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많은 분들이 그랬어요. 어린 너희들이 뭐를 할 수 있겠냐고. 기자들이랑 친하긴 하냐며 우려의 시선도 있었는데, 앞으로 친해지면 되지 않을까 생각했죠.”
퍼스트룩 강효미 대표는 2005년, 인생 1년 선배인 이윤정 대표의 권유로 함께 회사를 창립하던 때를 떠올렸다. 두 사람은 2000년대 초반 한국에서 가장 잘나가던 영화사인 명필름 마케팅 담당으로 만나 인연을 맺은 후, 올해로 20년째 함께 회사를 운영하고 있다. 치기 어린 청년 사업가로 출발해 이젠 국내에서 손꼽히는 영화마케팅사 대표로 자리를 잡은 두 사람을 지난달 31일 서울 강남구에 위치한 퍼스트룩 사무실에서 만났다.
“명필름이라는 우산을 벗어나 과연 저는 어느 정도 실력일까를 시험해 보고 싶었어요. 과연 영화 일을 계속할 만한 실력이 되는 건가 싶은 생각이 들었고, 신뢰할 만한 사람을 찾다가 강 대표와 함께하게 됐어요. 그런 큰 결정을 어떻게 하느냐고 하는 분도 있었는데, 우리끼리 해보는 것도 좋겠다, 실패하면 다시 취직하면 되지 생각하고 독립을 했죠.”
이 대표의 말처럼 20대 후반인 두 여성의 당시 도전은 무모해 보였을지 모르지만, 지금 돌아보면 좋은 선택이었다.
“순간순간 힘들지만 잘 털어버려요. 그런 힘들 걸 둘이 얘기하면서 풀 수 있으니까 좋아요. 대화로 푸는 거죠.”
강 대표가 어려움을 극복하는 방법에 대해 말을 보태고, 직업의 매력에 대한 설명을 이어갔다.
“저희가 영화를 소개하지 않으면 관객이 이에 대해 알 수가 없잖아요? 관객이 어떤 영화를 보고 재미있을 것 같다, 없을 것 같다 판단하는 데 영향을 미치는 전략을 짜는 게 저희 일의 핵심이에요. 저는 제품 마케팅이랑 다르게 영화 마케터는 관객들에게 영화를 파는 게 아니라 그들의 마음을 사는 일이라고 생각해요. 영화와 관객 사이에서 무언가를 만들어가는 과정이 재미있고, 흥행이 이뤄질 땐 보람을 느껴요. 이게 매력이죠.”
오랫동안 영화 마케팅을 해온 이들에게 근래 한국영화가 처한 위기를 어떻게 하면 극복할 수 있는지에 대해 질문을 던졌다. 쉽지 않은 문제인 듯 두 사람은 잠시 뜸을 들였다.
“새로운 얼굴이 필요한 것 같아요. 전혀 다른 생각과 관점으로 영화를 기획하고 마케팅하고. 시나리오 작가일 수도 있고. 다시 한 번 새로운 피가 영화계에 들어올 때가 된 게 아닐까.”
이 대표의 세대교체론에 강 대표도 동의했다.
“본질적으로 동의해요. 그리고 근본적으론 관객의 눈높이에 모든 게 맞춰져야 할 것 같아요. 한국영화가 잘 되던 시기, 영화가 제시하던 눈높이에 관객이 맞춰주던 시기도 있었죠. 지금은 그런 시기가 아니란 생각을 많이 해요.”
아무리 친해도 사업을 함께하기란 쉽지 않다. 공동대표 체제로 퍼스트룩을 20년째 운영하고 있는 비결이 궁금해진다.
