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안부 피해자 문제를 다루면서 ‘매춘’ 표현을 사용한 류석춘(69) 전 연세대 교수가 1심에서 무죄를 선고받았다. 지난해 10월 본인 저서에서 위안부 피해자를 두고 매춘이란 단어를 써서 기소된 박유하(67) 세종대 명예교수에게 대법원이 무죄를 선고한지 3개월 만이다. 법원 판단엔 학문의 자유를 제한하는데 신중해야 한다는 입장이 깔려 있다. 다만 시민단체에서 반발하고 있는 만큼 선고의 여파는 한동안 지속될 전망이다.
서울서부지법 형사4단독 정금영 판사는 24일 위안부 발언 관련 허위사실 적시에 의한 명예훼손 혐의로 기소된 류 전 교수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해당 발언이 명예훼손죄에서의 사실적시에 해당한다고 보기 어렵다”는 취지다.
류 전 교수는 2019년 9월 전공 수업인 발전사회학 강의 도중 위안부 피해자를 매춘 여성에 비유해 이들의 명예를 훼손한 혐의를 받았다.
재판부는 류 전 교수의 발언이 통념에 어긋나고 비유도 부적절하다고 판단하면서도 학문의 자유와 교수의 자유를 헌법이 특별히 보호하고 있는 점을 고려할 때 이를 제한하는 것은 최소화해야 한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헌법이 대학에서의 학문의 자유와 교수의 자유를 특별히 보호하고 있는 취지에 비춰보면 교수의 자유에 대한 제한은 필요 최소한에 있어야 한다”며 “내용과 방법이 기존의 관행과 질서에서 벗어나는 것으로 보이더라도 함부로 위법한 행위로 평가해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이어 정 판사는 “피고인의 발언은 위안부들이 매춘에 종사하기 위해 자발적으로 위안부가 됐다기보다 취업 사기와 유사한 형태로 위안부가 되었다는 취지에 가까워 보인다. 해당 발언은 통념에 어긋나는 것이고 비유도 부적절하다”면서도 “강의의 전체적인 내용과 맥락을 고려할 때 그 내용과 방법이 학문적 연구 결과의 전달이나 학문적 과정에 해당하지 않는 것이 명백하다고 단정하기 어렵다”고 밝혔다.
이날 류 전 교수에 대한 판결은 3개월 전 대법원이 박 명예교수에게 내린 무죄 선고 취지와 유사하다. 박 교수는 2013년 8월 출간한 제국의 위안부에서 일본군 위안부가 매춘이자 일본군과 동지적 관계였다는 취지로 기술해 위안부 피해자의 명예를 훼손한 혐의를 받았다.
당시 대법원은 박 명예교수의 매춘 등 표현이 ‘제국주의나 가부장제 질서 등 구조적 문제가 위안부 문제의 원인이 된 측면이 있으므로 일본의 책임에만 주목해 갈등을 키우는 것은 문제 해결에 도움이 되기 어렵다’는 주제의식을 부각하기 위해 쓰인 것으로 봤다. 대법원은 “책의 전체적인 내용이나 맥락에 비춰 보면 박 교수가 일본군에 의한 강제연행을 부인하거나, 조선인 위안부가 자발적으로 매춘행위를 했다거나 일본군에 적극 협력했다는 주장을 뒷받침하기 위해 이런 표현을 사용한 것으로 보이지는 않는다”고 했다.
대법원 판결 후 하급심에서 또 다시 같은 취지의 판결이 선고되자 위안부 문제를 다루는 시민단체 정의기억연대는 즉각 반발했다. 정의연은 “이번 판결은 역사를 부정하고 왜곡하는 일본 정부와 극우 역사부정 세력들의 공격 속에 또 인권 침해를 당하고 있는 피해자들을 외면하는 반인권적 판결일 뿐 아니라 대한민국 역사를 거꾸로 돌리는 반역사적 판결”이라며 “국제 사회가 공히 인정하고 있는 일본군 위안부 문제의 실체적 진실을 재판부는 부인하는 것인가. 검찰은 즉각 항소하여 다시금 죄를 물어야 할 것”이라고 주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