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콩H지수(항셍중국기업지수)가 올해 들어 13% 가까이 하락하면서 이를 기초로 한 주가연계증권(ELS)을 산 국내 투자자들의 시름이 깊어지고 있다. 홍콩H지수는 세계 주요 주가지수 중 유일하게 올해 두 자릿수 하락률을 보이는 등 부진을 면치 못하고 있다. 증권가는 중국의 경기 부양책 부재로 올해 만기를 앞둔 ELS의 대규모 손실이 불가피할 것으로 전망했다.
23일 금융권에 따르면 홍콩H지수는 전날 5001.95로 하락 마감하며 2022년 10월31일 기록한 저점(4919.03)에 근접했다. 2021년 2월 기록한 최고점(1만2271.60)과 비교하면 59% 하락한 수준이다. 이날은 5140.93으로 2.78% 반등했지만 홍콩 증시 하락 추세는 한동안 이어질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홍콩H지수는 전 세계 증시 중 가장 저평가됐다는 평가를 받는다. 메리츠증권에 따르면 홍콩H지수의 12개월 주가순자산비율(PBR)은 0.52배로 역사상 최저점 수준이다. PBR은 주가를 주당순자산가치로 나눈 값으로, 올해 들어 부진을 겪고 있는 코스피의 PBR은 이날 기준 0.89배를 기록하고 있다.
연초부터 중국 증시가 부진을 이어 가는 이유는 중국 정부의 경기 부양책 부재로 중국 경기 둔화에 대한 우려가 커졌기 때문이다. 최설화 메리츠증권 연구원은 이날 보고서에서 “2024년 중국 주식시장에 대한 전망을 중립에서 보수적인 대응으로 하향 조정한다”며 “연초 정책 흐름이 당초 예상했던 기본 가정(재정지출 확대)을 하회하고 있고 이런 대응은 앞으로 투자, 부동산, 수출 등에서 예상치 못한 경기 하방 압력을 초래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미·중 갈등 확대에 외국인 투자자가 중국 증시를 대거 빠져나간 영향도 컸다. 박수현 KB증권 연구원은 “외국인 투자자들은 줄곧 중국의 부동산 부채 문제와 바이든 대통령의 IRA(인플레이션감축법) 법안, 미 국방부, 재무부의 중국 기업 블랙리스트 지정 등으로 중국 주식 비중을 지속적으로 줄여 왔다”고 말했다. 이 같은 위기에 중국 당국은 2조위안(약 372조원) 규모의 증시 안정화 자금 투입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고 블룸버그통신은 전했다.
결국 올해 만기가 예정된 홍콩H지수 ELS 투자자들의 지수 반등에 대한 희망도 점차 줄어들고 있다. 은행권에 따르면 올해 들어 지난 19일까지 홍콩H지수 ELS에 대한 원금손실액만 2296억원에 달하는 것으로 집계됐다. 평균 손실률만 52.7%에 달했다.
국내 홍콩H지수 ELS 투자자들의 금융사를 상대로 한 민원도 급증할 것으로 보인다. 김득의 금융정의연대 상임대표는 이날 무소속 양정숙 의원실이 주최한 ELS 관련 토론회에서 불완전판매가 입증될 시 과거 파생결합증권(DLS) 보상 사례에 따라 피해액의 최대 80%, 최저 40% 수준의 분쟁조정 안에서 배상액이 결정될 것으로 예상했다. 금융감독원은 이와 관련해 지난 8일부터 KB국민은행과 한국투자증권을 시작으로 ELS 불완전판매 실태 여부 등에 대한 현장조사를 진행하고 있다.
양 의원은 “금융사고 사태에 대해 금융 당국과 금융사는 사태 책임의 원인을 외면하고 책임 회피를 할 것이 아니라 사태 수습 방안과 재발 방지 대책, 나아가 금융소비자 보호 강화 대책을 내놓아야 한다”고 지적했다.
업계는 이번 사태로 ELS 시장이 대폭 축소될 것으로 전망했다. 서유석 금융투자협회장은 이날 취임 1주년 기자 간담회에서 “ELS 시장이 당연히 축소될 거라고 보고 있다”며 “큰 판매 창구로서 은행권 비중이 줄어드는 것은 불가피하다”고 내다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