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출의 방향성에 대해 가족을 예로 들어 말씀드리자면, ‘이런 형태를 가족이라고 부르면 안 되나, 우리가 가족이라고 부르는 형태는 그들보다 밀접한가’라는 질문을 던지는 방식으로 연출하곤 합니다. 우리가 항상 정해진 대로 가족이라고, 부모·자식이라고 생각하는 걸 흔들고 의문을 던지고 싶은 마음을 가지고 영화를 만들고 있습니다. 또 하나의 가능성으로 이러한 선택지가 있지는 않을까, 제가 만들어서 제안하면 좋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그것만을 추구하는 것은 아니지만, 그런 영화가 많았다고 생각합니다.”
‘괴물’의 국내 누적 관객 50만 돌파와 맞물려 지난해 부산국제영화제에 참석한 데 이어 3개월여 만에 한국을 다시 찾은 일본영화의 거장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이 지난 5일 서울 강남구에 있는 배급사인 뉴(NEW) 본사에서 기자간담회를 열고 자신의 영화관과 영화에 얽힌 뒷얘기를 풀어놨다.
그는 획일화된 사회를 불편하게 여겼다.
“우리가 현실을 살아가다 보면 이유를 알지 못하고 끝나는 일이 압도적으로 많다고 생각합니다. 이야기 속에도 해답이 존재하지 않습니다. 즉 영화 속의 엄마(인물)도 결국은 모르고 끝나는 행동들이 있고, 관객이 보았을 때도 알 수 없도록 장치가 돼 있는 것입니다.”
그는 배우들도 영화 속 상대방의 입장을 모른다는 전제하에 연기하도록 연출했다고 한다. 많은 의문과 관객의 생각을 의도하는 영화는 독립영화 영역에서는 드물게 롱런하며 좋은 성적을 내고 있는데, 지난해 11월29일 개봉한 이래 지금까지 독립영화 순위 2위를 기록 중이다.
아역 배우의 귀여우면서도 빼어난 연기, 칸영화제에서 각본상을 받을 만큼 훌륭한 각본, 이제는 고인이 된 사카모토 류이치의 음악, 그리고 고레에다 감독의 연출이 어우러진 결과다.
영화의 흐름은 고전 명작으로 꼽히는 구로사와 아키라 감독의 영화 ‘라쇼몽’을 떠올리게 한다. 1950년에 개봉한 이 영화는 세 인물이 하나의 사건에 대해 다르게 진술하며 사건의 본질이 무엇인지를 묻는다.
고레에다 감독은 비슷하게 볼 수 있는 여지는 있지만 두 영화는 엄연히 다르다고 설명했다. “영화를 만들 때 라쇼몽은 언급되지 않았어요. 라쇼몽은 각각 자신의 주관적 진실을 따로 얘기해 나간다는 점에서 (객관적으로 바라보는) 괴물과 구조가 꽤 다르지 않나 싶습니다.”
영화 ‘어느 가족’으로 황금종려상을 받은 이 명감독은 배우 송강호 등과 함께 한·일 합작영화 ‘브로커’를 만들기도 했다. 앞으로도 한·일 협업의 의지는 큰 듯했다.
“아직 비밀입니다. 네, 구체적으로는 움직이고 있지는 않지만 앞으로 실현되길 원하는 기획이 많아요. 또다시 배우들과 함께하고 싶은 기획이 있습니다.”
일본이 우리보다 더 빨리 고령화됐기 때문인지 그는 한국에서 젊음을 느낀다고 했다. “우선 한국 관객이 젊다고 느껴지고, 여기 자리한 기자 여러분도 젊고, 스태프분들도 젊다고 느껴져요. 에너지가 넘치고 있다는 걸 느낍니다.”
한국 영화 제작 환경에 대해서도 칭찬했다.
“브로커를 만들기 위해 한국에 오래 머물면서 영화 촬영 환경이 일본보다 잘 갖춰져 있다고 생각했어요. 일하는 장소로서 매우 풍요롭고, 젊은이들이 씩씩하게 일하고, 노동시간을 포함해 (권력에 의한) 폭력에서도 관리가 잘되고 있다고 생각해요. 그런 점에서 일본이 뒤처져 있지 않은가 실감하기도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