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사청문회 당일 그냥 망신 한 번 받고 ‘그다음 날 임명하면 그만이야’라는 식으로 해선 인사청문회 제도가 아무 소용없는 것 아니에요?”
이는 더불어민주당 윤건영 의원이 지난 11일 조태용 국가정보원장 후보자 인사청문회에서 한 말이다. 조 후보자의 자료 제출 미비를 비판하며 한 말이긴 하지만, 국회 인사청문회에 대한 세간의 인식을 잘 보여 준다. 야당은 검증을 이유로 직무와 무관하게 ‘후보자 망신 주기’에 골몰하고, 후보자는 자료 제출 요구에 불응하거나 하나 마나 한 답변으로 일관하며 ‘버티기’에 애쓰는 모습을 보인 게 하루 이틀이 아니다.
현 정부 들어 이런 모습을 가장 극적으로 보여 준 게 바로 지난해 10월 김행 여성가족부 장관 후보자 인사청문회였다. 당시 김 후보자 딸의 소셜뉴스(온라인 매체 위키트리 운영사) 지분을 둘러싸고 재산 은닉 등 의혹이 일었고, 야당 위원이 소명을 위한 지분 보유·거래내역 관련 자료 제출을 요구했지만 김 후보자는 “딸이 원하지 않는다”고 거부했다. 그러다 여당 위원들이 야당 소속 여성가족위원장의 진행이 편파적이라며 항의하다 퇴장했고, 김 후보자 또한 여기에 섞여 인사청문회 도중 회의장을 나가 다음 날까지 돌아오지 않았다. 이후 ‘김행랑’(‘김행 줄행랑’의 줄임말)이라는 말까지 나오면서 여론이 심상치 않자 김 후보자가 자진 사퇴했다. 당시 정치권에선 이를 두고 “결국 인사청문회를 요식행위로 여기는 인식이 빚은 진풍경”이라는 평이 나왔다.
인사청문회 무용론이 심화하면서 국회에서부터 도덕성과 자질 검증을 분리하는 등 제도를 손볼 필요가 있다는 목소리가 터져 나온 지 오래다. 그러나 여야는 여전히 침묵하는 중이다. 이런 가운데 전문가들은 단순히 제도만 뜯어고쳐선 인사청문회 실효성을 제고하는 데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단 의견을 내놓는다. 인사청문회 무용론 이면에 놓인 정치 양극화 현상부터 우선 해소해야 한단 것이다.
◆수년째 헛도는 ‘분리 검증’ 논의
최근 공개적으로 인사청문회 제도 개선을 촉구한 건 김진표 국회의장이다. 김 의장은 지난 4일 신년 기자간담회에서 “공직후보자의 직무 역량과 도덕성 검증을 분리하는 인사청문회 제도 개선이 필요하다”고 제안했다. 도덕성 검증의 경우 ‘비공개’로 진행해 인사청문회가 직무 역량 검증 중심으로 이뤄지도록 해야 한다는 것이다. 미국 사례도 언급했다. 김 의장은 “미국은 FBI(미 연방수사국)가 철저히 보안을 지켜서 (도덕성) 검증을 하고, 그걸 인사권자인 대통령에게 주면 대통령이 그 검증 내용을 가감 없이 그대로 상원에 보내 여야 위원들이 들여다보고 사회 통념상 용납되는 수준이라고 판단되면 여야가 합의한다”고 설명했다. 그는 “(우리나라의 경우) 도덕성 검증과 정책 역량 검증을 둘 다 공개적으로 하다 보니까 국회의 청문 과정 90% 이상이 도덕성 검증 위주로 이루어진다”며 “도덕성 검증 과정에서 자기뿐만 아니라 온 사돈의 팔촌까지 문제를 삼는 이런 제도하에서 (역량을 갖춘 인사도 장관 자리에) 안 오겠다(고 한다)”고 말했다. 현행 인사청문회 제도가 대통령의 인재 풀을 줄인단 지적을 한 것이다.
이미 약 3년 전, 임기 후반기를 보내던 당시 문재인 대통령 또한 같은 문제를 언급하며 인사청문회 제도 개선이 필요하다고 강조한 바 있다. 문 대통령은 2021년 취임 4주년 연설 이후 기자들과의 질의응답에서 “우리 인사청문회는 능력을 제쳐 두고 오로지 흠결만 놓고 따지는 무안 주기식 청문회라 좋은 인재를 발탁하기 어렵다”며 “본인이 무릅써서 해 본다고 해도 검증 질문이 배우자나 자녀에 이르면 ‘가족에 누를 끼치기 어렵다’며 포기한다. 그 포기 비율이 여성이 훨씬 높다”고 했다. 문 대통령은 2020년에도 국회 시정연설 전 국회의장 환담에서 “우리 정부는 종전대로 하더라도 다음 정부는 작금의 인사청문회 풍토와 문화에서 벗어나야 한다”며 제도 개선 필요성을 언급했다. 당시 국회도 이 문제 의식에 공감해 여야가 ‘인사청문회 제도 개선 TF’까지 구성했지만 결과물을 내놓진 못했다.
