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패스트 라이브즈’로 영화계 최고 권위의 미국 아카데미(오스카) 시상식에 입성하게 된 한국계 셀린 송(36·사진) 감독이 6일 국내 언론과 화상으로 만났다. 30대 아시아 여성 감독의 데뷔작이 작품상과 각본상 2개 부문 후보에 오르는 건 올해로 96회째를 맞은 아카데미에서 이례적이다.
송 감독은 “첫 영화이자 데뷔작이라, 영광이라고밖에 할 말이 없다. 정말 감사할 따름”이라면서 “아버지가 무척 기뻐하고 자랑스러워하셨다”고 말했다. 송 감독의 아버지는 데뷔작 ‘넘버3’로 신드롬급 화제를 일으켰지만 차기작 ‘세기말’을 내놓은 뒤 캐나다 이민을 떠난 송능한 감독이다. 한국에서 태어나 열두 살에 캐나다로 이민을 간 송 감독은 “한국어를 잘 못하는 점을 이해해달라”고 했지만, 그의 한국어는 막힘없었다.
‘패스트 라이브즈’는 서울에서 어린 시절을 함께 보낸 남녀가 20년 만에 미국 뉴욕에서 재회하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로, 송 감독이 자전적 이야기를 바탕으로 직접 각본을 썼다. 한국계 미국 배우 그레타 리와 한국 배우 유태오가 주연을 맡았다.
송 감독은 “제가 가진 이민자라는 정체성은 꼭 한국과 연결하지 않더라도 많은 사람이 가진 것”이라며 “이사를 해 새로운 곳으로 가 새로운 삶을 시작하는 건 누구나 할 수 있는 경험”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자전적 이야기를 하다 보니 한국이라는 배경과 한국어와 같은 요소가 매우 많은 영화가 됐다”고 설명했다.
영화에서는 특히 한국적 관념인 인연이 중요한 주제로 다뤄진다. 한국 출신의 등장인물이 미국인에게 인연이란 말을 설명해주는 장면에 대해 송 감독은 “이 장면 덕분에 관객은 인연이란 개념을 알게 된다. 새로운 단어를 접하는 즐거움도 느끼게 되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판타지 영웅이 아닌 평범한 사람도 여러 시공간을 지나면서 신기한 순간이나 특별한 인연이 있다는 걸 얘기하고 싶어 이 영화를 만들었다”고 덧붙였다.
지난해 1월 선댄스 영화제에서 처음 상영된 ‘패스트 라이브즈’는 제73회 베를린국제영화제 경쟁 부문에 초청됐고, 제58회 전미 비평가협회 작품상을 비롯한 각종 상을 휩쓸었다. 오는 18일 열리는 영국 아카데미 시상식에선 남우주연상, 외국어영화상, 오리지널 각본상 후보에 올라 있다. 최근 할리우드 스타 감독 크리스토퍼 놀런이 미국 시사주간지 타임과 인터뷰에서 ‘최근 본 가장 좋은 영화’로 ‘패스트 라이브즈’를 꼽으면서 작품에 대한 관심이 쏟아지기도 했다.
CJ ENM과 할리우드 영화사 A24가 공동으로 투자 배급하며, 국내에선 다음 달 6일 개봉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