“서로에 대한 신뢰가 두터워요. 저희가 웃으면서 농담처럼 하는 말이 우리는 돈을 가지고 싸우지 않는다는 거예요. 많은 사람들이 동업을 하다 보면 서로 돈 가지고 다툼을 시작하면 불신이 생기잖아요. 그런 점에선 둘 다 깔끔하거든요. 세밀한 일 처리 방식은 다를 수 있지만, 가고자 하는 방향이나 본질이 같다는 점도 중요하죠. 저 혼자 확신할 수 있는 게 50이라면, 둘이 함께 확신하면 100 이상이라고 생각해요.”
강 대표가 먼저 입을 열고, 이 대표가 뒤를 이었다.
“둘 다 부지런해요. 누가 더 많이 일하고 누가 적게 하거나 하지 않아요. 저희는 약간 누가 열심히 하면 나도 더 열심히 해야지 하거든요. 운이 좋았죠. 잘 맞는 거예요. 그런 사람 만나는 게 쉽지 않은데.”
두 사람은 2020년 각각 5년 내 1억원 이상의 기부를 약정하는 사회복지공동모금회의 아너 소사이어티에 가입했고, 2022년 12월까지 약 3년 만에 목표를 달성했다.
강 대표가 이 대표와 대화하고 가입을 결정한 건 한국영화의 흥행 절정기를 구가하던 2019년이었고, 실제 가입한 건 2020년 초반이다. 이때만 해도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이 터질지는 당연히 몰랐다.
“코로나가 터질지는 몰랐죠. 그래도 외출을 못하니까, 생각보다 돈을 안 쓰게 되더라고요. 부담을 갖기 시작하면 한없이 부담인 거죠. 하다가 보면 다 되더라고요. 싱글이고 아이도 없으니까, 제가 돈이 얼마나 필요하겠어요.”
이 대표는 기부에 대해 덤덤히 말했다. 두 사람은 기부 외에도 꾸준한 봉사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이들을 만났을 때 강 대표의 코 부위엔 상처가 나 있었다.
“12월 초에 (서울 강남구 개포동) ‘구룡마을’에 연탄 봉사를 갔는데, 강풍이 불어서 두께가 한 40㎝쯤 되는 나무가 부러지면서 강 대표가 그 밑에 깔렸어요. 나무랑 같이 저만치 날아가서 심각해 보였고 구급차를 타고 병원으로 갔었죠. 그나마 좋은 일 하러 가서 이 정도로 끝난 게 아닌가 싶어요.”
함께 봉사활동을 나갔던 이 대표는 당시 강 대표의 머리에 큰 혹이 났었다며 자신의 주먹을 들어 보였다. 이들은 이 일을 액땜이라고 생각한다며 앞으로도 봉사를 이어나가겠다는 뜻을 밝혔다.
끝으로 이들에게 처음 일을 시작하던 과거의 나, 지금의 나, 그리고 앞으로는 어떤 모습일지 물었다.
“과거는 패기와 열정이 넘치는 스물아홉 살. 지금은 밸런스를 맞추려고 하는 중년이랄까. 앞으로도 여전히 영화를 좋아하는 마케터, 영화를 사랑하는 즐거운 영화인이 되고 싶습니다.”(이윤정)
“2005년을 생각하면 어떤 도전도 두렵지 않은 ‘패기’가 있었어요. 지금은 ‘성숙’에 대해 생각하는 것 같아요. 앞으로도 무엇이 되든 ‘도전’을 멈추지 않는 삶을 살고 싶어요.”(강효미)
◆이윤정 대표는…
●1977년 서울생 ●성신여자대학교 정치외교학과 ●한국예술종합학교 영상원 겸임교수 ●2012 제3회 올해의 영화상 홍보인상 ●2012 올해의 여성영화인상 홍보마케팅상 ●2013 영화마케팅사협회(KFMA) 초대 부회장
◆강효미 대표는…
●1978년 서울생 ●한국외국어대학교 영어과 ●연세대학교 언론홍보대학원 ●2019 영화마케팅사협회(KFMA) 4대 회장 ●2012 올해의 여성영화인상 홍보마케팅상 ●2014 제5회 올해의 영화상 홍보인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