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2일 부산 강서구 가덕도 신공항 부지 현장.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지지자를 가장해 접근한 김모(67)씨에게 흉기 습격을 당해 목 부위(경정맥)를 찔렸다. 생명에는 지장이 없어 천만다행이었다. 다만, 이 대표가 부산대병원 권역외상센터에서 응급처치를 받은 후 소방헬기를 타고 서울대병원으로 옮겨 치료를 받은 것을 두고 의사단체와 지역 의사회 등을 중심으로 특혜 이송 및 지역 의료수준 비하 논란이 일었다. 전국 16개 시·도의사회는 “부산대병원의 권역외상센터는 서울대병원과 전국의 어느 병원보다 탁월한데, 이런 우수한 의료진과 치료 시스템을 외면하고 서울대병원으로 이송을 한 이유는 무엇이냐”며 이 대표와 민주당은 지역·응급의료정책에 관여할 자격이 없다는 비판 성명을 내놓기도 했다. 급기야 국민권익위원회는 이 대표가 응급헬기로 이송되는 과정에서 불거진 특혜 논란 등에 대한 조사에 착수했다.
# 지난 18일 전북특별자치도 출범식 행사가 열린 전주 한국소리문화의 전당. 윤석열 대통령이 입장하면서 악수를 나누던 진보당 강성희 의원(전주을)에게서 ‘국정기조를 바꾸셔야 된다’는 소리를 들었다. 강 의원은 지나치는 윤 대통령의 등을 향해 같은 소리를 크게 외쳤다. 순간, 대통령경호처 경호원들이 달려들어 강 의원의 입을 틀어막은 뒤 사지를 든 채 밖으로 데리고 나갔다. 특히, 윤 대통령이 지나던 길을 되돌아오면서 강 의원이 강제 퇴장당하는 장면을 봤음직한데도 애써 외면한 채 그냥 가버리는 듯한 모습도 포착됐다. 민주당은 “과잉도 아니고 불법 경호”라며 김진표 국회의장에게 국회 차원의 입장 표명을 촉구하는 한편, 윤 대통령의 사과와 김용현 경호처장의 경질을 요구했다.
여야 정치권이 새해 벽두부터 많은 국민을 착잡하게 하는 논란을 자초하고 있다. 위 사례에서 보듯 ‘과잉 경호’·‘특혜 이송’ 논란이 대표적이다. 공교롭게도 윤석열 대통령과 이재명 민주당 대표가 엮였다. 대통령과 제1야당 대표로서 그 누구보다도 국민의 기대에 부응해야 할 정치 지도자들이 사후 아쉬운 대처로 논란의 불씨를 피우고, 신물이 나는 정치공방의 또다른 소재를 제공한 셈이다. 이렇게 대처했다면 어땠을까.
먼저 과잉 경호 논란 때로 시계를 되돌려보면, 강성희 의원도 그다지 잘 한 건 없다. 많은 전북도민이 모인 잔칫날에, 전북특별자치도 출범을 축하하며 정부 지원을 약속하러 참석한 대통령에게 무례하게 비칠 만한 행위였다. ‘전북 국회의원이 집안 잔칫날에 재를 뿌린 것’이란 비난 목소리도 나왔다. 강 의원으로선 얼마든지 할 수 있는 말이었지만 때와 장소가 적절하지 않았다. 그렇다고 대통령 경호처가 그런 식으로 국민의 대표인 국회의원을 제압해 짐짝 들고 나가듯 한 것도 박수쳐줄 만한 장면이 아니었다. 마치 ‘그 누구건 우리 대통령님의 심기를 불편하게 하면 절대 용납하지 않겠다’는 ‘심기 경호’의 본때를 보여주려는 것 같았다.
이후 가던 길을 되돌아 온 윤 대통령은 경호원들에 붙들려 나가는 강 의원을 향해 눈길 한번 주지 않은 채 그냥 지나갔다. 윤 대통령이 일부러 그랬을 거라고 생각하고 싶지 않지만, 너무 차갑고 무섭게 비쳐졌다. 이어진 축사에서도 관련 소란에 대한 언급이 없었다. 만약 윤 대통령이 경호원들에게 강 의원을 심하게 다루지 않도록 지시하고 강 의원을 다시 자리에 앉게 한 뒤, 단상에 올라 “강 의원님을 비롯한 국민 여러분의 어떤 질책과 쓴소리도 경청하겠다”고 자연스럽게 넘어갔으면 어땠을까. 과잉 경호 논란보다 윤 대통령의 의연한 대처가 돋보이고, 오히려 강 의원이 눈총 세례를 받았을 것이다.
어떤 경우에도 절대 일어나선 안 될 테러를 당한 이 대표도 피습 당일 굳이 부산대병원을 떠나 서울대병원으로 옮기면서 헬기 특혜 이송 등 불필요한 논란을 마주해야 했다. 국내 최고 수준의 권역외상센터인 부산대병원을 놔두고 굳이 몇 시간이나 걸릴 서울대병원으로 가는 모습에 ‘상태가 위중하지 않은 것 아니냐’는 눈초리도 있었다. 아무리 헬기를 타고 간다고 해도 목숨이 경각을 다투는 위험한 상황이라면 전원 결정을 하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이 대표가 정말 비판론자들의 지적처럼 지역 의료 수준을 낮게 보거나 위급하지 않은데도 헬기로 이송된 것이라고 생각하고 싶지 않지만 부산대병원을 섣불리 떠난 건 아쉬운 대목이다.
만약 이 대표가 부산대병원에서 치료를 잘 마치고 퇴원하면서 이렇게 말했다면 어땠을까. ‘여의도 문법’에 정통한 중립적인 한 수도권 시민이 소셜미디어에 올린 글로 대신한다. “존경하고 사랑하는 부산 시민 여러분! 저 이재명은 오늘 부산에서 다시 태어났습니다. 저에게 새로운 고향을 선사해주신 부산시민 여러분과 부산대병원 의료진 모든 분께 감사와 존경의 인사를 드립니다. 제 건강을 되찾아주신 그 깊은 사랑을 잊지 않고 더 큰 정치로 보은하겠습니다. 지켜봐주시고 응원해주십시오. 다시 한번 부산 시민 여러분께 깊은 감사 인사를 드립니다.”
여기에 특혜 이송과 국민권익위 조사 등의 논란이 낄 자리는 없다. 오히려 많은 국민이 이 대표의 빠른 회복을 반긴 동시에 지역 의료 역량을 다시 보게 됐을 것이다. 아울러 총선을 앞두고 이 대표와 민주당에 대한 부산민심이 지금보다는 나아지지 않았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