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년 뒤엔 임시정착촌 철거… 생계 넘어 치열한 자립 고민 [심층기획-튀르키예 대지진 1년]

튀르키예 대지진 1년… 이재민 임시 거주지를 가다

두 번째 여진 진앙 ‘엘비스탄’
컨테이너 902개, 8000명 생활
세입자들은 공공주택 못 받아
살 집 스스로 마련해야 할 처지

의료·보안·고용 살아난 정착촌
외부와는 단절… 고립문제 발생
여성 사회 진출 한계 아쉬움도

“저는 지진이 일어났을 때 세입자였습니다. 정부가 주는 아파트에는 들어갈 수 없어요.”

 

5일(현지시간) 튀르키예 카흐라만마라쉬주(州) 엘비스탄의 임시 정착촌에서 만난 마르베(25)는 고민이 많았다. 1년 전 지진으로 삶의 터전을 잃고 이곳에 정착한 그는 45일 된 딸 엘리쟈와 네 살배기 아들 두 아이의 엄마다. 기술공인 남편이 홀로 일하며 가족의 생계를 책임지고 있다.

“정착촌서 태어났어요” 튀르키예 카흐라만마라쉬 엘비스탄의 컨테이너촌에 사는 마르베가 5일(현지시간) 태어난 지 한 달 반 된 딸을 안은 채 웃고 있다.

내년 엘리쟈의 첫 생일을 맞을 때쯤이면 이 가족은 컨테이너촌을 떠나 살 집을 스스로 마련해야 한다. 튀르키예 정부는 지진 발생 후 2년까지만 임시 정착촌을 운영하고 이후 컨테이너의 95%를 철거할 계획이다. 이곳에서 살 수 있는 시간은 앞으로 1년 남짓이다.

 

하지만 지진 당시 월셋집에 살았던 마르베 부부에게 주정부가 지은 2만2200여채의 아파트는 ‘그림의 떡’이다. 지진 당시 자가를 소유했던 이들만 분양을 위한 추첨에 응모할 수 있어서다.

 

◆“목표는 자립”… 홀로서기 준비하는 주민들

 

지난 1년간 강진 피해 복구에 전력을 다한 튀르키예 정부의 최대 과제는 이제 피해자들의 자립이다. 이날 임시 정착촌에서 만난 주민들은 정부 지원이 끊긴 이후의 홀로서기를 치열하게 준비하고 있었다.

 

엘비스탄은 지난해 2월6일 튀르키예 동부에서 발생한 3개 지진 중 규모 7.6으로 발생한 두 번째 여진의 진앙이다. 이곳 임시 정착촌의 규모는 인근 지역 중에서도 가장 커 902개 컨테이너에서 무려 8000여명이 생활하고 있다.

 

정착촌 내 카페에서는 중년 여성들이 둘러앉아 열띤 토론을 벌이고 있었다. 이들은 엘비스탄 여성협회 일원들로, 최근에는 이곳에서 지진으로 부모를 잃은 고아를 지원하는 프로젝트를 기획하고 있다. 여성협회 디렉터인 파질렛 세비치 아크파르티는 “최종적인 목표는 (고아 지원) 계획을 통해 이곳 주민들을 고용해서 이들이 자립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라며 “우리는 지원만 받는 것이 아니라 영구적으로 (지속가능한) 해결책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아크파르티 디렉터는 “1999년 (튀르키예 대지진) 이후에도 엘비스탄을 떠나지 않은 것은 여성들”이라며 “튀르키예 여성들이 해내지 못할 일은 없다”고 자신감을 보였다.

 

실제로 임시 정착촌 곳곳에서 고용 창출을 위한 노력이 엿보였다. 각종 농산물과 먹거리, 생필품이 빼곡하게 차있는 정착촌 내 마트는 주민 생활협동조합이 직접 운영하고 있었다. 상가 건물에서 성업 중인 미용실·옷가게·자동차 수리점 등의 주인도 모두 정착촌 주민이었다.

어린이 심리교육 선생님 ‘손하트’ 튀르키예 카흐라만마라쉬 엘비스탄의 컨테이너촌에서 5일(현지시간) 아이들의 심리 안정 교육을 진행하는 선생님들이 카메라를 향해 ‘손 하트’를 보이며 한국어로 “안녕하세요”라고 인사하고 있다.

◆정착촌 발전하나 주민들은 고립 생활

 

주민들의 자립을 도울 만큼 발전한 정착촌은 일부 주민들에겐 홀로서기의 걸림돌이 되기도 했다. 시가지에서 멀리 떨어진 곳에 설치된 컨테이너촌에서 의식주를 모두 해결할 수 있다 보니 주민들이 외부세계와 단절돼 고립되는 모습이었다.

 

특히 여성·아이들의 고립이 눈에 띄었다. 2022년 기준 튀르키예 여성의 경제활동 참여율은 35.3%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평균(65%)의 절반 수준에 그친다. 사회진출 기회가 이미 부족한 여성들이 정착촌 내에 거주하면서 그들의 활동반경은 더욱 좁아지고 있는 상황이다. 아이들 역시 정착촌 안에서 교육을 해결하다 보니 지난 1년 동안 정착촌을 떠나 바깥으로 나갈 기회가 거의 없었다고 한다.

 

취재진이 ‘여성들의 사회 진출을 장려하는 활동이 있냐’고 묻자 정착촌 내 주민들의 심리치료를 담당하는 리티피예 노르 텔레르씨는 “여성을 위한 수공예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다”는 답만 되풀이했다.

 

컨테이너촌 생활에 대한 높은 만족도도 주민들의 자립의지를 약하게 만든다. 이곳 주민들은 정착촌 상주 간호사와 방문 의사·상담원을 통해 체계적인 의료 지원도 받고 있다. 단지 내 운동 시설과 종교 시설도 마련되어 있다. 말라티아·아디야만주 등의 주요 임시 정착촌 중 상주 경찰인력이 보안 경비를 서는 곳도 이곳이 유일했다.

 

주민들도 대부분 정착촌 생활에 만족한다는 소감을 밝혔다. 이름을 밝히지 않은 30대 남성 주민은 “예전에 살던 집만큼의 환경은 물론 아니지만, 솔직히 문제는 못 느낀다”며 “컨테이너촌 중에서는 최상의 수준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주정부는 주민들의 자립을 지원하기 위해 더욱 다양한 정책을 마련하겠다고 밝혔다. 텔레르는 “정기적 방문 상담을 통해 이곳 주민들의 니즈를 파악하고 있다”며 “앞으로도 이곳 주민들을 위한 다양한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기를 기대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