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말 밝은 친구였어요. 최근에도 만났는데 그게 마지막 모습인지도 모르고….”
경북 문경시 육가공공장 화재 사고로 목숨을 잃은 고(故) 김수광(27) 소방교의 중학교 동창 A씨는 1일 문경장례식장을 찾아 “믿을 수 없다”고 말하며 눈시울을 붉혔다. “평소 수광이가 ‘소방관이 너무 좋다. 같이 하자’는 말을 입버릇처럼 자주 했다”면서 “최근에도 문자로 안부를 나눴는데…”라며 말을 잇지 못했다. 김 소방교는 친구들 사이에서 밝고 쾌활한 친구로 통했다고 한다. A씨는 김 소방교를 떠올리며 “고맙고 그동안 너무 고생했다”며 울먹였다.
문경시 육가공공장 화재 현장에서 인명 수색에 투입된 김 소방교와 박수훈(35) 소방사가 끝내 돌아오지 못했다. 샌드위치 패널로 된 건물 내부에서 갑자기 불길과 연기가 치솟으며 이들은 고립됐고 결국 숨진 채 발견됐다.
불은 전날 오후 7시47분쯤 문경시 신기동 신기제2일반산업단지의 육가공공장에서 발생했다. 주민 신고를 받고 현장에 도착한 소방대원들은 “건물 내부에 사람이 있는 것 같다”는 말에 곧장 수색에 돌입했다.
이들이 내부에 진입할 당시까지만 해도 인명 검색 상황이 나쁘지는 않았다. 하지만 4층짜리 건물 3층에서 수색하던 중 갑자기 불길과 연기가 걷잡을 수 없이 커졌다. 당시 현장은 한 치 앞을 내다볼 수 없을 정도로 연기가 가득 찼다고 한다. 이들은 건물 계단실 입구까지 대피했으나 결국 외부로 빠져나오지 못했고 주검으로 발견됐다.
두 구조대원은 서로 5∼7m 거리에 떨어진 지점에서 발견됐다. 소방 당국은 당시 시신 위에 구조물이 많이 쌓여 있어 수색에 난항을 겪었다.
계단실 주변 바닥층이 무너진 점 등으로 미뤄 이들이 추락했을 가능성도 배제하지 않고 있다. 실제로 수색 과정에서 건물 일부가 한 차례 붕괴하는 탓에 대원들이 긴급 탈출 후 안전점검을 실시한 뒤에야 재진입했다.
배종혁 문경소방서장은 “분명한 건 대원들이 최선을 다해서 화재를 진압했고 너무나 안타까운 일이 발생했다”면서 “두 사람 모두 맨눈으로는 신원을 확인하기 어려운 상태여서 DNA 검사를 한 뒤 정확한 신원을 확정짓고 부검은 하지 않기로 했다”고 말했다.
이날 찾은 현장은 화재를 진압한 지 3시간이 넘었지만 매캐한 냄새가 300m 밖에서도 진동했다. 건물은 뼈대만 앙상하게 남아 여기저기 구겨지고 짓이겨진 모습이었다. 바닥은 붕괴돼 흔적도 없고, 천장을 받치는 철골은 엿가락처럼 휘어져 있었다.
경찰과 소방 당국은 불이 건물 3층 튀김기계에서 시작된 것으로 추정하고 정확한 화재 원인과 사고 경위를 조사한다. 경북도소방본부는 2일 오전 10시30분부터 합동감식을 진행한다.
순직한 박 소방사는 특전사 출신이다. ‘사람을 구하는 일에 큰 보람을 느낀다’는 마음가짐으로 2022년 구조 분야 경력경쟁 채용에 지원해 임용됐다. 미혼인 그는 평소 “나는 소방과 결혼했다”고 이야기하고 다닐 정도로 조직에 애착이 컸다고 한다.
김 소방교는 2019년 공개경쟁 채용으로 임용됐다. 지난해에는 소방 공무원들 사이에서도 취득하기 어렵기로 소문난 인명구조사 시험에 합격해 구조대에 자원했다.
이들은 지난해 7월 경북 북부 집중호우 당시 실종된 문경시, 예천군 주민을 찾기 위해 68일간 수색활동에 투입된 바 있다. 다가오는 설날에는 동료들과 함께 홀몸노인을 찾아 봉사활동을 하려고 했지만 약속을 지키지 못했다.
이날 문경소방서는 동료들을 떠나보낸 비통함에 적막만 맴돌았다. 한 소방대원은 “항상 밝게 인사하던 친구들인데 이렇게 떠난 게 믿기지 않는다”고 했다. 그러면서 “순직한 두 소방관은 책임감이 강하고 적극적으로 솔선수범하는 소방관이었다”고 회상했다.
빈소는 문경장례식장에 차려졌다. 빈소를 찾은 한 공무원은 “유가족이 갑작스럽게 가족을 잃은 큰 슬픔에 몸을 제대로 가누지 못할 정도로 괴로워하고 있다”고 전했다.
두 소방관이 재직했던 문경소방서와 경북도청 동락관, 이들의 고향인 구미·상주 등 4곳에 이들을 추모하는 분향소를 마련해 5일까지 운영한다. 영결식은 오는 3일 경북도청 동락관에서 엄수한다. 경북도는 유가족 심리상담과 장례 절차 등을 지원하고 영결식을 경상북도청장으로 치른다. 유해는 국립대전현충원에 안장된다.
윤석열 대통령은 두 구조대원에게 1계급 특진과 함께 옥조근정훈장을 추서했다. 조상명 국정상황실장이 이날 대통령실을 대표해 빈소를 찾아 조전을 전하고 특진 계급장과 훈장을 영전에 전수했다. 윤 대통령은 “장래가 촉망되는 젊은 소방관들을 화마에 잃어 안타까운 마음을 가눌 길이 없다”며 “공동체와 국민의 생명을 지키기 위해 긴박하고 위험한 화재 현장에 뛰어든 고인의 희생과 헌신을 국가는 절대 잊지 않을 것”이라고 전했다. 앞서 윤 대통령은 순직한 구조대원 소식을 듣고 “비보를 듣고 가슴이 아파 잠을 이룰 수 없었다”며 “두 소방 영웅의 희생 앞에 옷깃을 여미고 삼가 명복을 빈다”고 말하기도 했다.
여야 대표들은 모두 이날 일정을 취소하고 경북 문경을 찾아 순직 소방공무원을 조문했다. 국민의힘 한동훈 비상대책위원장은 장례식장을 나오면서 기자들을 만나 “두 분 영웅들의 삶이 굉장히 짧았지만 희생이라든가 헌신이라든가 용기의 면에서는 누구보다 빛났을 것”이라며 “두 영웅의 삶이 헛되지 않도록 좋은 정책을 마련하겠다는 약속을 유가족분들께 드렸다”고 전했다.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도 장례식장에서 “밤낮없이 국민의 생명, 안전을 지키기 위해 애쓰는 소방관 순직 사고가 매우 자주 일어나는 것 같아 참으로 안타깝고 황망하다”며 “유족들께서 안전한 나라를 만들어달라는 말씀을 주셨는데 국민이 안전한 나라뿐 아니라 소방관이 안전한 나라를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이준석 개혁신당 대표도 문경을 찾아 “저보다도 더 젊은 공무원들을 떠나보냈다”면서 “마음이 너무 아프고 소방공무원이 안전한 환경에서 일할 수 있도록 살피겠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