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벌 무서워 장사하겠나” “차라리 가족끼리 운영” 한숨 [‘50인 미만’ 중처법 시행 이후]

영세 中企·소상공인 ‘울상’

“최저임금에 원자재값까지 올라
사업하기 힘든데… 회사 접겠다”
“중처법 내용·처벌 규정 잘 몰라
사업주 의무 해석 구체화 필요”
“정부 홍보 강화… 예방에 최선”

공장 문을 열고 들어가자 기계 돌아가는 소리가 쿵쿵 울렸다. 28일 일요일이지만 조성기(63) 오성스프링 대표는 출근해 자동설비가 제대로 돌아가는지 확인했다. 2000년 회사를 만들어 25년 가까이 운영하며 매주 반복된 일이다. 경기 시흥시에 위치한 오성스프링은 25개 장비로 약 100가지 스프링을 만들어 매달 400∼500개 제품을 판매하는 연 매출 약 17억원 규모의 소규모 기업이다.

이 회사에서 만들어진 스프링은 자동차, 컴퓨터, 중장비, 건설자재, LED등, 전자기기 등 각종 분야에 사용된다. 대부분 설비는 직원이 어떤 제품을 제조할지 설정해두면 자동으로 돌아간다. 평일에는 직원들이 수동 조립, 검수, 포장 등을 하지만 주말에는 조 대표만 출근해 설비만 살펴본다. 이날도 사업장 안이 기계 돌아가는 소음으로 가득했다.

조성기 오성스프링 대표가 28일 경기 시흥시에 있는 사업장에서 스프링 제조 자동설비를 조작하고 있다. 2000년 설립해 25년 가까이 회사를 운영해 온 조 대표는 중대재해처벌법 확대 시행으로 고심이 깊어졌다. 시흥=박유빈 기자

회사 직원은 9명으로, 가장 적게 일한 직원이 8년이고 대부분은 10년 이상 일했을 정도로 오래 근속한 직원들이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이후 회사 워크숍 한 번 못 간 조 대표는 올해 제주도로 워크숍도 계획했다. 하지만 갑자기 날아든 ‘중대재해처벌법 확대 시행’ 소식에 현재는 내년에 회사가 나아갈 방향을 고민하느라 머리가 복잡하다. 그는 “내년부터는 직계가족끼리 회사를 운영하거나 직원들에게 기계 한두 대씩 내주고 중대재해처벌법에 적용되지 않게 각자 사업을 벌이라고 할까도 생각 중”이라며 “모든 10인 미만 기업인들은 5인 미만으로 기업 쪼개기, 가족끼리 운영하기, 각개전투로 직원 내보내기 셋 중 한 가지를 선택할 확률이 높다고 본다”고 말했다.



이처럼 중대재해처벌법 전면 시행으로 영향을 받게 되는 5인~49인 사업장은 83만7000곳에 달한다. 일각에서 정부가 과도한 공포 분위기를 조성한다는 지적이 나오지만, 통계상 중대재해의 과반 이상이 50인 미만 사업장에서 발생하고 있다. 이 때문에 노동계에서는 전면 시행을 미룰 수 없다는 주장이 줄곧 이어져 왔다.

 

업종별로 세분화했을 때 영세 사업장의 비중이 높은 도매 및 소매업은 사망자가 26명, 숙박 및 음식점업은 5명으로 전체 사망자 중 4.8%의 비중을 차지한다. 아르바이트생을 포함한 상시 근로자 5인 이상인 동네 음식점이나 카페, 빵집 등에서도 중대재해처벌법에 따른 갈등의 소지가 높은 셈이다.

서울 동작구에서 16년째 고깃집을 운영하는 임모씨는 인플레이션과 최저임금 인상 등으로 소상공인이 어려운 때에 고민할 거리가 늘었다고 하소연했다. 그는 “우리 가게는 일주일에 두 번 갈비를 전기톱으로 직접 다 자른다”며 “이제껏 사고는 없었지만 만에 하나 작업 시 손이나 손가락이 잘리면 중대재해고, 처벌을 받으면 가게 문을 닫아야 한다”고 했다. 방검장갑 등을 구비해 놓긴 했지만, 직원이 안 끼면 사고가 날 가능성을 배제할 순 없다는 설명이다. 법에 따르면 하나의 사고로 6개월 이상 치료가 필요한 부상자가 2명 이상 발생하면 중대재해에 속한다.

임모씨는 1979년 부모님이 연 가게를 16년 전에 물려받았다. 코로나19도 버티면서 가업을 이어가고 있는데 자영업자로 살아가는 게 하루하루 살얼음판 같다고 밝혔다. 그는 “최근 건물주가 관리비를 강제로 올렸고, 최저임금이랑 재료 원가도 다 올랐다”며 “이런 법까지 생기면 누가 사업 하겠다고 하겠냐”고 강조했다. 이어 “노무사한테도 물어봤는데 예방할 수 있는 실질적인 방법이 없는 것 같다”며 “사업주가 의무를 다할 경우 처벌받지 않는다고 하는데 해석을 더 구체화해야 할 것”이라고 요구했다.

50인 미만 사업장에 대한 중대재해처벌법 적용 이틀째인 28일 경기 수원시 한 쇼핑몰의 카페에서 직원들이 손님을 응대하고 있다. 수원=최상수 기자

서울 종로구에서 20년간 족발집을 운영해온 강모씨는 상시 근로자가 7명인데 5인 미만으로 줄이고 나머지 인력 공백 문제는 가족들의 도움을 받아 메꿀 계획이다. 근로계약을 맺은 배달 라이더도 상시 근로자에 포함되기 때문에 배달 라이더가 사고를 당하면 그 책임을 점주가 져야 한다. 문제는 이 같은 사항이 현장에 잘 전파되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강씨는 “주변을 봐도 중대재해법 적용에 대해 잘 알지 못한다”고 지적했다. 이어 “정부가 식당 사장들 대상으로 홍보라도 열심히 했으면 좋겠다”고 당부했다. 상가번영회장을 겸하고 있는 그는 조만간 임원들을 소집해 대책을 함께 고민할 예정이라고 했다.

전문가들도 이번 중대재해처벌법 확대 적용에 대한 ‘정부의 홍보’가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김성희 L-ESG 평가연구원장은 “당연히 이전에 안 하던 것을 고려해야 하니까 부담인 것은 맞지만, 사업을 영위하는 사람이라면 기본적으로 갖춰야 하는 사항을 간과해 왔던 것이기 때문”이라며 “이미 산업안전보건법이 의무사항으로 규정한 것에 처벌이라는 강제성이 더해진 것뿐”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처벌 중심이 아니냐는 반론도 있지만 그렇지 않으면 새로운 변화의 계기를 만들기 힘들고, 정부가 홍보로 이행 준비를 돕는 일이 중요하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