그때 민주당 원내대표로서 TF 구성에 합의했던 김태년 의원은 최근 국정원장 후보자 인사청문회에서 이와 관련해 “지난 정부 때 (인사청문회법 개정안) 제출을 했다”며 “신상·가족 관련해선 비공개로 하고 정책 관련해서는 공개로 하자, 그런데 지난 (문재인)정부에는 적용 안 하고 이번 정부부터 적용하자는 안을 민주당 쪽에서 제출했는데 당시 국민의힘이 받아들이지 않아 통과가 안 된 아쉬움이 좀 있다”고 말하기도 했다. 이는 각 당이 여야를 바꿀 때마다 인사청문회 제도 개선 논의에 대한 온도 차를 보이는 정치 현실을 꼬집은 것이다. 차재원 부산가톨릭대 특임교수는 통화에서 이와 관련해 “민주당이 집권당일 때 비슷한 법안을 여럿 발의했는데 이제 야당이니 사실상 제도 개선이 본인들 손발을 묶는 거니깐 당 안에서 동력이 생기지 않는다. 국민의힘도 마찬가지”라고 평했다.
◆진짜 문제는 ‘정치 실종’
실제 ‘도덕성·직무 역량 검증 분리’를 골자로 한 인사청문회법 개정안 총 4건이 21대 국회에서 이미 발의돼 있지만 모두 무관심 속에 제대로 된 심사가 진행되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가장 최근인 지난해 6월 민주당 전해철 의원이 대표 발의한 개정안은 인사청문회를 ‘공직윤리청문회’와 ‘공직역량청문회’로 구분해 실시하고 공직윤리청문회의 경우 회의 전 공개 여부를 정할 수 있도록 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국회 운영위원회 박태형 수석전문위원은 이 개정안 검토보고서에서 “공직후보자의 자질을 윤리성과 업무 능력으로 나누어 충실하게 검증할 수 있어 인사청문회 본래 도입 목적에 부합해 운영될 뿐 아니라 공직후보자의 사생활을 보호할 수 있단 점에서 긍정적”이라고 평했다. 그러면서도 “공직후보자의 윤리성 검증과 업무 능력 검증을 명확히 구분하기 어려워 인사청문을 분리 실시하는 데 대해 실효성이 없다는 비판이 제기될 여지가 있다”고 지적했다.
전문가들 사이에서도 이처럼 분리 검증이 ‘만병통치약’이 될 수 없단 지적이 나온다. 이준한 인천대 교수(정치외교학)는 “윤리성과 업무 능력을 분리 검증하는 게 현실적으로 가능하지 않다. 예를 들어 윤리성 검증을 비공개로 하더라도 언론에서 후보자의 윤리 문제가 확인되면 보도할 것 아니냐”며 “분리 검증이나 비공개 검증이라는 게 말은 그럴듯하지만 정치 현실로 넘어오면 불가능하다고 봐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 교수는 흔히 인사청문회 롤모델로 미국을 언급하는 데 대해서도 “미국도 인사청문회 중에 신상이 털려서 낙마하는 장관급 후보자가 많다”며 “FBI가 검증한다고 하지만 후보자 본인이 그 과정에서 버티거나 거짓말하는 경우가 있어 인사청문회가 사실상 ‘최후의 보루’ 역할을 하고 있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결국 제도 이전에, 심화하는 정치 양극화 현실부터 개선해야 인사청문회 제도의 본디 기능을 되살릴 수 있단 지적이 나오는 것도 이런 현실 때문이다. 박상병 정치평론가는 “(인사청문회 무용론에) 정치 양극화가 결정적”이라며 “정치가 실종된 상황에서 인사청문회뿐 아니라 여러 제도나 법이 정략적 이해 아래 무용해지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준한 교수도 “야당이 대통령의 후보자 지명을 무조건 적대적으로 받아들여 수용하지 않으려 하고 마찬가지로 정부 여당도 야당 검증이나 우려를 단순히 정치적 공세로만 받아들이니 인사청문회 제도의 취지가 무색해지는 것”이라며 “그게 정치 양극화 현상의 일단이 아니면 무엇이겠나. 이게 정권이 바뀌어도 무용론이 계속 나오는 이유”라고 평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