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료비 증가와 국민건강보험 재정 위기 [알아야 보이는 법(法)]

얼마 전 시행한 의사국가시험에서 국가별 국내총생산(GDP) 대비 경상 의료비의 연도별 지출 추세를 그래프로 제시한 뒤 한국의 의료비 증가문제를 가장 강력하게 해결할 수 있는 진료비 지불방법이 문제로 출제되었고, 정답은 ‘총액계약제’였다.

 

총액계약제가 정답인지에 대해서는 다툼이 있지만, 적어도 그래프가 보여주는 것처럼 우리나라의 GDP 대비 경상 의료비 비율은 2006년에는 5% 안팎에서 2022년 추정치로는 약 209조원인 9.7%로 사상 최대를 기록했다. 이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평균인 9.3%를 넘는 수치다. 의료비 총액은 2000년대 연평균 11.8%, 2010년대 연평균 8.7%씩 각각 증가해왔고, 2022년에도 전년도보다 8.1% 정도 상승한 것으로 추정된다. 이 추세대로라면 오는 2030년 무렵에는 경상 의료비가 400조원, GDP 대비 16%에 달할 것이라는 주장도 있다.

 

경상 의료비는 공공 의료비와 민간 의료비로 나뉜다. 우리나라에서 공공 의료비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것이 국민건강보험공단에서 지출하는 비용이다. 건강보험 수입 추이에 대해 작년 국회예산정책처에서 발간한 ‘2023~32년 건강보험 재정 전망’에 의하면 기본적인 가정을 기준으로 할 때 올해부터 건강보험 재정이 적자로 전환할 것으로 예상된다. 4년 후인 2028년에는 2022년 기준으로 23조8000억원이 있던 누적 준비금이 모두 소진되어 5조5000억원의 누적 적자가 발생하고, 2032년에는 61조6000억원에 달할 것으로 예상했다.

 

현재 국민건강보험법상 건보료율은 상한이 8%로 고정되어 있고 기본 가정에 의하면 2030년에는 도달할 것으로 예상된다. 2032년의 누적적자액은 8% 상한을 변경하지 않는다는 가정에 따라 산출된 수치다. 만약 상한을 폐지하거나 높이면 재정 목표에 따라 다르지만 2032년 기준 9~10%로 인상해야 한다고 제시되었다.

 

우리나라는 현재 의료기관에서 의료인이 제공한 의료 서비스(행위, 약제, 치료재료 등)별로 가격(수가)을 정해 사용량과 가격에 의해 진료비를 지불하는 ‘행위별 수가제’를 기본으로 해 질병군별 포괄수가제(DRG)와 정액수가제(요양병원, 보건기관 등)를 가미한 제도를 취하고 있다.

 

행위별 수가제에서 수가 금액은 상대가치점수에 유형별 점수당 단가(환산지수)를 곱해 산정되고, 여기서 상대가치점수는 크게 3가지로 구성되어 있는데 이는 ①주시술자(의사, 약사)의 전문적인 노력에 대한 보상으로 시간과 강도를 고려한 상대가치인 업무량(의료 서비스) ②주시술자(의사)를 제외한 보조 의사, 간호사, 의료기사 등 임상 인력의 임금, 진료에 사용되는 시설과 장비 및 치료재료 등을 고려한 상대가치인 진료비용(임상 인력·의료장비·치료재료) ③ 의료사고 빈도나 관련 비용조사를 통하여 의료사고 관련 전체 비용을 추정하고, 진료과별 위험도를 고려한 상대가치인 위험도(의료분쟁 해결비용)이다.

 

행위별 수가제에서는 행위를 할수록 의료비가 증가하는 구조로, 공급자의 숫자나 규모가 아니라 의료 이용량을 바탕으로 의료비가 결정되는 구조다. 우리나라의 의료 이용량이 증가할수록 의료비가 증가한다고 볼 수 있다. 2021년 기준 우리나라 국민 1인당 의사에게 외래 진료를 받은 횟수는 연간 15.7회로 OECD 국가 중 가장 많았고, OECD 평균 5.9회보다 약 2.6배 높은 수준이다. 입원환자 1인당 평균 재원일수도 18.5일로 일본에 이어 2위를 차지했고, OECD 평균 8.1일보다 2배 넘는다. 급성기 치료를 위한 입원도 1인당 평균 재원일수가 7.6일로, OECD 평균인 6.6일보다 길었다. 한편 병원 병상 수는 인구 1000명당 12.8개를 기록해 OECD 평균인 4.3개의 3배 가까이 달했다. 이러한 병상에 입원하는 환자의 재원일수도 평균의 2배 안팎이므로 입원으로 인한 의료비 수요가 상당함을 알 수 있다.

 

현행 행위별 수가제에서 수가가 적정한 수준인가에 대해서도 많은 논란이 있다. 그러나 우리나라의 의료 이용량은 OECD 국가 평균을 훨씬 상회하고 있고, 그 결과로 의료비가 증가하는 측면이 있음은 부정하기 어려워 보인다. 이러한 의료 이용량이 적정한 것인지 과다한 것인지는 더 자세한 분석이 필요하겠지만, 현재 의사 수가 부족하다는 논리에 따르면 위와 같은 의료 이용량에도 아직 충족되지 못한 수요가 있음을 의미할 수 있다.

 

다른 한편으로는 과다한 부분의 의료 수요는 줄이고 다른 필요한 부분을 충족시킬 수 있도록 공급 편재를 개편하는 방향으로 조정하는 방안도 생각해볼 수 있다. 그렇다면 의사 수를 늘리기보다 진료 내용이나 근무 지역에 대한 정책이 더 효과적인 해결책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현재의 진료비 구조 아래에서는 의료 수요를 통제하거나 조정하지 않고서는 경상 의료비 및 건강보험 지출액의 증가 추세를 막기는 어려워 보인다. 총액계약제는 의료 수요를 직접 조정하는 방법은 아니지만, 원가보다 상대적으로 가격이 높게 책정된 의료 서비스는 과대 공급되고 반대로 가격이 낮게 책정되면 과소 공급되는 비효율성이 문제로 지적된다. 결과적으로 공급과 수요의 불균형이 나타날 수밖에 없어 의료 이용량에 영향을 미치게 될 것이며, 도입을 추진할 때 저항이 매우 심할 것이다.

 

의료비 및 건강보험 재정에 관한 문제는 몇년 안에 그 해결 방안이 도출되어야 할 상황에 놓여 있다. 이 부분은 국민건강보험법 개정과도 관련이 있으므로 결국 국회에서 논의되어야 할 것이다. 여러 당사자가 치열하게 의견을 나누며 슬기로운 해결책을 마련해 나가기를 기대한다.

 

김경수 법무법인 바른 변호사 kyungsoo.kim@barunlaw.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