전 이후 업무협약을 체결하고 폐기물을 활용한 친환경 중화 석고 제조기술 고도화, 파일럿 플랜트(소규모 생산 공장) 기술 검증, 상용화를 위한 실규모 공장 조성 등을 지원하고 있다.
한국순환소재의 친환경 중화 석고는 폐기물로 만들어진다. 반도체 공정 부산물인 황산, 화력발전소에서 나오는 부산물 중 하나인 보텀애시, 중하위 등급의 석회석과 망초를 고유 기술로 배합해 고품질의 중화 석고를 제작한다.
지난 15일 경기 안산 한국산업기술시험원(KTL)에서 만난 한국순환소재 박병훈 대표이사는 “저희는 폐기물 업체가 아닌 ‘폐기물을 사용한 친환경 제조업체’, ‘자원순환회사’”라고 강조했다. 그는 “타 업체와 달리 저희는 원료가 100이 들어가면 특허받은 제조 공정을 거쳐 친환경 중화 석고가 100이 나온다. 공정에서 발생하는 부산물이 없다는 것”이라며 “SK에코플랜트와 같이 사업을 시작한 것도 이런 친환경적인 부분이 크게 작용했다”고 말했다.
KTL에선 친환경 중화 석고의 품질 테스트가 한창이었다. 기존 중화 석고 업체에서 사용하는 석회계 등의 샘플은 황산과 반응해 가스를 분출했지만, 한국순환소재가 배합한 석회는 가스가 거의 나오지 않았다. 한국순환소재에 따르면 기존 중화 석고는 굳어지는 데 최대 24시간이 소요되지만, 한국순환소재의 중화 석고는 15분이면 굳어진다.
박 대표이사는 “품질도 품질이지만 설비에 많이 투자했다. 식품도 처리할 수 있는 수준의 설비를 제작하느라 기존 제조회사들보다 설비값만 2배가 들어갔다”며 “폐기물을 쓰기는 하지만 단순히 폐기물을 처리하는 회사가 아니라는 것”이라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