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7일 방송 담화에서 ‘코리아 디스카운트’(국내 주식시장 저평가) 해소를 위한 글로벌 스탠더드를 재차 강조하면서 증권가 안팎에서 저PBR(주가순자산비율) 종목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금융 당국의 코리아 디스카운트 해소 정책 발표에 가장 민감하게 반응하는 투자자는 외국인이다. 외국인은 지난달 19일부터 15거래일 동안 단 하루를 빼고 모두 ‘바이 코리아’(국내 주식 매수)에 나섰다.
8일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외국인은 지난달 19일부터 이날까지 지난달 30일을 제외하고 모두 코스피 순매수에 나섰다. 이 기간 순매수한 규모만 6조6780억원에 달한다. 정부가 저PBR 종목의 주주 환원을 확대하기 위해 추진하고 있는 ‘기업 밸류 업 프로그램’ 계획이 발표된 지난달 24일부터 저PBR 종목 위주 매수에 나섰다. PBR은 상장사의 시가총액을 자산 가치로 나눈 값으로, 1배보다 낮으면 해당 종목이 저평가됐다는 의미다.
외국인이 집중적으로 사들이는 현대차와 삼성전자, 기아, 삼성바이오로직스, KB금융, 하나금융지주, 삼성물산, SK스퀘어 등은 대표적인 저PBR 종목으로 꼽힌다. 코스피 시총 상위 종목이기도 하다. 기관 투자자 역시 현대차와 LG화학, 신한지주, 삼성물산, LG, SK, 삼성생명, 하나금융 순으로 저PBR 투자에 나서고 있다.
국내 증시는 주요국보다 PBR이 낮은 수준이다. 국내 증시 전체 PBR은 1.05배 수준이며 코스피는 0.95배에 그친다. 이에 비해 미국은 4.55배에 달하고 영국(1.71배)과 일본(1.42배), 대만(2.41배) 등도 우리 증시보다 높은 가치로 평가받고 있다.
최근 국내 증시의 회복세에도 전날 기준 KRX유틸리티(0.37배), KRX은행(0.44배), KRX보험(0.45배), KRX증권(0.47배), KRX철강(0.53배), KRX건설(0.59배), KRX자동차(0.71배) 등 주요 업종 지수의 PBR은 1배에 못 미치는 게 현실이다.
시장에서는 낮은 수준의 PBR이 추가 주가 상승에 대한 기대감을 키우고 있다. 박우열 신한투자증권 연구원은 “일본의 PBR 1배 기업 밸류 업 프로그램의 성과는 6개월간 지속됐다”고 설명했다.
다만 저PBR 종목들을 두고 테마주 같은 쏠림현상이 나타나고 있는 만큼 주주 환원에 대한 뚜렷한 여지가 있는 기업을 선별해야 한다는 게 전문가들의 조언이다. 순유동자산과 수익가치가 큰 기업 중 주주 환원을 정책화하는 종목 위주로 주목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김기백 한국투자신탁운용 팀장은 “저PBR 기업이 주주 환원을 하려면 고정자산이 아닌 유동자산이 커야 하고 수익가치도 커야 한다”며 “기업의 의지 또는 지배구조의 변화가 수반돼야 한다”고 밝혔다. 이어 “주주 환원이 정착돼 지배 주주와 개인 주주의 이해관계가 일치하는 시장이 된다면 코스피 지수는 중장기적으로 3500~4000포인트가 가능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실제 몇몇 기업은 최근 자사주 소각정책을 잇달아 발표해 주가 상승을 이끌고 있다. 기아는 연내 5000억원 규모의 자사주를 취득해 상반기 50%, 나머지를 조건부 소각하겠다고 밝혔다. 삼성물산도 7677억원 규모의 소각 계획과 더불어 2026년까지 1조원 규모로 늘리겠다고 발표했고, 하나금융도 연내 3000억원 규모로 결정했다. SK이노베이션과 HD현대건설기계도 첫 자사주 소각을 발표했다.
김지원 다올투자증권 연구원은 자기자본이익률(ROE)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ROE는 당기순이익을 자기자본으로 나눈 수치로, 투입한 자본 대비 이익을 얼마나 거두는지를 나타낸다.
김 연구원은 “지난해 4분기 실적 발표 후 시장 전망치를 하회하는 종목은 가치 하락을 자사주 매입 및 소각으로 대응할 가능성이 존재한다”며 “다만 이런 방식은 자본금 감소로 이어질 수 있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안정적인 이익 성장력이 뒷받침돼야 순이익 증가에 따른 배당성향 상승, 자사주 매입 및 소각정책의 적극적 활용 등을 기대할 수 있다”고 말했다.