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에는 연말에 마감해야 할 프로젝트 과업들로 12월에야 뒤늦게 계절 옷 정리를 했다. 집안에 쌓인 옷들로 몇 날 며칠을 부산스럽게 보내야 했다. 우리는 해마다 돌아오는 계절에 맞춰 옷과 신발 등을 필요에 따라 선별하고 정리한다. 반면 시간이 축적된 인생의 통과의례에서는 필요보다는 의미를 중심으로 물품을 정리한다. 이때엔 무엇이 필요한지보다 무엇을 기억해야 할지가 관건이 된다. 돌아가신 부모님 유품을 정리했거나 삶에서 후손에게 남길 것을 생각한 사람들은 공감하는 지점일 것이다.
사람들이 한국천문연구원의 기록물관리전문요원으로서 아카이브 연구사업을 수행해 온 나에게 기록물관리와 아카이브의 차이에 대해 물을 때마다 떠올리는 단상이다. 공공기관 기록관은 업무를 고려하여 보존과 폐기를 중심으로 관리 기준을 세운다. 그러나 아카이브의 관점에서는 모(母)기관의 역사를 증빙함으로써 미션을 지지하고 미래상을 제시하는 것이 중요하다.
미국 항공우주국(NASA·나사)과 유럽우주청(ESA) 등 해외 주요 우주 전담 기구들이 기관 아카이브를 통해 역사 기록을 체계적으로 보존·관리해 우주과학사 원천 자원으로 제공하는 것도 이러한 맥락에서다. 두 기관 공식 아카이브의 공통된 특징은 전신 기관 역사가 주요 줄기라는 점이다. 1958년 설립된 나사는 1915년에 설립된 전신 기관 항공자문위원회(NACA)의 역사 기록을, ESA는 1964년 우주연구기관(ESRO)과 발사체개발기구(ELDO)의 두 전신 기관 역사 기록을 연구·개발해 제공한다. 나사와 ESA가 전신 기관 아카이빙에 공을 들이는 이유는 대표 천문우주과학 전담 기구로서 역사적 정통성과 업무의 지속성을 확보하기 위해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